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춘반환소송 대법 판결에 부쳐

전병선 2022. 8. 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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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성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연세춘추 기자)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에 대한 ‘1차 청춘반환소송’에서 대법원이 신천지의 손을 들어줬다. 1차 청춘반환소송은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아래 전피연)’가 모략 포교를 일삼은 신천지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이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지난 11일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한편 청춘반환소송에서 원고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사명 홍종갑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을 두고 부당한 판결이었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피고가 신천지 예수교가 아닌 다른 교단 소속의 신도나 목사인 것처럼 가장하여 원고에게 신천지 교리를 접하도록 한 행위는 사회적·윤리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원고가 재산상 불이익을 입었다거나 일상생활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 사정을 찾을 수 없다”며 “원고의 종교 선택에 관한 자유가 상실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원고 측에서 재산상 손해를 입증해야만 모략 포교의 위법성을 인정하겠다는 식이다.

그런데 피해자의 ‘재산상 손해’를 근거로 위법성을 따진 재판부 판결은 ‘1차 청춘반환소송’의 요지를 빗맞혔다. 손해배상청구의 기본 원칙인 ‘손해 3분설’을 벗어나서다. 손해 3분설에 따르면 손해는 재산적 손해(적극 손해+소극 손해)와 정신적 손해(위자료)로 구분된다. 1차 청춘반환소송에서 원고 조태영(58)씨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금인 ‘위자료’를 청구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적극적 손해에 관한 ‘재산상 불이익’을 근거로 위법성을 판단했다. 홍 변호사는 “정신적 손해와 관련한 문제에서 대법원은 적극적 손해 항목을 따졌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은 손해 3분설에 완전히 반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모략 포교 너머에 있는 문제점을 헤아리지 못하기도 했다. 이미 신천지 교리에 세뇌된 피해자가 모략 포교를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배교를 단행하기란 지난하다. 그런데 재판부는 “원고가 모략 포교를 인식하고도 교리 교육을 중단하지 않았고, 교리 교육이 강압적으로 이뤄지지도 않았다”며 피고의 선교행위를 포용했다. 이에 조씨는 “재판부는 내가 신천지 활동을 중단할 수 없었던 이유를 심리하지 않았다”며 “모략 포교를 당했다는 사실을 안 시점에서 나는 이미 신천지 교리에 세뇌당한 상태였다”고 했다. 이어 그는 “왜곡된 신뢰 관계에 따른 상황을 대법원만 헤아리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법원조직법 제8조에 따르면 상급법원의 재판에서 판단은 당해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을 기속한다. 청춘반환소송의 난항이 예상되는 이유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이 무조건 소송 종결로 이어지지만은 않는다. 새로운 사실관계가 입증되는 등 사정 변경이 생길 경우 원심(항소심)과 같은 판결을 내릴 수 있어서다. 법무법인 로고스 이흥락 변호사는 “대법원으로부터 사건을 돌려받은 대전지법이 새로운 사실관계를 인정하면 대법원 취지와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며 “이때 피고가 재차 상고하더라도 대법원은 스스로 파기한 원래 판단에 반드시 기속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전피연은 대법원이 문제 삼은 ‘조씨가 교리 교육을 지속한 증거’를 보완할 계획이다. 전피연 신강식 대표는 “조씨가 신천지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세뇌에 있다”며 “전문가 소견을 바탕으로 신천지의 세뇌 과정과 강도를 구체적으로 조사해 법원에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설령 대전지법에서 대법원 판결을 확정하더라도 1차 청춘반환소송은 명맥을 유지한다. 2차 청춘반환소송이 남아 있어서다. 홍 변호사는 “1차 청춘반환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대법원이 2차 청춘반환소송에서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며 “추후 2차 청춘반환소송에서 제기한 증거를 대법원이 인정할 경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2차 청춘반환소송은 신천지 측이 승려 복장을 하고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등 1차 청춘반환소송보다 더 적극적인 모략 사례를 담고 있다. 2차 청춘반환소송은 현재 1심에 계류 중이다.

대법원 판결의 중심에는 ‘입증 책임’이 있었다. 모략 포교를 당했던 피해자의 삶이 모략 포교의 위법성을 담아내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런데 피해자에게는 소송에 참여하는 일부터가 지난하다. 1차 청춘반환소송 1심에서 승소한 함씨는 2심 법정에 설 수 없었다. 신 대표는 “생계유지조차 어려워 소송 과정을 버틸 수 없었던 함씨는 끝내 법원 출석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함씨와의 인터뷰를 주선해달라는 기자에게 홍 변호사는 “자신도 함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에 있다”며 “혹여나 함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만 하다”고 했다.

모략 포교는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피고들은 조씨에게 서로를 소개하면서 자신을 기성교회 목사·미국 유명 대학원 출신 목사라고 거짓말한 바 있다. 이 변호사는 “기망이나 사술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는 정상적으로 종교를 선택할 수 없다”며 “모략 포교는 그 자체로 종교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홍 변호사 역시 “피고가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조씨를 기망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무엇을 더 따져봐야 하냐”며 “모략 포교를 인정했으면서도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은 상식을 벗어난다”고 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조씨는 말했다. “위자료 액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다만 빼앗긴 권리를 복원하고 싶을 뿐이다.” 대전지법의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은 조씨만이 아니다. 청춘반환소송은 모략 포교 피해자의 삶을 복원하는 한복판이다. 청춘반환소송은 끝나지 않았다.

정리=

전병선 부장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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