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불안의 사회 조명.. 묵직한 소설 써서 만족스럽다"

김남중 2022. 8. 1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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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재수사(전 2권)
장강명 지음
은행나무, 408·412쪽, 각 1만6000원
기자 출신 소설가로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당선, 합격, 계급’ 등 동시대의 문제를 날렵하게 써냈던 장강명이 6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재수사’(전 2권)를 출간했다. 3년을 들여 원고지 3100매로 완성한 이 소설은 사실적인 경찰소설이면서 현대 사회와 사상에 대한 묵직한 진단을 담고 있다. 은행나무 제공


“여태까지 제가 쓴 소설 중 가장 마음에 듭니다.” 17일 오전 장강명(48) 작가는 페이스북에 새 소설 출간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썼다.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 만난 작가에게 그 이유부터 물었다.

“소설가로서의 야심? 작가적 욕망? 이런 게 있는데 묵직한 소설, 중량감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걸 달성한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여태까지는 제가 날렵한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소설을 쓸 때 끝에 가서 마무리라고 할까 완성도라고 할까, 그런 걸 완벽하게 챙기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이번에는 기왕에 시간이 좀 오래 걸렸으니 언제 나오든 원하는 상태까지 다듬어서 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돼서 만족스럽다.”


‘재수사’는 장강명이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이다. 요즘 장편소설은 분량이 보통 원고지 1000매 정도다. 점점 짧아지는 추세라서 600매, 500매 분량의 경장편도 출간된다. ‘재수사’는 3100매나 된다. 그래서 두 권으로 나눴다.

장강명은 작품을 빠르게, 많이 써내는 편이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소설가로 전업한 지 9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소설, 에세이, 논픽션 등 10여권의 책을 냈다. 이번 소설을 쓰는 데는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저로서는 이례적으로 오래 붙들고 있던 작품”이라며 “일단 분량이 길고 어떤 야심도 있었다. 한국 사회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다. 그걸 파고드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얘기했다.

‘재수사’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형사들이 미제사건으로 남은 22년 전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는 이야기다. 여기에 범인이 쓴 회고록이 교차되며 소설의 또 다른 기둥을 이룬다. 이 회고록은 현대 사회와 현대 사상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다.

장강명은 “이번 소설에서 욕심이 두 가지 있었다. 웰메이드 범죄소설이랑 묵직한 사변소설”이라고 말했다. ‘재수사’는 범인이 누굴까 마지막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미스터리물이면서 지금 이 시대를 이루는 사상과 가치관들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관념적 소설이다.

장강명은 “지금 한국뿐 아니라 현대 사회 전체가 공허와 불안을 앓고 있는 것 같다”면서 “그 공허와 불안의 기원이 이 사회의 시스템에 내재돼 있다고 본다. 이 사회를 설계한 계몽주의 사상 자체에 내재된 결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금 사회를 생각할 때 전체적으로 혼미한 상태처럼 보인다. 그람시가 얘기한 것처럼 옛것은 수명이 다했는데 새것은 아직 안 나온 상태라고 할까”라며 “다음 세상이라는 것을 되게 깊은 차원에서 얘기해 보고 싶었다. 그 얘기는 지금의 상식을 흔드는 것이고 충격적이고 위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범죄자의 목소리를 빌려서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소설은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의 사회상을 공들여 묘사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시점을 그때로 설정했다. 작가는 “처음부터 사건의 배경을 90년대 말로 정했다. 그때 IMF(외환위기)가 있었다”면서 “각자도생, 끊임없이 경쟁하고 불안해하는 사회, 풍요의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세상이 나아갈 방향이나 삶의 방향성에 답을 못해주는 사회,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든 징후가 그때부터 나타났다. 그때의 변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죽은 여대생의 친구들은 40대가 됐다. 다들 뭔가를 추구하며 열심히 살았다. 블록체인 스타트업 대표가 됐고, 영화감독이 됐고, 공방 주인이 됐다. 그러나 삶은 충만하지 않고 공허하다. 그 이유는 모른다. 작가는 이들이 “지금 한국인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장강명이 2011년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을 때 한 심사위원은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의 등장이 반갑다”고 평했다. 장강명은 이번 소설에서 정의 공정 감수성 정체성 소통 등 현대를 구성하는 가치관들을 다소 시니컬하게 바라본다. 그가 모색하는 다음 세상의 초안은 더 논리적이다. 그는 “작가가 자기의 사상과 관점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을 좋아하고, 저도 그런 문학을 하고 싶다”면서 “문학의 임무 중 하나는 논쟁을 부르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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