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다크 투어리즘'의 명소가 있습니다

김성호 2022. 8. 1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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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 남은 일제강점기 상흔, 다크 투어리즘으로 좋은 소재

[김성호 기자]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 말이 있습니다. 휴양이며 관광 목적의 여행과 달리 역사적 사건을, 특히 비극적인 역사를 추적하는 여행을 말하죠. 이를 테면 군산이며 목포, 통영 같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첨병이 된 항구에서 하는 여행, 또는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은 서울 서대문구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하는 것이 다크 투어리즘이라 하겠습니다.

보다 가까이는 진도 팽목항이나 인천 가족공원의 세월호 추모관을 방문하는 사람들, 그리고 서울 양재 시민의숲에 위치한 삼풍참사 위령비를 찾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비극의 역사적 가치를 기억하는 것이 다크 투어리즘의 본질이니까요.

한국에선 다크 투어리즘을 관광상품화하는 것이 생소한 일이지만 해외에선 이미 흔한 일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해 유대인 학살현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진주만 공습 현장에 세워진 하와이의 진주만 기념공원과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여러 위령비와 위령탑도 다크 투어리즘의 명소입니다. 심지어는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난 체르노빌 역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 이전까지 적잖은 관광객이 찾던 관광지였습니다.

목포에 숨쉬는 일제강점기의 상흔
 
 목포 케이블카 북항 스테이션.
ⓒ 김무환
전라남도에서 세 번째 가는 도시이자 유명한 항구인 목포에도 다크 투어리즘의 요소가 적지 않습니다. 목포는 호남평야에 이어 두 번째로 드넓은 전라남도 나주평야 산물을 송출하는 주요 항만이기에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이곳을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전라도 일대를 담당하던 일본군 150사단이 한동안 주둔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목포엔 일본식 건물들과 문화재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이 모두 다크 투어리즘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목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시설은 단연 목포 케이블카입니다. 각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최장거리 케이블카를 유치하던 시절 목포는 100% 민간자본으로 2019년 9월 당시 국내 최장거리 케이블카를 설치했습니다. 목포 북항과 유달산, 고하도를 잇는 3.23km 거리의 케이블카였습니다. 최장이란 기록은 이내 깨지고 말았지만 목포를 찾는 이들 중 상당수가 비싼 가격에도 케이블카를 탈 만큼 명소가 되었습니다.

케이블카는 모두 세 곳에 승강장을 두었습니다. 대체로 출발지는 북항이며, 도착지는 고하도, 중간에 한 번 내릴 수 있는 기착지로 유달산에 승강장이 있습니다. 100% 민간자본으로 운영되는 탓인지 승강장은 내부 공간에 비해 근무인원이 부족하고 시설도 적은 편입니다. 특히나 내부에 문화재나 예술작품 등 목포의 오늘을 알릴 수 있는 설치물이 많이 부족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시아권 대표적인 케이블카 승강장인 베트남 사파의 판시판산 케이블카 승강장 같은 모델을 살펴보았다면, 남는 공간에 지역민들의 작품이며 지역 문화재에 대한 충실한 소개 코너를 두는 게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듯해 아쉽습니다.
 
▲ 유달산 일제가 유달산 암벽에 부동명왕상을 새겨 놓은 모습.
ⓒ 김무환
 
유달산에 남겨진 흉악한 불상

그럼에도 이 케이블카는 매력적입니다. 특히 케이블카가 들르는 세 곳 승강장 모두에서 다크 투어리즘의 소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우선 출발지인 북항은 그 자체로 다크 투어리즘이 재료로 삼는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 즉 부정적 유산입니다. 북항은 1897년 10월 개항해 올해로 133년째를 맞았습니다. 강점기 내내 공출항으로 기능했고 부산과 인천에 이은 조선 3대 항구로 불렸습니다.

중간 기착지인 유달산에도 아픔이 있습니다. 충무공 부대와 얽힌 일화가 있는 노적봉을 비롯해 산 곳곳에 수십 개의 쇠말뚝이 박혀 있는데 이중 상당수가 일제가 박은 것으로 추정되는 실정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군이 방공호 목적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굴을 비롯해 암벽에 큼지막하게 자리한 홍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일제는 유달산에 무려 88개의 불상을 조각해놓았다고 하는데, 이중 여럿이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혹은 훼손된 상태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마지막 승강장인 고하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하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이후 106일 간 머물며 판옥선 40여 척을 건조하고 군량미 2만 섬을 조달했으며 8000명의 수군을 훈련시킨 재건의 땅입니다. 케이블카 승강장엔 이 같은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는 내용이 없다시피 하지만 섬엔 다크 투어리즘의 요소가 적잖아 발전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 고하도 방공호 일제가 조선민중을 동원해 고하도에 만들었다는 방공호. 비상시 군 대피시설로 조성됐다.
ⓒ 김무환
 
숨기면 수치, 알리면 반성

우선 일본군 150사단이 공습을 우려해 조선 민중을 동원해 팠다는 방공호가 섬의 동편, 해안데크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폭약으로 뚫고 곡괭이로 마무리 작업을 했다는 방공호들은 고하도를 찾는 낚시꾼들이 더위를 피하는 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안데크를 걸어서는 방공호에 직접 들어설 수 없고, 땡볕 속에서 수km에 달하는 길을 걷는 동안엔 이 같은 내용을 미리 알 수 없어 안타까움이 큽니다. 다크 투어리즘의 생명인 역사적 설명 역시 부실하다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지요.

더욱이 다크 투어리즘인 동시에 자랑스러운 역사적 유적일 수 있는 이충무공 유적지도 케이블카 관광객에게 제대로 홍보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케이블카를 연계한다면 목포시는 고하도라는 풍요로운 관광 요소를 더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크 투어리즘의 재료인 부정적 유산들은 숨기면 수치가 되지만 드러내면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상이자 과거의 아픔을 기리는 정신의 상징이 됩니다. 이미 해외 여러 관광강국들이 다크 투어리즘을 성공적으로 상품화해냈습니다. 목포는 다크 투어리즘의 자산을 많이 갖춘 도시입니다. 그러나 목포가 이를 상품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부디 목포의 미래가 더 나아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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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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