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전투같았던 출퇴근,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
[김상목 기자]
▲ 영화 <풀타임> 포스터 이미지 |
ⓒ ㈜슈아픽처스 |
이 영화는 극사실주의 스릴러다
<풀타임>을 독립예술영화 반열에 놓고 소개한다는 게 과연 적절한 분류일지 고민스럽다. 아니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도 알짜배기인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2관왕을 수상한, 그 예술성과 작품성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검증된 작품 아니었나? 대체 무슨 번뇌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 고민은 지극히 좋은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영화는 흔히 우리가 독립예술영화를 언급할 때 쉽게 떠올리게 되는 고정화된 통념과는 꽤나 동떨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술성을 강조하는 극단적인 표현방식이나 실험적 테크닉으로 관객이 아닌 감독이 예술가연하는 영화라는 편견은 <풀타임>에 끼어들 틈이 없다. 이 영화가 선보이는 극사실주의 드라마에 가까운 이야기 전개는 잘 짜인 탄탄한 각본과 구성, 거기에 화룡점정 격인 주연배우 로르 칼라미의 혼신을 다한 열연에 힘입어 웬만한 상업영화 블록버스터는 감히 대적할 수 없을 만한 강렬한 긴장과 스릴로 보는 이들을 몰아붙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압도적인 위력으로 시종일관 질주하는 긴장감 조성은 그저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시간을 때우게 하려는 목적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진행방식과 방법론은 꽤나 차이나지만 영화제 수상작들이 갖는 아우라,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고민과 오래 남는 여운은 '진퉁' 예술영화 명작의 바로 그것이다. 그런 의외성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될 테다.
▲ 영화 <풀타임> 스틸 이미지 |
ⓒ ㈜슈아픽처스 |
쥘리는 파리 시내 5성급 호텔에서 룸 메이드를 담당한다. 어린 자녀 둘을 키우는 싱글맘이자 워킹맘인 그녀는 하루하루 고단한 임금노동과 돌봄 노동의 이중고를 견뎌내는 강인한 여성인 셈이다. 그녀는 전 남편 대신 자신이 두 아이를 모두 책임지고 있다. 한부모 가정이지만 아이들을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자 직장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교외에 상대적으로 괜찮은 집을 구해서 살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인 메이드로는 수입이 부족하기에 예전처럼 전문직에서 일하고자 틈틈이 면접 준비에도 힘을 쏟는 중이다. 직장 내 경력이나 상사의 신뢰도 나쁘지 않다. 쥘리는 동료 메이드들의 근무평가나 신입교육도 도맡는 중이다. 하지만 메이드 일이란 한국이나 프랑스나 처우가 썩 좋지는 못한 편이다.
주인공이 일하는 호텔의 동료들은 대부분 유색인종 이민자이거나 싱글맘이다. 그녀들은 정문이 아니라 직원 전용 뒷문으로 출퇴근 카드를 긁어야 입출입이 가능한 존재다. 경비원이나 호텔에 소속된 운전기사와 마찬가지로 직장 내 최하층에 속한다. 그중에서 쥘리는 과거 경력 때문에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물과 기름처럼 유리되는 느낌이 전해지는 존재다. 거기에다 같은 메이드이지만 관리자 비슷한 행태를 취하기에 그런 그녀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동료도 일부 존재한다.
과거의 중산층 생활로 회귀를 꿈꾸는 쥘리는 요즘 조금씩 엇나가는 중이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기 때문이다. 화이트칼라 전문직으로 재취업하면 매달 집세와 양육비로 허덕이는 형편을 개선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해 보면 회사가 근무시간에 타사 면접 보러 가겠다는 노동자를 어떤 시선으로 대할지는 빤하다. 쥘리는 친한 동료들에게 알음알음 근무시간표를 변경해가며 어렵게 면접 시간을 확보한다.
하지만 무리수가 서서히 누적된다. 그녀가 기존에 누리던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해 도심지의 '닭장' 같은 협소한 주거에서 어떻게 아이들 데리고 살 수 있냐며 악명 높은 파리 근교 주거전용지역에 셋집을 얻었기 때문이다(전세 제도가 없는 프랑스에서 파리 인근 2인 가구 이상 월세는 200만 원을 넘는다). 영화의 핵심적인 외부 사건과 함께 쥘리의 사상누각 같은 삶의 조건은 격동에 휘말릴 운명이다.
도시의 지정학
결국 영화 시작부터 쥘리는 필사적인 상황에 놓인다. 평범한 호텔 메이드 직장여성이 강도라도 만난 걸까? 아니면 사실 그녀의 정체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일까? 모두 아니다. 그녀는 다만 통근 교통수단 때문에 회사에 지각할 위기에 처한 것뿐이다. 잔뜩 기대했다 맥이 탁 풀릴 노릇이다. 하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선 그저 좀 안쓰러울 뿐이지만 영화 속 주인공에게는 자칫 근무평점 문제로 해고에 이를 수 있는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붕괴되는) 심각한 실존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직장인이 왜 이런 위기에 처하게 된 걸까. 4년간 이 호텔에서 일해 왔는데 쥘리가 평소에 늦잠꾸러기라서 그런 것도 딱히 아닐 것이다. 그녀는 늘 알람시계를 맞춰두고 해가 뜨기 전부터 전투 치르듯 아침에 일어나고 있으니. 쥘리의 아침은 아이들 아침밥을 자신도 감기는 눈을 비벼가며 억지로 깨운 뒤 먹이면서 시작된다. 후다닥 밥을 먹인 후 부랴부랴 급하게 행장을 꾸려 자신이 퇴근하기 전까지 돌봐주는 이웃에 아이들을 맡긴 후 대중교통 환승을 몇 차례 거쳐 가며 출근을 해왔었다. 하지만 그 일상이 붕괴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대체 주인공과 도시에 무슨 일이 터진 걸까?
미국처럼 아예 일상생활이 고립되지 않으려면 집이 없어도 자동차만은 포기할 수 없는 경우까지는 아닌 프랑스. 서구 대부분 국가들처럼 정교하게 그물망처럼 짜인 근교 교통망이 씨줄 날줄로 거대한 유동인구와 물동량을 지탱한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날 1세계권 대도시들은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동일한 '도시화'의 길을 착실히 밟아가는 중이다. 인류 첨단문명과 기술의 정점은 대도시가 차질 없이 작동하고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시스템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란조끼운동의 격랑 속으로
▲ 영화 <풀타임> 스틸 이미지 |
ⓒ ㈜슈아픽처스 |
주인공이 영화 속에서 며칠간 겪는 고난의 결정적 원인은 파리 근교의 대중교통이 대부분 파업에 돌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파리가 시위가 잦은 도시라는 건 제법 알려진 사실이지만 세계 유수의 대도시이자 프랑스의 수도라면 워낙 이골이 나서 상당한 규모의 대비가 되어 있지 않나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쥘리가 처한 상황은 '클라쓰'가 다른 상황이다. 2018년 세계 외신을 연일 들썩이게 했던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의 순간을 영화는 워킹맘 쥘리의 극한체험을 통해 세세한 해설 없이 실감나게 전달해낸다(영화 속에서 시위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 임마누엘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 조치에 대한 항의로 촉발해 정말 보기 드문 상황, 좌우가 대동단결한 전국적 시위로 번져 장기간 지속된 사건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해당 사건을 이 영화는 '노란조끼' 언급도 거의 않으면서도 극한의 리얼리티로 표현해낸다. 그 결과로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워킹맘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고통에 이르는 순환과정이 연쇄적으로 전개된다. 이 대목은 어떤 봉기나 시위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혼란과 피해의 물리적 표현을 총체적으로 상징화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법하다. 노란조끼 시위는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그야말로 '불만의 겨울'이 되어갔지만 서민들에게 가장 피부로 와 닿던 유류가격 인상이 불을 지폈다는 데에는 모두가 의견이 일치한다.
미국이 산유국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턱없이 저렴한 가격에 기름을 넣을 수 있는 건 그만큼 미국에서 자동차를 굴린다는 게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시 고도로 발전한 도시 내·외곽 교통망으로 출퇴근은 물론 물류 유통망이 유지되고 있다. 핏줄과 신경처럼 이어지는 화석연료 네트워크를 환경오염을 이유로 대기업이 아닌 서민들에게 (경유 유류세 23%, 휘발유 유류세 15% 인상) 부담을 전가해 버린 것이다. 한국이라도 정부가 이래버리면 시민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건드려선 안 될 걸 건드린 셈이다. 그 결과는 영화에선 그저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혁명의 나라다운 화끈한(?!) 대동란으로 확인된다.
쥘리의 선택
여기에서 특기할 지점은 쥘리가 취하는 태도와 입장이다. 이 영화를 선보인 후 감독에게 '포스트 켄 로치' 혹은 다르덴 형제와의 비교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던 이유를 증명하듯, 영화 속 주인공은 그저 일면적인 캐릭터로 묘사되지 않고 다면적인 면모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아마 가장 유사한 캐릭터를 들자면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 속 '산드라'가 아닌, <자유로운 세계>의 주인공 '앤지'가 저절로 떠오를 법 하다.
켄 로치 영화의 주인공 앤지는 전 직장에서 상사의 부당한 성희롱에 고분고분하지 않다 부당해고를 당한 뒤 자녀를 부양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인력사무소를 연 뒤 비합법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하게 되는 캐릭터다. 하지만 건장한 이주노동자들의 험악한 태도에 위협을 당하는 물리적 약자이기도 하다.
쥘리는 맡은 업무에 소홀함과는 인연이 없을 만치 성실하게 일한다. 하지만 경제학 석사에 시장조사 전문가의 이력을 가진 그녀는 호텔 메이드 일에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이력서에 이전 직장 폐업 후 4년간을 경력단절로 표기할 뿐, 그녀에게 메이드 일은 오직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다. 그런 그녀의 태도는 직업적 성실함에 가려져 있지만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은연중 배어난다. 그래서 관리자의 면모가 썩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그녀는 자신이 몇 년간 함께 일한 메이드 동료들에 함부로 대하진 않지만 동등한 존재로는 결코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파업의 대의에 반드시 모두가 동조할 이유는 없지만 영화 속에서 노골적으로 역정을 내는 캐릭터도 그녀가 유일한 등장이다. (물론 주인공이 역전에서 폭발하는 순간은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그저 일상에 지쳐 어딘가로 분출하고픈 자연발생적 보호방식에 가깝다)
물론 그녀가 시위에 대해 기본적으로 적대하며 정부와 대기업을 편드는 태도를 취하진 않는다. '프랑스 시민'으로서 주인공은 파업은 기본적인 시민권이라는 입장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 주인공을 돕는 이들 면면 역시 시위에 참여하거나 동조적인 이들이 대부분이다. 시위에 참여하러 가는 길에 이웃이란 이유로 파리까지 태워주는 지역 주민의 존재가 대표적이다. 그런 장치들 덕분에 <풀타임>에서 주인공을 통해 노란조끼 시위의 실체적 위력이 드러나는 순간은 오히려 정치적 찬반을 배제하고 오로지 물리적으로 얼마나 파업의 위력이 파괴적으로 발휘되는지를 체감하는 배경으로만 기능하게 된다.
(스포일러 남발을 않기 위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결국 '시민의 양식'은 복지국가 시민사회가 그 기반을 위협당하는 현실에서 위태로운 조짐을 드러낸다. 공공정책 개악을 막기 위해 연대의 위력으로 정부의 입장을 반전시키려는 시위가 그 특유의 필연적 피해로 시위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서민들에게 실체적 폐를 끼치고 그로 인해 각자도생하게 되는 과정이 전면화되기 시작한다.
특히 영화 후반 쥘리가 처하게 되는 위기의 순간 그녀의 태도에서 결국 자신을 어떤 위치에 놓고 있느냐가 쥘리의 정체성을 잘 드러나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거장들의 영화가 뛰어난 점은 그런 캐릭터를 막장 드라마처럼 선악의 기능적 역할모델에 한정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감은 나뉠 수 있지만 주인공의 선택에 이해는 갈 수가 있기에 결과적으로 더욱 더 리얼한 캐릭터로 구현되는 것이다.
▲ 영화 <풀타임> 스틸 이미지 |
ⓒ ㈜슈아픽처스 |
제목인 '풀타임'은 바로 '파트타임'의 반대말, 즉 정규직을 뜻한다. 쥘리는 필사적으로 자신과 아이들 위한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사수하기 위해 너무나 간절하게 풀타임 정규직을 원한다. 그녀의 아이를 맡아서 돌봐주던 이웃집 할머니가 쥘리에게 출퇴근 문제로 그렇게 고통을 겪을 바에야 차라리 자기가 동네 마트 계산원으로 추천해 주겠다고 할 때 그녀는 자기는 5성 호텔 근무가 낫다고 단칼에 사양한다. 하지만 정작 면접을 보러간 대형 유통기업 시장조사 전문가 구직 자리에선 5성 호텔 파트타임 경력을 감춘다. 그녀의 이력서 관리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상황을 암시하는 더없이 효과적인 기제로 작용한다.
즉 쥘리의 머릿속에서 일자리의 우열과 그로 인한 사회적 계층이동은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시골 마트 계산원 〈 도심 5성 호텔 메이드 〈 대기업 전문직으로 자리 잡은 일자리 피라미드에서 주인공이 어떤 일자리에 정착하느냐는 곧 객관적 신분이자 주관적인 의식구조까지 좌우하는 상승과 하강, 그리고 그에 따른 계급의식의 증명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된다. 의외로 이 영화는 무척 사회학적인 설정이 탄탄하다.
특히 흥미로운 장면은, 주인공의 면접관이 쥘리를 떠보는 대목이다. 쥘리의 전 직장은 대기업 유통업체와 경쟁하다 몰락한 중소업체였고 시장조사와 마케팅을 담당하던 주인공은 당시엔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비판하는 활동을 선전홍보 일환으로 했던 것이다. 면접관은 당시 주인공의 '활약상'을 언급하며 자신이 규탄하던 회사에 구직하러 온 입장을 질문한다. 철저하게 면접을 준비한 쥘리는 이 순간 말문을 잠시 잇지 못한다. 해당 장면 묘사는 주인공이 이중성을 띠고 있다는 비난보다는 그가 속한 살얼음 같은 위치를 관객에게 주지시키려는 정교한 배치일 테다. 결국 시민적 연대 대신에 '편'을 확실히 서라는 강자의 요구에 입장을 명확히 취해야 하는 묵시적 강요의 실존이 주인공 앞에 직면하는 것이다.
워킹맘 & 싱글맘
쥘리는 싱글맘이자 워킹맘이다. (대개 이 둘은 자연히 서로 자석 양극처럼 끌어당기게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 내내 두 자녀에 대한 양육과 돌봄 책임은 온전히 주인공에게만 전가되어 있다. 그래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해야 하고, 정작 일하는 동안에는 이웃집에 수고비를 주고 애들을 맡겨야만 한다. 그 때문에 쥘리는 전문직으로 재취업을 간절히 꿈꿀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혹시나 탈락할 것을 대비해 위기에 대한 보험 격으로 메이드 자리라도 계속 확보하려는 이중적 태도를 공공연히 드러낸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꼭꼭 감춰둬야만 한다. 주인공의 그런 내면을 기꺼이 감내해줄 기업은 프랑스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우리에게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은 한국에 비해 비교불가로 일하는 여성에게 친화적인 사회로 인식된다. 하지만 <풀타임>은 이상향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그리고 한때 그에 근접한 것처럼 보이던 나라들도 세계화의 격류 속에서 오히려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엄혹하게 주지시킨다. 쥘리가 그나마 불만족스럽지만 일상을 영위하는 건 파리라는 도시가 가진 거대한 관광수요 덕분이다. 그리고 그 경제적 부 덕분에 잘 갖춰진 대중교통 인프라가 주인공과 가족의 삶의 질을 유지시킨다. 하지만 그런 균형은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파국으로 추락할 대상이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원하던 새 직장으로 이직이 확정되는 순간 뒤도 안돌아보고 메이드 일을 그만둘 것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뿐이다. 그런 그녀의 심리와 태도는 자신이 존재해야 할 장소와 상태로 이직을 꿈꾸는 대기업과 세련된 정장을 입은 복장을 거의 변신에 가까운 수준으로 영화 속에서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신데렐라가 자정이 되면 원래로 돌아와야 하듯 주인공 역시 다시 비싼 택시비를 지불해가며 호텔 메이드로 돌아가야 한다. 주인공의 난감한 표정은 곧바로 관객에게도 아이러니한 기분으로 스며들 테다. 그렇게 쥘리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한 관객들에게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시험에 드는 순간이 찾아들어 묘한 감상에 젖게 만든다.
▲ 영화 <풀타임> 스틸 이미지 |
ⓒ ㈜슈아픽처스 |
하지만 결국 <풀타임>의 영화 속 세계는 고전적인 노동계급의 대의 옹호가 승리하는 공간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개개인이 파편화된 시공간에서 개별적인 삶을 지키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아보려는 개인의 분투가 각개약진으로 진행된다. 물론 줄리는 선택할 수 있다. 더 적은 수입과 사회적 대우에도 불구하고 좀 더 불안정한 자녀들과 오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하지만 더 이상의 사회적 신분상승은 포기해야 하는 동네 마트 계산원 vs. 수입은 늘지만 그만큼 격무에 여전히 자녀들을 떼어놔야 하는 대기업 전문직을 놓고 주인공은 정할 수 있다. 물론 그 선택권이 온전하게 자유의지일 순 없겠지만.
쥘리는 그 어떤 구조적 변화도 기대하지 않는다. 이미 주인공은 패배를 맛본 존재다. 이제는 남을 밟고 올라서서라도 자신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새끼를 지키는 어미 곰처럼 사납게 사투를 이어갈 것이다. 다른 길은 통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선량한 심성과 성실한 태도를 가진 주인공이 드라마 빌런처럼 흑화하진 않겠지만, 언제든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쥘리는 단호해질 것이다. 그런 전조는 이미 영화 중반 그녀에게 닥친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확인되기 시작한 상황이다.
<작품정보> |
풀타임 Full Time, À plein temps 2021|프랑스|스릴러/드라마 2022.08.18. 개봉|88분|전체관람가 감독 에리크 그라벨 주연 로르 칼라미(쥘리 역) 출연 안 수아레즈, 제네비에브 음니히, 시릴 구에이, 루시 갈로, 아가테 드론느, 마렘 은디아이, 올리비에 팔리에 배급 ㈜슈아픽처스 2021 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감독상, 여우주연상 2022 23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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