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적 1순위 '리즈 체니'의 운명..주류 공화당 몰락

전웅빈 2022. 8. 17.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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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내 최대 정적, 리즈 체니 공화당 하원의원이 16일(현지시간) 정치 인생 최대 변곡점을 맞았다. 이날 진행된 와이오밍주 공화당 예비선거는 개표가 이뤄지기도 전 그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여길 만큼 분위기가 일방적이었다. 이날 선거 결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이자, 전통의 주류 공화당 몰락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체니 의원은 지난해 1월 6일 의회 폭등 사건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 투표에 찬성했다. 특히 1·6 의회 폭동 진상조사특위에 참여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제거 1순위 명단에 올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을 향해 당내 축출을 요구했고, 공화당은 결국 지난해 5월 투표로 당시 체니 의원이 맡은 공화당 의원총회 의장직 박탈을 결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때 “공화당 의원들이 한심한 지도자이자 인격도 없는 사람을 제거하는 훌륭한 기회를 얻었다”고 칭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격은 의회 폭동 진상조사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더 집요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일찌감치 전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인 해리엇 헤이그먼 후보를 내세워 지지를 선언했다. 헤이그먼 후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사기 주장 옹호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헤이그먼 후보 지지를 위해 현장 연설까지 진행하며 “체니 의원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체니 의원은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의장직 축출 투표 과정에서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우리의 맹세는 정치보다 국가를 더 사랑하고 보호하겠다는 것”이라며 “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법의 지배를 거부하는 길로 이끄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체니 의원은 이번 당내 경선 마지막 TV 광고에서도 “진실을 버리면 미국은 자유로울 수 없다. 2020년 대선을 훔쳤다는 거짓말은 교활하다”고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체니 의원은 자신의 투쟁을 민주주의와 헌법 수호를 위한 싸움으로 묘사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하원의원직을 잃는 것이라면 기꺼이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투표 후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선서를 지키고 헌법을 수호할 진지한 지도자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수 성향이 강한 와이오밍주 유권자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와이오밍주는 2020년 대선 때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70%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곳이다. 전통적으로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산업에 기대고 있는 경제적 현실이 이런 성향의 밑바탕이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청정에너지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증가하고, 기후 친화적 전력 정책이 통과되면서 와이오밍주의 경제 기둥은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트럼프 열혈 지지자들의 활동도 강화됐다. NYT는 “체니 의원은 자신의 고향에서 더는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살해 위협에 대한 우려로 공개적인 선거 운동보다 초청 행사를 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 테러 위협 우려로 체니 의원의 마지막 선거 캠페인은 비공개로 마무리됐다.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승리로 당내 위상을 부각하며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는 체니 의원과 함께 자신의 탄핵 투표에 찬성한 다른 9명의 공화당 하원 의원도 모두 ‘살생부 리스트’에 올렸는데, 이중 경선을 통과해 본선 진출권을 따낸 의원은 워싱턴주의 댄 뉴하우스, 캘리포니아주의 데이비드 발라데이오 의원 2명뿐이다.

애덤 킨징어, 존 캣코, 프레드 업턴, 앤서니 곤살레스 의원은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제이미 에레라 보이틀러, 피터 마이어, 톰 라이스 의원은 당내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선언을 받은 후보에게 졌다. 살생부 80%가 실현됐다.

가디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하는 후보의 연승이 이어지면서 공화당 기득권 세력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워싱턴포스트(WP) 분석결과 올해 예비경선을 치른 50개 주 가운데 41개 주에서 공화당 후보로 지명된 인사 중 53%(250명)가 대선 사기 주장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선거 패배로 부친인 딕 체니 전 부통령에 이어 2대 걸쳐 내려온 와이오밍주의 체니 가문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됐다. NYT는 “와이오밍주 정치에서 한 시대의 종말을 나타내는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미 정계에서는 그러나 체니 의원의 정치인생이 끝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체니 의원은 이날 “오늘은 분명 계속될 전투의 시작”이라며 “우리는 민주주의가 실제로 공격받고 위협받는 순간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전국적 지지율은 낮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서는 과정에서 건전한 보수 정치인의 상징으로 떠올라 2024년 대선 출마 가능성도 나온다. 그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후원금을 1500만 달러 이상 모금하기도 했다.

체니 의원은 다만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나는 트럼프가 백악관을 탈환하는 것을 계속 공개적으로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CNN 인터뷰에서도 “2024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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