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재편 한화그룹 WHY & WHAT
김승연 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이 대대적인 사업 재편에 나서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단순히 경영 효율성을 높이려는 조치인지, 김 회장 삼남 승계까지 염두에 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화 사업 재편 들여다보니
▷방산, 에어로스페이스로 ‘헤쳐 모여’
한화그룹 지주사 격인 ㈜한화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임팩트(옛 한화종합화학) 등 계열사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사업 재편 내용을 담은 안건을 통과시켰다.
먼저 3개 회사로 흩어져 있던 방산 사업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통합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에서 물적분할된 방산 부문을 인수하고, 100% 자회사인 한화디펜스를 흡수합병한다. ㈜한화 방산 부문은 탄약과 레이저 대공무기 기술을 보유했다. 한화디펜스는 K9 자주포, 5세대 전투장갑차 등을 생산하는 업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6월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의 모든 엔진을 제작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항공기 가스터빈 엔진 제작 기술을 가진 항공·우주 전문 기업으로 손꼽힌다. 이번 인수합병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상에서부터 항공우주에 이르는 명실상부한 종합방산 기업으로 도약해 ‘한국형 록히드마틴’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2030년까지 ‘글로벌 방산 톱10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비전도 제시했다.
방산업계에서는 한화그룹 방산 부문 통합으로 수출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방산업계 특성상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야 서로 호환되는 제품끼리 ‘패키지 판매’가 가능한 데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세계 최고 방산 기업으로 손꼽히는 미국 록히드마틴도 미국의 군용기 제조사 록히드와 마틴마리에타가 1995년 합병해 탄생한 회사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내 방산 수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한화그룹 방산 부문 통합은 시기적절한 조치로 보인다. 글로벌 사업 역량을 통합해 해외 수출 경쟁력을 높이면 세계적인 방산 기업으로 도약할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종합 방산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해 투자, 연구개발(R&D) 여력이 높아질 것이다. 턴키 수주가 쉬워지고 무기 체계, 발사체, 위성 사업 효율성도 좋아질 것”이라는 김지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 의견도 비슷한 맥락이다.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항공우주 사업 경쟁력도 높아질 전망이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3월 우주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컨트롤타워 ‘스페이스 허브’를 출범시켰다. 이번 방산 계열사 통합을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우주 발사체 엔진 기술과 ㈜한화 방산 부문의 우주 발사체 연료 기술 결합으로 기술력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다.
사업 재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화는 3개 사업 부문(글로벌, 방산, 모멘텀(기계)) 중 방산 부문을 떼어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매각하는 대신, 모멘텀 부문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자회사인 한화정밀기계를 인수한다. 이를 통해 ㈜한화는 반도체, 2차전지 등 소재, 장비 전문 기업으로 재탄생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존 ㈜한화 모멘텀 부문(옛 기계 부문)이 추진해온 2차전지, 태양광,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 사업과 한화정밀기계의 반도체 후공정 패키징 장비, 발광다이오드(LED)칩 마운터 사업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겠다는 포부다. 이승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방산 부문 분할, 매각으로 그동안 가려졌던 ㈜한화 모멘텀 부문 가치가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사업 부문인 ㈜한화 글로벌 부문은 소재에 역량을 모은다. 지난 3월 1400억원가량을 투자해 태양광, 반도체용 폴리실리콘과 특수가스를 생산하는 미국 REC실리콘 지분 12%를 인수했다. 향후 2차전지, 반도체 등 고부가 소재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암모니아,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소재에 사용되는 질산유도체 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동시에 ㈜한화는 100% 자회사인 한화건설도 흡수합병한다. 한화건설은 지난해 매출 2조6334억원, 영업이익 1183억원을 기록한 시공능력평가 10위권 건설사다. 한화 관계자는 “한화건설 합병으로 ㈜한화는 매출, 영업이익 상승효과가 나타난다. 한화건설 재무건전성이 강화돼 주요 사업 자본조달비용을 낮추고 수주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한국신용평가는 한화건설을 신용등급 상향 검토 대상에 올리기도 했다. 김상수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한화가 한화건설을 흡수합병하면서 한화로 이관되는 한화건설 회사채는 신용등급 상향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화학 업체에서 투자 전문 회사로 탈바꿈한 한화임팩트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자회사인 한화파워시스템을 인수한다. 한화파워시스템은 산업용 공기, 가스압축기 등 에너지 장비 전문기업이다. 가스터빈 개조 기술, 수소혼소(혼합연소) 발전 기술에 강점을 가진 한화임팩트는 이번 인수를 통해 차세대 혁신 발전원 개발에 나서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도약할 계획이다. 한화임팩트는 지난해 수소가스터빈 기업인 미국 PSM, 네덜란드 토마센에너지를 인수해 LNG 가스터빈을 수소 가스터빈으로 전환하는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화그룹이 유사 사업군 통합, 자회사 합병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20년 초에도 한화케미칼이 태양광, 소재 사업 자회사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를 흡수합병하면서 한화솔루션으로 사명을 바꿨다. 한화솔루션은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100% 자회사인 한화갤러리아, 한화도시개발을 흡수합병했다. “이번 사업 재편 역시 유사 사업군 통합과 체질 개선을 통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사업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한화 측 설명이다.
증권가 반응은 나쁘지 않다. 사업 재편으로 향후 실적 개선 효과를 누릴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2분기 ㈜한화 매출은 15조1898억원, 영업이익은 914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6.1% 늘면서 시장 기대치(5399억원)를 한참 웃돌았다. 이번 사업 재편 효과로 하반기에도 실적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다.
▶한화 사업 재편 배경은
▷‘지주사 리스크’ 탈피 목적
한화그룹이 사업 구조 개편에 나선 것은 단순히 경영 효율성만 높이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 ‘지배구조 안정’을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많다. 이번 사업 재편을 계기로 지주사 전환 리스크를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화그룹은 그동안 지주사 전환의 불확실성에 시달려왔다. 한화생명 지분을 25.1% 보유한 한화건설이 2023년부터 한화생명 지주사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공정거래법은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이면서 지주비율(자산총액에서 자회사 주식가액 총 합계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50% 이상인 경우 지주회사로 전환하도록 했다.
2023년 새 국제회계기준 IFRS17 도입으로 한화생명 부채를 기존 원가에서 시가로 평가하면 한화생명의 자본총계가 상승한다. 이에 따라 지분가치는 2조4000억원가량 늘어난다. 한화건설은 보유한 한화생명의 가치를 지분법으로 인식한다. 개편이 없다면 한화생명 지분가치 상승으로 지주비율이 높아지면서 50%를 넘기게 된다. 이는 곧 한화건설이 지주회사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건설사인 한화건설이 금융사인 한화생명의 지주사 격 회사로 바뀌는 셈이다.
지주사가 되면 공정거래법상 다양한 지주회사 규제를 받게 된다. 부채비율 200% 이하를 유지하고, 자회사 지분을 일정 비율 이상(상장사 20%, 비상장사 30%) 보유해야 하는 등의 규제가 적용된다. 이는 한화건설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화건설과 합병한 ㈜한화는 한화생명 지분을 회계상 원가법으로 처리한다. 원가법은 시가 대신, 취득 당시의 원가로 지분가치를 계산한다. 따라서 IFRS17 도입으로 인한 한화생명 자본총계 상승 여파를 반영하지 않는다. 지주비율이 상승하지 않기 때문에 지주사 전환을 피할 수 있다. 합병으로 인한 총 지분 상승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한화건설 합병 이후 ㈜한화가 보유하는 한화생명 지분은 43%에 그친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한화와 한화건설로 분산돼 있던 한화생명 지분이 단일화돼 계열 구도가 간소화되는 효과가 있다.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화는 이미 한화그룹에서 지주사 역할을 맡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해 여러 계열사를 지배한다. 다만 법적으로 정식 지주사는 아니다. 공정거래법상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서다.
지주사 격인 회사가 있음에도, 한화가 정식 지주사 전환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금산분리 규제’ 영향이 크다. 현행법상 일반 지주사는 금융 계열사 소유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지주사로 전환하면 2년 내 금융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그룹에서 분리해야 한다. 문제는 한화그룹 전체 실적에서 금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다는 점. 2021년 말 기준 한화그룹 전체 영업이익(2조9278억원) 가운데 금융 사업이 1조250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42.7%를 차지했다. 한화그룹 입장에서는 그룹 전체 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금융업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
다만, 투자 업계 일각에서는 한화가 제조, 금융 부문을 분리해 지주사 전환 기틀을 마련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장 지주사로 강제 전환되는 것은 막되, 그룹 고위층이 결단을 내리면 언제든지 제조업과 금융업 분리가 가능한 구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화그룹 측은 “이번 사업 구조 개편은 지주사 전환 계획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3세 경영 준비하는 한화
▷한화에너지-㈜한화 합병 가능성
한화그룹이 대대적인 사업 개편에 나서면서 투자자 관심은 추후 승계 구도에 쏠린다. 김승연 회장의 삼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가 어떻게 그룹을 물려받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현재 삼 형제는 한화에너지를 통해 ㈜한화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한화그룹 지배구조에는 ‘3형제→한화에너지→㈜한화’로 이뤄지는 축이 있다. 한화에너지는 ㈜한화 지분 9.7%를 들고 있다. 한화에너지 지분은 김동관 사장(50%), 김동원 부사장(25%), 김동선 상무(25%)가 100% 보유 중이다. 지난해 한화에너지는 모회사 에이치솔루션을 역으로 흡수합병하면서 에이치솔루션이 보유하던 ㈜한화 지분 4.24%를 가져왔다. 이후 ㈜한화 지분을 계속 늘려왔다.
만약 한화에너지가 ㈜한화와 합병하면 삼 형제 모두 ㈜한화의 주요 주주로 올라선다. 이후 각자 보유한 한화에너지 지분을 다른 사업 부문별 지분과 교환, 승계를 위한 밑거름으로 쓰지 않겠냐는 것이다. 또한 ㈜한화 실적이 개선되면 삼 형제가 지배력을 행사하는 한화에너지가 ㈜한화로부터 받는 배당금 또한 크게 늘어난다. 한화에너지 지분 절반을 김동관 사장이 보유했다는 점에서 배당금을 향후 승계 작업을 위한 재원 마련에도 활용할 수 있다.
그동안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삼남이 각각 사업부를 분할해 맡는 식으로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에너지 분야를 비롯한 한화의 주력 사업은 장남 김동관 사장, 금융업은 김동원 부사장, 호텔·리조트 사업 등은 김동선 상무가 담당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개편으로 ‘제조 김동관, 금융 김동원, 호텔·레저 김동선’ 체제는 확실히 자리 잡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업 부문별로 계열사가 수직 계열화되면서 삼 형제 승계 구도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장남 김동관 사장은 일찌감치 태양광 사업을 도맡아오며 한화그룹의 주력 사업을 이끌어왔다.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올해 초에는 ㈜한화의 사내이사로 등재됐다. 향후 화학·방산·항공 등 그룹의 중추 사업을 도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재계에서는 향후 김동관 사장이 지분 5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를 키워 ㈜한화와 합병하는 식으로 그룹 지배력을 키워갈 것으로 내다본다.
차남 김동원 부사장은 2016년부터 한화생명의 디지털 사업을 이끌며 금융 계열사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이후 한화생명, 손보, 증권 등 그룹 금융 계열사 전체를 아우르는 ‘라이프 플러스’ 사업을 이끄는 등 존재감을 발휘하는 중이다. 특히 이번 사업 재편 이후 ㈜한화 → 한화생명 → 한화자산운용 → 한화투자증권으로 이어지는 금융업 수직 계열화가 완성됐다. 다만 삼남 김동선 상무는 별다른 수혜를 입지 못했다. 김 상무는 2016년 한화건설에 입사해 신성장전략팀장으로 경영 수업을 받아왔으나 현재는 건설 부문을 떠나 그룹 유통·레저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한화그룹 호텔, 레저 사업 규모가 크지 않아 김동선 상무가 다시 건설업을 맡지 않겠냐는 예측도 나왔지만 한화건설이 ㈜한화와 합병하면서 쉽지 않게 됐다. 향후 한화건설이 다시 ㈜한화에서 분리될 수 있지만 예단하기 어렵다. 지금처럼 호텔, 레저 사업을 담당하는 방식이 유력해 보인다.” 재계 관계자 귀띔이다.
[김경민 기자, 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2호 (2022.08.17~2022.08.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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