'근대성·식민성 동시적 형성' 관점으로 살핀 한국 공업 초기사

김남중 2022. 8. 1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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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공업사 1876~1945'는 한국 공업의 초기사를 펼쳐 보인다.

책은 1876년 개항에서 1905년 러일전쟁에 이르는 시기를 공업화의 모색기로 파악한다.

식민지 관계 속에서 형성된 공업을 뜻하는 '식민지 공업'이 한국 공업의 시작이었다.

책은 일제시대 한국 공업 전체를 식민지 공업으로 규정하고 그 변화 과정을 형성기(1905~1920년대 중반), 재편기(1920년대 후반~1936), 군수공업화(1937~1945)로 구분해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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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한국 근대 공업사 1876∼1945
배성준 지음
푸른역사, 468쪽, 2만8000원


‘한국 근대 공업사 1876~1945’는 한국 공업의 초기사를 펼쳐 보인다. 책은 1876년 개항에서 1905년 러일전쟁에 이르는 시기를 공업화의 모색기로 파악한다. 고종은 식산흥업정책(국가 주도의 회사·공장 설립)을 추진했으나 재원 조달의 한계, 외세의 개입 등 여러 요인으로 실패했다.

러일전쟁 이후 국내 일본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공업이 발흥했다. 식민지 관계 속에서 형성된 공업을 뜻하는 ‘식민지 공업’이 한국 공업의 시작이었다. 일본에 식량과 원료를 공급하기 위한 업종, 조선경제의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업종, 일본인 거류민을 대상으로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업종 중심으로 공장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주로 일본인이 공장을 설립했으나 1910년 이후 조선인 공장 설립이 활발해졌다.

책은 일제시대 한국 공업 전체를 식민지 공업으로 규정하고 그 변화 과정을 형성기(1905~1920년대 중반), 재편기(1920년대 후반~1936), 군수공업화(1937~1945)로 구분해 살핀다. 1915년부터 19년까지 지속된 ‘대전호황’(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일본의 호황)은 일본자본주의가 도약하는 기반이 됐다. 그 영향이 조선으로 파급되면서 공업 부문이 크게 확대됐다. 14년 조선의 공장 수는 타이완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23년에 타이완을 추월했다.

29년 대공황은 식민지 공업이 재편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총독부는 산미증식에서 농공병진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했으며, 일본 민간자본의 투자 증대와 독점자본의 진출이 이뤄졌다. 원료가공업과 관영공업이 중심이었던 식민지 공업은 일본 독점자본이 주도하는 방직 및 화학공업으로 중심이 이동했다.

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전시통제체제로 이행했고 조선도 편입됐다. 일본의 전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조선의 군수공업화는 경성에 공업지구가 지정되고 경인공업지대가 조성되는 계기가 됐다. 부산항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부산항의 확장도 이뤄졌다.

일본 식민지배와 한국 근대화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역사학계의 오랜 쟁점이다. 저자는 “근대성과 식민성의 동시적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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