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앞 밤새 긴줄 늘어섰다..수천명 홀리는 '신라의 달밤'
지난 13일 저녁 경북 경주. 장맛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첨성대 앞은 신라의 달밤을 맞으러 나온 관광객으로 붐볐다. 비구름만 아니었으면 슈퍼 문이 뜨는 날이었다. 첨성대 왼쪽 어귀 천막에 긴 줄이 서 있었다. 천막 안을 들여다보니 예닐곱 명이 앉아 백등에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마침 비가 그쳤다. 손수 그림을 그린 백등 들고 참가자들이 첨성대 앞에 모였다.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던 ‘신라달빛기행’이 재개되는 순간이다. 달 없는 경주의 밤이었지만, 달빛기행에 나선 참가자들의 얼굴은 달처럼 밝았다.
원조 달빛기행
2003년 즈음해 달빛기행은 경주 시내로 내려왔다. 분황사·불국사·서악서원·첨성대 등에서 행사를 치렀다. 해가 지면 경주 관광도 끝나던 시절, 경상북도와 경주시는 달빛기행에서 경주 관광의 미래를 봤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경 명소가 된 월지(그때는 안압지)를 비롯한 경주 시내 문화유적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그맘때였다.
경상북도와 경주시로부터 받은 예산으로 신라문화원은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위태로웠던 종이컵 안 촛불을 백등 안 건전지 촛불로 교체했고,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악 단체를 섭외해 국악 공연 프로그램을 배치했다. 백등은 지금도 경주 시니어클럽 소속 어르신들이 제작하고 있다.
달빛기행은 고유명사다. 신라문화원이 2005년 달빛기행 상표권을 등록했다. 지금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달빛기행이란 이름으로 야간 투어를 진행한다. 2007년 문화재청이 ‘창덕궁 달빛기행’을 시작하면서 달빛기행이 보통명사처럼 퍼졌기 때문이다. 진병길 원장은 “문화재 활용이라는 문화재청의 뜻을 존중해 사용하도록 허락했다”며 “다만 원조가 여기 경주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 전까지 신라달빛기행은 해마다 6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했다. 매달 기행이 진행됐고, 행사도 규모가 컸다. 월정교·월성 등에 조명이 들어오고 늦은 밤에도 황리단길에 인파가 몰리면서 경주는 이제 해가 진 뒤에 더 화려한 도시가 됐다. 그 맨 앞에 신라달빛기행이 있었다.
10월까지 5회 진행
3년 만에 재개한 신라달빛기행은 모두 다섯 차례 진행된다. 7월 30일과 8월 13일 행사는 끝났고, 9월 3일과 17일, 10월 8일 행사만 남았다. 참가비는 1만원. 나머지 행사 비용은 예산으로 메꾼다.
기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공연이 시작된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단과 참가자가 강강술래 뒤풀이까지 마치면 오후 10시쯤이 된다. 달빛기행에 참여한 박주연 해설사는 “체험을 병행해서 그런지 참가자들이 해설을 끝까지 귀담아들었다”고 말했다. 신라의 달밤은 화려하고 유익했다.
경주=글ㆍ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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