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에만 기대선 안 되는 이유

이해림 헬스조선 기자 2022. 8. 17. 18: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울증, 세로토닌 결핍만으로 설명할 수 없어
항우울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효과 의문 제기
우울증은 복합 요인, 나에게 맞는 치료법 찾아야
세로토닌 결핍이 우울증 발생과 관련 있다는 근거가 미흡하단 연구 결과만으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의 항우울 효과가 부정되진 않는다./사진=약학정보원
과거에 우울증은 우울한 사람의 잘못이었다. 정신력이 약한 사람에게나 생기는 ‘엄살’이란 속설 탓이었다. 이 편견을 막아 세운 게 ‘우울증은 마음이 아닌 몸의 문제’란 관점이다. 우울증이 몸의 문제라면, 낫고자 하는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정신력이 부족해 우울증이 생겼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지난 7월 국제학술지 ‘분자정신의학(Molecular Psychiatry)’에 발표된 논문이 동요를 일으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세로토닌 결핍과 우울증 사이 연관성을 입증할 근거가 부족하단 연구 결과를 두고, 일각에선 우울증이 정말 ‘뇌의 문제’가 맞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간 항우울제로 처방되던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가 정말 우울 증상을 개선하는지에 관한 논란도 있었다. 항우울제를 이용한 우울증 1차 치료에서 최소 30%의 환자는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단 사실이 의심에 박차를 가했다. 우울증에 관한 대중적 상식에 반하는 이번 논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로토닌 결핍→우울증 발생… ‘절대 법칙’은 아냐

소위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생긴다는 말이 대중에겐 공식처럼 알려졌다. 그러나 ‘우울증의 원인=세로토닌 결핍’이라 단순화할 수는 없다. 세로토닌 결핍은 우울증 발생을 설명하는 한 방법이지만, 모든 우울증이 세로토닌 결핍을 주원인으로 생기는 건 아니어서다.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선미 교수는 “우울증의 원인은 세로토닌 결핍 외에도 다양한데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중에게 우울증의 일반적 원인을 요약해 전달할 때 ‘세로토닌 결핍’이 자주 언급되다 보니, 이것이 우울증의 보편적인 원인이란 오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대중적 상식에 어긋나나 기존의 의학 지식엔 부합한다. 세로토닌 결핍이 우울증의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 중 하나일 뿐이라면, 세로토닌 결핍으로 설명되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김선미 교수는 “우울증의 발생을 세로토닌 결핍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고 의학 교과서에도 명시돼 있다”며 “이번 논문은 이 내용을 재확인한 셈”이라 말했다.

◇우울증이 ‘몸의 문제’이기도 하단 사실은 변함없어

이번 연구 결과가 우울증이 ‘몸의 질환’이란 상식을 뒤엎지도 않는다. 세로토닌 결핍이 우울증 발생과 연관된다는 것이 반박되지 않았을뿐더러, 세로토닌 외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 등 나머지 모노아민 신경전달물질 결핍 역시 우울증 발생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경전달물질 불균형 외에도, 신체 이상으로 우울증의 병리를 설명하는 이론은 많다. ‘면역학적 이상으로 말미암은 뇌의 염증 반응’이나 ‘뇌하수체-시상하부-부신(HPA) 축의 이상’으로 우울증 발생을 설명하는 모델이 대표적이다. 신체 염증이 뇌로 전이되거나, HPA 축이 과활성화돼 코르티솔이란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면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특히 HPA 축 기능 이상은 우울증으로 입원한 환자의 40~60%, 외래 환자 20~40%에서 관찰된다고 알려졌다.

우울증이 발생하는 원인은 지금도 계속 밝혀지는 중이다. 뇌과학이 발전하며 새로운 신경전달물질의 존재가 발견되는 등 뇌의 기능과 구조를 둘러싼 이해가 확장되고 있어서다.

◇항우울제 신뢰도 떨어진 것 아냐…“계속 처방될 예정”

우울증과 세로토닌 결핍 간 관계가 의문시되며 항우울제의 일종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의 약효까지 덩달아 도마에 올랐다. SSRI는 신경세포 말단에서 세로토닌이 재흡수되는 것을 차단해 시냅스 내 세로토닌 농도를 증가시킴으로써 우울 증상을 완화한다. SSRI 외에도 ▲삼환계 항우울제 ▲모노아민 산화효소 억제제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 등 다양한 항우울제가 있지만, SSRI는 역사가 오래돼 사용 경험이 많이 축적된데다 부작용도 적은 편이라 가장 널리 처방돼왔다.

이번 논문이 SSRI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해석은 비약이다. SSRI가 그간 비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처방돼 온 것도 아니다. 김선미 교수는 “SSRI를 비롯한 항우울제의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가 많이 누적됐다”며 “그 많은 연구 내용이 이번 논문 내용만으로 뒤집히진 않는다”고 말했다. 의학계에선 우울증 환자에게 SSRI를 처방하는 것을 재검토하고 있지 않다.

◇SSRI 효과 없다면? “다른 치료법 모색해야”

SSRI를 복용한 후 우울증이 완화되지 않는 환자도 있다. SSRI를 비롯한 모노아민계 항우울제를 복용한 환자 약 40%에선 우울 증상이 완화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모노아민계는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SSRI는 우울증 치료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약일 뿐, 모든 우울증에 듣는 ‘만능’이 아니다. 우울증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발생하고, 환자마다 원인과 잘 듣는 치료법이 다르다. 어떤 환자에겐 SSRI가 효과적이어도, 다른 환자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SSRI를 복용하고 증상이 개선되지 않았다면 주치의와 상의해 치료법을 바꿔야 한다. 다른 항우울제를 복용해 보는 것이다. 심리·사회·경제적 원인이 강하게 작용해 우울증이 생긴 경우라면, 심리치료를 받거나 복지기관의 경제적 지원을 모색하는 방법도 있다. 무엇이 됐든 나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아나가는 게 중요하다.

- Copyrights 헬스조선 & HEALTH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