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한센의 150세 기념 파티에 다녀오다 #디자인 #전설 #모험기

이경진 2022. 8. 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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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브랜드 프리츠한센이 무려 150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들의 전설 같은 디자인 모험기에서 발견한 단순한 열정과 비범한 미래.

“프리츠한센의 오랜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최고의 자리라 생각했어요. 디자인 건축에 푹 빠진 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여기에서 전시를 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감동적이었습니다.” 프리츠한센의 헤드 디자이너 마리 루이스 회스트보(Marie-Louise Høstbo)가 애정 어린 마음으로 소개한 이곳은 코펜하겐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덴마크 디자인박물관이다. 1920년 이후 도시 최고의 로코코 스타일로 손꼽혀온 건물은 18세기에 왕립병원으로 건축됐고, 1926년에 이르러 건축가 이바르 벤트센(Ivar Bentsen)과 카레 클린트에 의해 박물관으로 단장됐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2022년. 프리츠한센은 덴마크 디자인 축제 ‘스리 데이즈 오브 디자인(3 Days of Design)’을 맞아 박물관 속 정원인 ‘그뢴네 가든’에 검은색의 목재 파빌리온을 지으며 브랜드의 150주년을 자축했다.

스카게락의 아웃도어 가구가 놓인 그뢴네 가든.

파빌리온의 디자인은 심플하다. 화사한 햇살이 비추는 조개껍데기처럼 투명한 구조는 주변을 둘러싼 그뢴네 가든과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단순하고도 원초적인 매력의 검은 집은 이들이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여 다듬어온 디자인 정신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파빌리온은 건축사무소 헤닝 라르센과 협업해 건설했어요. 헤닝 라르센은 ‘벨룩스’라는 창문 제조회사와 함께 여러 전시공간을 이동하며 지속 가능한 건축물을 제작해 왔죠. 이번 파빌리온 역시 모든 건축 요소를 분리하고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됐습니다.” 파빌리온의 벽과 천장에는 물병을 재활용한 플라스틱, 목재 프레임은 내구성이 강한 북유럽 소나무 원목을 사용했고 모든 재료는 재활용할 수 있다.

PK0 A™ 체어와 PK 60 커피 테이블로 시작되는 파빌리온 전시장.

덴마크 디자인박물관은 스리 데이즈 오브 디자인이 막을 내린 이후, 올여름 동안 파빌리온을 작업장 겸 강의실이자 여러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로 활용 중이다. 여름이 지나면 파빌리온 제작에 쓰인 모든 재료는 다시 프리츠한센 본사 재건축에 사용될 것이다. 파빌리온 내부에는 프리츠한센 컬렉션 제품이 엄선돼 있다. 150년의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기보다 시간과 스타일을 초월해 훗날 프리츠한센의 ‘클래식’이 될 상징적인 컬렉션을 고른 듯했다. 폴 케홀름, 캐스퍼 살토의 작품부터 에그 테이블과 에세이 테이블에 이르는 컬렉션은 프리츠한센의 가구가 시간과 스타일을 초월하며 다양한 공간에 얼마나 유연하게 활용될 수 있는지 증명한다. 파빌리온 입구에서 방문자를 맞이한, 가장 전방위에 배치된 PK0 A™ 체어와 PK60 커피 테이블은 폴 케홀름이 1950년 초에 프리츠한센에서 일하던 당시 디자인. 지금껏 공개된 적 없던 제품들은 새롭게 도입한 소재를 기반으로 프리츠한센의 역사에 기록된 매력적인 디자인을 재현했다. “PK0 A™ 체어는 블랙 애시드 우드와 오레곤 파인, 두 가지 소재로 선보이는데, 이 중 오레곤 파인 제품은 폴 케홀름이 가장 선호한 소재다.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 한가운데에 등장한 프리츠한센의 검은 파빌리온.

프리츠한센이 150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마리 루이스 회스트보는 말한다. “오래전부터 다양한 디자이너들과 함께한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프리츠한센 내외부 사람들과 개방적인 자세로 일하면 한계를 뛰어넘게 돼요. 우리는 브랜드 역사를 기반으로 미래를 향해 달려갑니다. 새로운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연계성을 찾아 조화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이 강점이죠.” 다양하고 흥미로운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은 브랜드의 오랜 질주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요소. 프리츠한센은 이제 세계적 디자인 페어와 디자이너 쇼에 참여하면서 전 세계의 가구 디자이너들이 이미 그들에 관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에그 체어와 스완 체어 등으로 꾸린 리빙 룸 섹션.

전임 헤드 디자이너이자 지금은 글로벌 앰배서더로 일하는 크리스티안 앤더슨(Christian Andersen)은 디자이너 오키 사토(Oki Sato)와의 일화를 들려줬다. “프리츠한센과 협업하고 싶어 하는 디자이너가 많은 동시에 협업을 꺼리는 디자이너들도 있어요. 우리랑 우든 체어를 제작한 오키 사토는 후자였습니다. 그는 처음엔 협업 제안을 거절했어요. 프리츠한센 컬렉션에 이미 대단한 제품이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우리는 조금 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통해 그의 장인 정신과 프리츠한센의 DNA가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느꼈습니다.”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방식은 각각 다르지만, 프리츠한센은 디자이너와의 모든 소통, 그들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이메 아욘과는 끝없는 논의를 통해 제품을 제작합니다. 그가 아트워크를 그려내면 프리츠한센은 그것을 가구에 접목해 해석하는 식이죠. 우리는 세계 각지의 디자이너들로부터 아이디어가 담긴 이메일을 받곤 해요. 최대한 성심껏 답변하고, 어떤 형식으로든 피드백합니다. 150년간 성장해 온 브랜드로서 항상 디자이너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존중해야 하니까요.”

프리츠한센의 풍부한 디자인 유산을 엄선해 배치한 아카이빙 섹션.

프리츠한센은 앞으로도 디자이너들과 흥미로운 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긴 역사 속에서 항상 든든한 파트너로 활약했던 건축가들도 마찬가지. 아르네 야콥센의 에그 체어가 아르네 야콥센의 토털 디자인의 결과물인 SAS 로열 호텔을 위해 탄생한 것처럼, 건축가들과 협업해 새로운 건축물의 용도에 맞는 제품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는 프리츠한센에 빼놓을 수 없는 축이다. “디자인과 건축, 예술은 서로 연관성이 깊습니다. 건축을 배제한 디자인은 아마도 덜 매력적이거나 시장과의 연계성이 낮을 거예요. 프리츠한센이 건축가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죠. 에그 체어, 스완 체어같이 목적성이 있는 제품은 건축물과 만났을 때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니까요.” CEO 조셉 카이저(Josef Kaiser)의 말이다. 프리츠한센은 건축과 디자인이 하나의 맥락을 이룬 공간의 힘을 오랜 시간 증명해 왔다. 코펜하겐의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그룬트비 교회(Grundtvig’s Church)는 건물과 건축가 그리고 아이디어가 잘 연결된 성공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로 1940년에 완공됐다. 건축가 카레 클린트의 아버지와 그 자신 그리고 아들이 참여한 스칸디나비아 고딕 양식의 교회에 카레 클린트가 건물을 위해 디자인하고 프리츠한센이 제작한 의자가 장관을 이룬다.

크리스티안 앤더슨.

1930~70년대까지 프리츠한센은 협업했던 디자이너들과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건축가 혹은 디자이너가 오피스나 학교 같은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그에 어울리는 가구를 프리츠한센과 함께 제작하기를 원했기 때문. 당시 프리츠한센은 북유럽에서 가장 규모 있는 제조회사였다. “회사는 이런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크게 성장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디자이너들에게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가며 협업하기를 제안했죠. 그때부터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기 시작했어요. 수많은 디자이너가 투입됐는데, 사실 이 시기에 우리만의 특별함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마리 루이스 회스트보.

이후 프리츠한센은 깊은 관계에서 함께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을 더욱 전략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캐스퍼 살토, 세실리에 만즈 같은 새로운 디자이너들과 일하면서 사무용 가구를 제작했고, 상업 및 주거공간을 위한 제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이기 위해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디자이너들과 협업했다. “하이메 아욘은 우리 브랜드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는 디자이너였어요. 우리 컬렉션에서 조형적인 디자인 비율을 넓히고 싶어 적합한 디자이너를 오랜 시간 찾다가 하이메 아욘을 발견했죠.” 프리츠한센은 조각가이자 도예가이기도 한 하이메 아욘의 동시대적 사고와 뛰어난 형태 감각에 매료됐다.

하이메 아욘이 디자인한 가구로 꾸민 SAS 호텔 룸. 호텔은 한 차례 레너베이션을 거쳤지만,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60cm 폭의 창은 그대로다.

조형적인 디자인의 가구를 그와 함께 제작할 것으로 기대했다. 크리스티안은 말했다. “지금은 디자이너들이 우리보다 시장을 더 잘 알고, 이런 면에서 선구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디자이너들은 현대인의 생활방식과 소비방식, 소통방식을 언제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많은 걸 배워요. 이제 우리는 디자이너들에게 구체적 요구가 아닌 추상적 과제를 제시하죠.” 몇 년 전, 프리츠한센은 한 독일 디자이너에게 앉아서 독서하기 좋은 라운지 체어를 디자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매우 추상적인 방식이어서 프리츠한센과 디자이너는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대화는 디지털 사회에 지친 사람들이 종이책을 다시 찾는 경향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SAS 호텔 로비 라운지.

그뢴네 가든 곳곳에는 최근 프리츠한센의 가족이 된 브랜드 ‘스카게락(Skagerak)’의 가구가 놓여 있었다. 150년의 생명력을 가진 브랜드는 아웃도어 가구가 그들에게 없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무렵 프리츠한센에 브랜드 매각 의사를 밝힌 스카게락을 선물처럼 받아들였다. 시끌벅적한 파티가 한창인 파빌리온을 빠져나와 정원에 점점이 놓인 스카게락의 의자에 앉아 한참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나무를 최소한으로 가공해 보드랍고 아름답게 제작한 스카게락의 가구에서 나무가 주는 날것의 감각을 느끼며, 앞으로 계속될 프리츠한센의 디자인 모험을 즐겁게 상상할 수 있었다.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공간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 SAS 호텔 606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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