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歷知思志)] 김시민

유성운 입력 2022. 8. 17. 00:34 수정 2022. 8. 17.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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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문화팀 기자

에도 시대 일본에선 ‘모쿠소 호간(木曽判官)’이라는 괴물이 일본을 공격하는 이야기가 유행했다. ‘모쿠소’는 임진왜란에서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 장군에서 유래된 단어다. 당시 진주 목사였기 때문이다. (김시덕 『동아시아, 대륙과 해양이 맞서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김시민 장군은 일본에 악몽 같은 존재였다. 1592년 가을, 전쟁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초조해진 왜군은 진주성을 치기로 했다. 진주성은 일본이 장악한 경상도 남부에서 호남으로 가는 길목의 거점이었다. 즉, 이곳을 함락하면 손쉽게 호남까지 뻗어갈 수 있었다. 1592년 10월 일본군은 진주성에 3만 명을 투입했다. 김시민이 이끄는 조선군은 3000여 명.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은 육로를 통해 호남으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했고, 조선은 곡창지대인 호남 내륙을 보호했다. 충무공의 해군도 후방의 위협을 덜고 해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 ‘한산’의 누적 관객 수가 600만 명을 넘어섰다. 충무공과 임진왜란 관련 서적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다루는 대중문화에서 충무공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미국에선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을 내세운 뮤지컬 ‘해밀턴’이 큰 히트를 했다. 그는 미국 건국의 주역이면서도 그동안 조지 워싱턴·토머스 제퍼슨 등에 비해선 주목을 덜 받아왔다. 임진왜란은 7년간 동아시아를 흔든 대전이었다. 조명받을 만한 인물이 과연 ‘한 명’뿐일까. 시선을 넓혀볼 때도 됐다.

유성운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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