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견제한다면서..中으로 가는 美반도체 장비 되레 늘었다

이승호 2022. 8. 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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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중국 산둥성 칭다오항에서 컨테이너들이 운반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과 ‘기술패권’ 경쟁 중인 미국이 정작 반도체 등 자국 첨단기술의 대중국 수출을 대부분 허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25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대중(對中) 수출 중 0.5% 정도가 미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기술 관련 품목이다. 이 중 94%에 해당하는 2652건의 기술 관련 수출 신청이 승인됐다. 지난해 승인율은 88%로 조금 낮아졌지만, 데이터 보정 과정이 바뀌어 실제 승인율이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WSJ는 “(수출 허가로 인해) 미국의 반도체, 항공우주 부품, 인공지능(AI) 기술 등이 지속해서 중국에 수출됐다”며 “일부 비평가들은 미 역대 행정부에서 이뤄져 온 이러한 판매가 중국의 군사 기술을 진보시켰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압박을 이어왔지만, 실제 수치는 달랐다. 유엔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제조 장비의 대중 수출 규모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7년 26억 달러에서 지난해 69억 4000만 달러로 늘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WSJ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우려해온 미국이 실제론 대중 무역에서의 이익을 더 중시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근거로 미국의 대중 기술 수출 승인은 국방부·상무부·국무부 등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결정하지만,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들었다.

WSJ는 “미 상무부가 국가안보보다 미국의 무역 이해관계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며 “국방부에서 대중 수출규제 분석을 담당하던 스티브 쿠넨이란 관리는 군사적 이용 가능성이 있는 기술 수출 면허 승인율이 높다는 점을 ‘정책적 실패’라고 규정하며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테아 로즈먼 켄들러 상무부 수출규제 담당 차관보는 “수출 승인 결정에 대해 관계 부처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데도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미국과 중국. 사진 셔터스톡

이 같은 상황은 미국이 가진 중국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으로선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공세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자국 수출 시장의 ‘큰 손’인 중국을 함부로 포기할 수도 없다.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을 지낸 매슈 포틴저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딜레마가 심각하다”며 “(BIS가) 미국의 국가안보 보호라는 임무와 수출 증진이라는 목표를 조화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상무부에서 수출규제 업무를 이끌었던 미라 리카르델도 “중국은 우리가 직면한 최대 위협이지만 미·중 관계가 경제적으로 어떻게 돼야 하는지에 관해 정부 내 컨센서스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대중 수출을 규제하면 동맹국 배만 불릴 거란 우려도 엿보인다. WSJ는 “미국 일각에선 대중 기술 수출을 까다롭게 규제하면 독일·일본·한국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 대중 수출의 빈 자리를 메울 것을 염려한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당시 상무부 고위 관리였던 케빈 울프는 “수출 규제가 효과적이려면 동맹국들도 우리 같은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상하원을 통과한 반도체와 과학법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실제 미국 정부는 동맹국의 대중 수출 제한을 정책적으로 독려하는 중이다. 지난 9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반도체와 과학법’은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 TSMC와 같은 기업에 25%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대신, 향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국’에 반도체 시설 투자를 금지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덧붙였다. 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루샤오멍 분석가는 닛케이에 “반도체법을 우회해 중국 투자를 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며 “사실상 (미국이) 삼성전자나 TSMC의 (대중 투자) 손을 묶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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