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

2022. 8. 17.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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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장마철도 지났는데, 손가락만 한 장대비가 우악스럽게 쏟아져 기왓장 두드리는 소리가 온천지에 가득하다. 기울어진 암자를 걱정할 일만 없었다면, 도시에서 듣는 한옥 지붕의 빗소리도 꽤나 낭만적이었을 텐데, 더위를 식히고 대지를 적셔 생명을 키우는 빗님이라며 편히 감상했을 텐데, 퍽 아쉽다.

연일 비에 불안한 밤을 보내고, 절이 위험하니 어디로 피해야 하지 않을까 구시렁댔다. 내 걱정소리에 도반스님은 그냥 인연 따라 죽으면 된다며 흔연히 넘겼다. 세상사 그리 아싸리 끝나면 고맙지만, 목숨이란 게 본디 덧없긴 해도 질기고 모진지라, 바라는 대로 쉬이 끝나지 않으니 문제다.

「 81세에 출가한 협존자, 열반들어
의지대로 살아야 진정 자기 인생
모두가 선업으로 마무리하기를

절에 오시는 분 가운데 99세 되는 분이 계시다. 검버섯 하나 없는 맑은 얼굴로 나만 보면 “스님 나 언제 죽어요? 나 왜 안 죽어요?” 묻는 분. 목소리만 들으면 10년은 거뜬히 사실 것 같아 ‘100세 되시면 절에서 생신파티 해드릴 테니 건강하게 지내세요’ 했다. 98세 되던 작년까지는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오셨는데, 올해는 힘들어해서 오시면 꼭 손에 차비를 쥐어드렸다. 택시 타고 오시라고.

그러고 보니, 진시황은 13세에 왕위에 올라 그때부터 오래 살 마음에 산 자신의 능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에 비하면 보통 사람들은 살 때는 죽음을 피하거나 늦추려 해도, 정작 나이 먹고 힘들면 죽고 싶다고 말한다. 대체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

셸리 케이건은 ‘우리는 기계와 다를 바 없다. 다만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기계다. 말하고, 소통하고, 생각하는 기능이 있는 매우 특별하고 놀라운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다… 우리의 육체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이라고 했다(『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는 몸이 갖는 고차원적 기능을 말하며, 그 기능이 멈춘 것을 죽음으로 설명한다. 무상함도 측은함도 없는 객관적 통찰인 셈이다.

불교는 죽음에 대해 인연이 다하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흩어지듯, 몸도 마음도 조건 따라 모였다 사라지는 ‘공(空)’의 논리로 설명한다. 그러니 생에 집착할 바도 두려워할 바도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 또한 쉬운 말로 자기 자신을 잘 챙기면서 인연 따라 지혜롭게 복 지으며 살다 가시면 된다고 말하곤 한다. 주어진 인연을 받아들이고 삶을 즐기라던 장자의 ‘수연낙명(隨緣樂命)’과도 살짝 궤를 같이한다 하겠다.

아무튼 기분 좋게 손 흔들며 산문 나서던 노보살님은 두어 달 전부터 몸이 안 좋다며 절에 오질 못했다. 코로나도 위험하니 오지 말고 집에 계시라고 했는데, 요 며칠은 거동까지 불편한 모양이다. 자식이 있어도 혼자 사는 게 속 편하다며 나와 계시니, 홀로 감당해야 할 몫이 커 보인다.

알다시피 절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오신다. 어르신 모시고 가족이 함께 절에 오는 일은 드물다. 안타깝게도 49재나 되어야 겨우 모인다. 재를 지내는 나도 얼굴을 모르다가 그제야 비로소 평생 저 가족을 위해 노보살님이 그리 정성껏 기도하셨구나 싶다.

내가 청룡암에 온 지도 4년이 지났다. 그사이 어르신들의 노쇠함도 더 짙어졌다. 그래서 자주 보이던 얼굴이 안 보이면 덜컥 걱정이 된다. 며칠 전, 칠석에는 ‘수명장원(壽命長遠) 복혜구족(福慧具足)’을 붓으로 써서 나눠드렸다. 나의 글씨 따위가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효의 농도가 묽어지는 세상에서 복과 지혜로 아름다운 노후를 보내시라고 드린 정성이다.

예로부터 인도인들은 인생을 4주기(Asrama)로 나누어 생각했다. 배움의 시기, 가정을 이루는 시기, 숲에 머무는 시기, 삶을 정리하는 시기. 그들은 오랜 세월, 인생의 마무리를 마음공부에 힘쓰다 갔다. 불교 10대 존자인 협존자의 경우에는 81세에 출가했다고 한다.

처음 출가했을 땐 다 늙어 출가하니, 주위에서 갈 곳이 없어 출가했다는 둥, 먹을 게 없어 출가했다는 둥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노구에도 불구하고 지친 몸으로 쉬지 않았다. 옆구리를 바닥에 대지 않았다고 협(脇)존자라 했을 정도다. 그를 높이 평가하는 건 그 나이에도 ‘스스로의 의지’로 출가하고, 수행하고, 열반에 들었기 때문이다. 젊든 늙든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어야 진정한 자기 인생이기에 그렇다.

특히나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마무리 지을 수만 있다면 가장 큰 복일 것이다. 협존자 같은 결단은 아니더라도, 호들갑스럽게 좋은 약과 보양음식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이해하고 미련도 원망도 남기지 말고, 모두가 선업(善業)으로 마무리하면 좋겠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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