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염창희의 그 영화 속 여배우

김성호 2022. 8. 1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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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388] <리턴 투 파라다이스>

[김성호 기자]

▲ 리턴 투 파라다이스 포스터
ⓒ 20세기 폭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마지막회에서 한 영화 이야기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제목은 <리턴 투 파라다이스>, 한국에선 본 사람 얼마 없는 조셉 루벤의 1998년작이다. 드라마 속 인물인 염창희(이민기 분)가 어찌나 절절하게 이 영화 이야기를 했는지 적잖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구하려 발을 동동 굴렀다는 후문이다.

어느 OTT 서비스에서도, 심지어는 없는 영화가 없다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이 영화는 그래서 더욱 많은 이들에게 여운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염창희가 친구에게 말한다. 고등학교 땐가 보았던 영화 한 편이 있다고, 동남아시아에서 배낭여행을 하던 미국인 남자 셋의 이야기라고 말이다. 같이 어울려 놀던 친구 중 둘은 미국으로 돌아가고, 한 명이 현지에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변호사 한 명이 귀국한 친구 둘을 찾아왔다고 했다.
  
▲ 리턴 투 파라다이스 스틸컷
ⓒ 20세기 폭스
 
천국 같았던 동남아, 그러나...

내용인 즉, 이렇다. 셋이 마리화나를 했는데, 남아 있던 한 명이 그걸 갖고 있다가 경찰에게 발각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견된 마리화나의 양이 현지법으론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두 친구가 돌아가지 않으면 꼼짝없이 남은 한 명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두 친구에게 돌아가 죄를 나눠지는 게 어떻겠냐 말했다. 두 명이 가면 3년씩, 한 명이 가면 6년을 복역하는 조건으로 사형을 언도받은 친구가 살 수 있다며.

창희는 계속 말한다. 두 친구 중 양심적인 척했던 이는 교도소 환경을 보고 도망갔는데 안 가겠다고 하던 친구만 괜히 증언하고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고. 그런데 상황이 또 뒤틀려서 교도소에 있던 친구는 교수형을 피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끌려가 사형이 집행됐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교도소에 수감된 친구는 창살 밖으로 다른 친구가 교수형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교수대에 서서 덜덜 떠는 친구를 향해 다른 친구가 외친다.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그 10분, 아니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을 위해 교도소에서 3년을 썩을 수 있겠다고, 창희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 리턴 투 파라다이스 스틸컷
ⓒ 20세기 폭스
 
앤 헤이시가 연기한 변호사, 그녀의 분투

사실 영화는 창희가 기억하는 것과, 또 박해영 작가가 적은 것과 조금은, 혹은 제법 다르다. 친구가 교도소에 가기로 한 결정 뒤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한다. 친구가 교도소에서 썩게 되는 기간도 3년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이야기하는 것, 단 10분을 위한 몇 년의 시간이 어딘가엔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걸 이 영화는 분명 설득해내고 있다.

내가 <리턴 투 파라다이스>를 떠올린 건 적잖이 불완전했던 이 드라마에서의 묘사 때문이 아니다. 영화 속 두 친구를 설득하려 동분서주했던 변호사 베스(앤 헤이시 분) 때문이다.

베스는 브루클린에 살고 있다는 두 친구의 이름만을 알고서 이들을 찾아내어 만난다. 그리고는 말한다. 2년 전 너희가 말레이시아에서 만났던 한 친구가 사형을 앞두고 있다고, 그러니 돌아가 그를 구하라고 말이다. 친구들은 당혹하고 주저한다. 당신이라면 한때의 인연으로 그 고된 수감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고 쏘아붙이기도 한다. 그들 앞에서 그녀는 말한다. 2년 전 만난 인연을 위해 기꺼이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먼저 던지고 그 답까지 들어보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들 앞에 서지 못했을 거라고.

한 명의 변호사를 넘어 온갖 수단을 다해 수감된 루이스(호아킨 피닉스 분)를 구해야만 했던 그녀의 사정은 영화를 관통하여 가장 크고 진솔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 리턴 투 파라다이스 스틸컷
ⓒ 20세기 폭스
 
교통사고로 세상 떠난 앤 헤이시, 그녀의 대표작

헤이시는 절망의 문턱 앞에 선 마지막 보루, 가녀리고 매순간 흔들리면서도 끝끝내 자기를 부여잡아야 했던 베스를 더없이 훌륭하게 연기해냈다. 왜소한 체격으로 건장한 이들을 열악한 동남아 어느 나라 교도소로 향하는 비행기에 태우는 강인한 변호사를 연기한다. 또 루이스에 대한 사형언도에 통곡하고 절망하는 여자를 연기한다. 그녀는 고뇌하는 남자에게 이끌리는 한 명의 여자이며 끝끝내 솔직하지 못해 괴로워했던 연약한 영혼이기도 하다. 헤이시가 있어 이 단순하고 일면 부실한 영화가 강한 추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헤이시와 이 영화를 떠올린 건 며칠 전 접한 뉴스 때문이다. 교통사고 뒤 뇌사판정을 받은 겨우 53세의 여배우,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으나 <식스 데이 세븐 나잇> 정도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는 이 배우의 부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명화가 한 편 있고, 그것이 바로 이 영화 <리턴 투 파라다이스>다.

비록 한국영상자료원조차 영화를 구비하지 않고 있고 OTT 서비스에서도 찾을 수 없는 관계로 볼 방법이 마땅찮지만 언제고 이 영화를 볼 방법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의 헤이시는 그냥 이렇게 잊히기엔 너무나도 멋진 연기를 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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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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