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 환자가 직접 치료법 찾아 나서지 마세요

기고자/정소연 박사(국립암센터) 2022. 8. 1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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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 斷想>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가장 좋은 약을 써주세요.” 암을 진단받고 첫 치료를 시작하기 전 보호자들이 잘 부탁한다며 하는 말입니다. 환자를 향한 측은함과 미안함을 담은 최선의 말일 것입니다. 다만, 이 말에는 ‘싼 약=효과가 떨어지는 약’ ‘비싼 약=좋은 약’이라는 공식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조기암 치료에는 편견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암환자에 대해 중증질환 산정특례를 적용해 치료비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기암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실제 지불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은 비용만 낸다고 해서 결코 효과가 떨어지는 약이 아닙니다. 오히려 효과가 공인된 약으로써,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비용의 부담을 덜고 충분히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려는 국가의 노력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헬스조선DB

환자에게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뭐라도 해줘야만 힘든 암 치료를 수월하게 해 완치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지, 암환자와 가족들은 이런저런 치료를 찾아 나서곤 합니다.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가 ‘식품’입니다. 한국인이 건강기능식품에 소비하는 비용은 의약품에 소비한 비용보다 두 배로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만큼 건강기능식품이 보편화 돼 있는데요. 우리나라 암환자의 53%가 암 치료 외에 건강기능식품을 포함한 대체요법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이나 TV에는 “암 극복에 좋다”는 건강기능식품 광고, 기사, 블로그 글 등이 넘쳐납니다.

이런 데서 얻은 정보를 주치의에게 확인이라도 할라치면, 의사는 귀찮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때로는 화를 내거나 혹은 그나마 답을 주더라도 의사마다 다른 답변을 주곤 할 겁니다. 그러다보니 환자는 결국 먼저 경험했다는 다른 환자들의 글이나 미디어에 나오는 의사들의 영상을 참조해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비타민제를 포함한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이 항암 효과를 보였다는 근거는 매우 적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지나친 비타민 등의 섭취가 오히려 항암 치료 효과를 떨어뜨리거나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써는 입증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 효과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금물입니다.

암 치료를 하면서 건강기능식품을 고려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일 겁니다. 어떤 환자는 “우선 자연치료를 해볼 테니, 암이 줄었는지 검사만 해달라”는 환자도 있습니다. 주치의로서 열심히 설득해보지만 암 치료를 강요할 수는 없기에 3~6개월 일정으로 검사를 잡아줍니다. 다만 ‘반드시 다시 올 것’을 당부하지요. 이 경우 암 크기에 변함이 없다면 다행입니다. 진단 당시에는 충분히 수술할 수 있었는데, 치료 방법을 찾아 헤매다가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 되거나 전혀 손 쓸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돼 병원에 오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암은 단 것을 싫어한다’ ‘암은 열에 약해서 온열치료를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 기저에는 일부 타당한 근거도 물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점들을 왜곡해 받아들여 완전히 잘못된 대체요법을 시행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마음이 큽니다. 암을 굶겨죽이기 위한 치료로 단식프로그램이 있는 치료원을 찾은 환자가 있었습니다. 3개월 만에 나타났을 때 상당히 말라 있었고, 혈액검사에서는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6개월 후에는 이를 지켜보던 보호자가 환자를 설득해 수술을 받았는데, 결국 환자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치료만 지연된 꼴이었습니다. 만져지는 유방암을 온열치료로 없애겠다고 종괴 부위에 부황을 뜨거나 뜨거운 돌멩이를 올려 치료 효과를 기다린 환자의 경우도 있습니다. ‘설마 그런 환자가 있을까’라고 의심하겠지만 실제 진단을 받으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런 행동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암이 있는 피부가 화상을 입거나 괴사된 채 방문해서 수술이 어렵거나 그 범위가 커지곤 합니다.

이런저런 낭설들에 흔들리는 암환자들에게, 그리고 신박한 치료법을 찾는 가족들에게 꼭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금 병원에서 받는 암 치료는 내가 아프기 전부터 오랜 시간동안 나보다 먼저 암으로 진단되고 치료 후 완치된, 때로는 암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환자들의 누적된 임상 경과와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찾아낸 최적의 치료법입니다. 환자가 스스로 치료법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진료실에서 만나는(때로는 살갑지 않아 보일지라도) 의료진들은 열심히 배우고 연구해 얻은 최고의 치료를 제안하고 있는 겁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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