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부적격 F 평가' 각오하고 쓴 대국민 고발장

장호철 2022. 8. 1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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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부 고발 검사 임은정의 10년의 기록과 다짐 '계속 가보겠습니다'

[장호철 기자]

 
 임은정 지음 <계속 가보겠습니다>(메디치미디어, 2022, 18,000원)
ⓒ 메디치미디어
 
검사 임은정의 이름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2012년 윤길중 재심 사건에서 관례인 '백지 구형' 대신 법정의 공판 검사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무죄 구형'을 했다는 짤막한 일간지 기사에서였다.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는데, 정작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등허리가 서늘해졌었다.

무죄 구형으로 중징계 받은 그 검사의 10년

그가 그 일로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것은 2013년 2월이다. 그쯤에서 끝났다면 우리는 그의 이름을 더는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무죄 구형 뒤에 용감하게 '징계 청원'이라는 글을 검사 게시판에 올렸고, 5년간의 징계 취소소송을 벌여 2017년 10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여전히 검찰의 내부 고발자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검사 임은정의 단독 저서인 <계속 가보겠습니다>의 부제는 '내부 고발 검사, 10년의 기록과 다짐'이다. 1998년 사법시험 40회에 붙어 2001년에 인천검찰청 검사로 임용된 그는 '공판 업무 유공'을 인정받아 검찰총장상(2007년)을 받았고, 법무부 선정 '우수 여성 검사'(2012년)가 되어 서울중앙지검 공판부에 배치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가 내부 고발자로 살면서 자기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는 것은 이른바 '잘 나가는 검사'에서 '문제 검사'로 '급전직하'한 2012년 무죄 구형 사건이 아니다. 그는 법무부 법무심의관실로 부임한 2009년을 그 전환점이라고 고백한다.

그때 그는 검사로서 애써 외면해 온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인정하고 현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는 "실체적 진실이자 사법 정의인 정답과 채점자(상관)가 정답으로 처리하는 답이 달라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 비로소 진짜 검사인지가 판가름" 난다고 믿는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린 채 저울을 들고 있다. 저울이 '법 집행에 있어 편견이 배제된 평등'을 상징한다면, 가린 눈은 차별 없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공정성을 뜻한다. 그런데 사건을 지휘 감독하는 간부의 저울이, 사건을 수사 처리하는 검사의 저울이 "공명심에 오염되면, 죄의 무게가 달라진다". 그는 "저울을 속이는 상인은 상인이 아니라 사기꾼이듯, 이중잣대로 죄의 무게를 그때그때 달리 저울질한다면 검찰의 자격이 없다"고 믿는다. 

조직으로부터 소외되고 동료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게 내부 고발자의 운명이다. '도가니 검사'로도 불린 스타 검사 임은정은 무죄 구형 이후에 '막무가내 검사'로 찍힌 이래, 걸핏하면 사직을 강요받고, 징계 재회부 경고를 받는가 하면 그와 친한 후배가 '임은정 부역자'가 되는 참담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동료들의 '돌팔매'로, 자신 위로 '돌무덤'이 만들어지는 걸 지켜보면서 그가 아프지 않았던 것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조직과 충돌할 때마다 담담하지만 두렵다고 고백한 그 역시 보통 사람일 뿐이다. 임은정의 기록이 영웅담도 승리의 이야기로도 읽히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부끄러움 앞에서 의연히 그 두려움에 맞서는 선택을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다.

돌팔매를 맞으며 지켜낸 내부 고발자의 목소리

조직은 임은정 개인에게 '적격 심사'라는 방식의 압박도 가해왔다. 그 파고를 넘기 위해 그는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야 했다. 검찰은 임은정 징계나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게시했던 '정직한 검사'였던 선배 검사를 본보기 삼아 적격 심사로 퇴출하고 그에게도 거미줄을 죄어왔다. 

그러나 그는 "함께 꾸고픈 꿈 : 검찰개혁"을 그리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시스템은 한 개인의 반대를 착각으로, 두 사람의 반대를 감응성 정신병으로 매도할 수 있지만, 세 사람이 같은 편에 서면 여러분을 함부로 하기 어려운 힘이 된다"(필립 짐바도르, <루시퍼 이펙트 :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는 글귀에서 개혁의 방향성을 찾았다. 그가 "앞으로도 동료의 불복종 용기에 기꺼이 함께하"리라고 다짐하는 이유다. 

책의 1부 '난중일기'에는 저자가 검찰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에 쓴 글 19편과 글을 쓰게 된 상황, 그 뒷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것은 검찰개혁에 관한 저자의 생각과 그로 인해 빚어진 갈등을 복기한 검사 임은정의 성장기다. 2부 '나는 고발한다'에서는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 13편과 분량 제한으로 칼럼에 담지 못하고 행간에 묻었던 사연과 뒷이야기를 담았다. 

동료로부터 받은 온갖 적대와 혐오, '저 혼자 투사인 척한다, 정치하려고 저런다, 친정부 검사다'라는 등의 온갖 매도와 협공에도 그는 살아남았다. 그는 "검사 게시판에서 칼럼으로, 책으로 전선(戰線)을" 옮기면서 지금도 발언을 멈추지 않는다. 비리가 있다면, 전 현직을 불문하고 직속 부장검사뿐 아니라, 검사장, 검찰총장을 고발한다. 그는 그것을 "'검사 부적격 F 평가'를 각오하고 쓰는 대국민 고발장"이라고 명명한다. 

'책임을 물을 뿐 책임지지 않는 조직'을 부끄러워하는 진짜 검찰주의자

무엇이 그를 이렇게 두려움 없이 나아가게 만든 것일까. 그는 검찰의 과오를 고백하면서 그것을 고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검찰이 바로 서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와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검찰은 책임을 묻는 조직일 뿐 책임을 지는 조직이 아님"을 부끄러워하는 임은정은 "조직을 대단히 사랑하고 있다"라고 고백한 전직 검찰총장 윤석열과는 다른 의미에서 진정한 '검찰주의자'다. 
상명하복이 지배하는 조폭과 우리 검찰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우리에게 상명하복에 우선하는 '정의로서의 법과 원칙'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검사 개개인이 고유의 법적 양심에 따라 '정의로서의 법과 원칙'을 고민하고 상급자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때, 상급자가 끝내 불의한 지시를 거두지 않으면 최소한 그 지시를 거부하고 불의에 가담하지 않을 때, 진실로 검사가 검사일 수 있고, 검찰이 검찰로서 자리매김합니다. - '검사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습니다' 중에서  

보통 사람 같으면 1년도 버거웠을 고단한 시간을 임은정은 10년째 버텨오고 있다. 짐짓 의연한 척, 두렵다고 말하면서 그 두려움을 안간힘으로 물리치려는 그의 모습을 읽으면서 부끄러움과 안쓰러움이 가슴이 옥죄어왔다. 담담하게,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 그의 낮은 목소리는 우리들의 잠든 일상을 깨뜨리는 비장한 절규처럼 들린다.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정직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여 동료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내부 고발자에게 외로움은 숙명입니다. 살얼음판 딛듯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10년째 버텨오고 있고, 버텨갈 각오입니다. (……) 

'확실하다고 판단한 것만 말하고, 전선은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생존 원칙을 세워 지켜오고 있기에 지금껏 살아남았습니다. 징계나 적격 심사를 대비하여 매일매일을 기록한 지 오래입니다. 내부 고발자의 삶은 그렇게 고단하고 팍팍합니다. - '아이 캔 스피크 2' 중에서

그는 지금 "수사 검사가 아닌 고발인, 민원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디딤돌' 판례 만들기로 목표를 바꾸어, 검사들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증명 가능한 사건으로 엄선하여 고발장을 내는 방식이다. 물론 그게 여의친 않지만.
부끄러운 선배들과 검찰사를 성찰하고 '검사 선서'대로 살기 위해 종종거리다 보면, 비록 보잘것없지만, 어둠을 조금이나마 내모는 반딧불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양심을 지키기 위해 저항한 사회적 모델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검사 선서'를 읊조리며 씩씩하게 계속 가보겠습니다. - 에필로그 '나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중에서

나는 그가 꼼꼼하고 냉정한 기록자이며, 그 기록이 인간의 온기로 따뜻함을 확인한다. 그가 담담하게 건네는 이야기를 빛내는 것은 자제와 겸양의 태도고, 그것을 한 개인의 체험을 넘어 한 시대의 화두로 상승시키는 것은 작가의 치열한 성찰의 결과다. 검찰의 변화를 그리며 씩씩하게 나아가는 그를 응원하면서 우리가 성취한, 그리고 성취해야 할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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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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