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뜨거운 조우! 61세 서영희와 34세 박선아 #세대를잇다

이경진 2022. 8. 17.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세대 패션 스타일리스트이자 전방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 중인 서영희와 기묘한 상상력으로 동시대 감각을 관통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여온 아트 디렉터 박선아. 자신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확장해온 두 여성의 이야기.

INTERVIEWEE 서영희

1991년 잡지 〈멋〉으로 시작해 독보적인 패션 미학을 바탕으로 비주얼 작업을 이어온 1세대 패션 스타일리스트이자 지금은 패션, 아트, 전통 문화를 넘나들며 아이디어를 펼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혹은 전시 큐레이터.

INTERVIEWEER 박선아

패션 매거진 피처 어시스턴트를 시작으로 〈어라운드〉 매거진, 안그라픽스 에디터를 거쳐 베이커리 브랜드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20킬로그램의 삶〉, 〈어떤 이름에게〉,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의 저자.

박선아 몇 해 전 선생님 인터뷰를 읽고 감명받아 다이어리에 적은 구절이 있어요. 마케팅 시대에 나만의 작업을 창조하는 방식에 관한 질문에 “나를 소비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죠

서영희 내가 잘 안 팔려서 한 말일 거예요(웃음).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지요?

박선아 1988년생입니다. 지금껏 따를 수 있는 어른을 실물로 대면한 적 없어 아녜스 바르다라든가 박완서 선생님처럼 돌아가셨거나 거리가 먼 분들이 남긴 것을 좇아 왔어요

서영희 딸이랑 나이가 같네요. 나도 선아 씨가 쓴 책 읽었어요.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책 읽기 전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인터뷰도 찾아봤는데, 책이 좋아서 다 잊어버렸어요. 책 속의 선아 씨가 크게 와 닿았죠. 책을 좋아하거든요.

박선아 한때는 자수에 푹 빠지기도 하셨다죠. 바느질도 줄곧 해오셨고. 노동집약적인 활동이 선생님에게는 치료제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언가 배우거나 강렬한 호기심을 발휘할 수 있는 비결은

서영희요즘 위빙에 빠져 있습니다. 친구 작업실에 위빙 기계가 있어 종종 해보고 있어요. 생각을 가지런히 하고 싶을 때 손을 움직여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생각과 마음이 잘 정리돼요. 일상에서 손으로 하는 노동집약적 작업에 자주 회귀하는 이유죠. 선아 씨는 생각을 모으고 싶을 때 무엇을 하나요? 책에는 산책 이야기가 많던데.

박선아 산책 많이 합니다. 스마트폰을 집에 놓고 나와서 걸어요. 스마트폰으로 괴로울 일이 많으니까요(웃음). 요즘은 아트 디렉터 일을 40대까지 할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게 되며 실무와 멀어졌어요. ‘메이커’로 신나게 일하는 게 즐거웠지만 그 시절은 짧았고, 회사에선 더 넓게 보는 영역을 저에게 줬어요. 보는 눈이 넓어져서 나름 재미있는데, 일의 수명은 길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런 마음이 30대 중반에 찾아올 줄 몰랐어요

서영희어쩌면 지금 가장 질주하는 시기일지도 몰라요. 막 달리고 있을 땐 오히려 내가 어떤 길을 어디쯤 달리고 있는지 잘 모르거든요. 나는 비주얼 만드는 일을 30년 동안 했어요. 광고도 있었지만 잡지 위주의 일을 해왔죠. 한 매체와 오래 일했는데 한때 그곳 편집장과 에디터가 모두 바뀌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매달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면서 같이 있던 친구들 모두 독립시키고 작업실을 정리했어요. 모든 소품을 버리고 사진만 모았는데 이민가방 두 개가 나오더군요. 작업실에서 짐 빼는 날, 시커먼 이민가방을 보니 소름이 끼쳤어요. 이 일을 이민가방 두 개만큼 했구나. 지금은 이렇게 됐는데 내가 과연 잘해온 게 맞나. 그런데 누구에게 말하기엔 구태의연하고 신파 같은 이야기죠. 그런 순간은 오로지 나만의 몫이라 생각해요.

박선아 그 순간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무엇을 구하셨나요

서영희조금 지나니 차츰 내가 좋아하는 걸 찾게 됐어요. 일이 정리되자 마인드가 바뀌기 시작했죠. ‘30년간 눈으로 한 연습이 엄청난 거였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모든 게 용서됐어요. ‘배운 게 진짜 많구나’ ‘이 일이 아니었으면 못 봤을 것도 많이 봤고, 많이 행복했구나’ 그러면서 비로소 2020년 가을, 전남 곡성에서 100세 전후 할머니들을 모신 화보 작업도 할 수 있었죠. ‘패션, 패션!’ 외치는 듯한 비주얼은 그만 만들고 싶었어요. 따뜻한 걸 하고 싶었죠. 오래전의 나였으면 그 화보 역시 할머니들께 샤넬 백 쥐어 드리면서 사진을 찍으려 했을지도 몰라요. 지금은 절대 못하죠. 감히 그분들께 어떻게 그래요.

박선아 그런 생각이야말로 30년이라는 시간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저도 인상 깊었던 화보였어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줬죠. 그토록 새롭고, 진심 어린 공감을 이끄는 작업을 만들려면 어떤 연습이 필요할까요

서영희글을 쓰다 보면 글 읽는 능력이 생기듯 시각 작업도 그런 것 같아요. 만들수록 다른 사고의 근육이 생기죠. 그런데 선아 씨가 쓴 책을 보니, 당신은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될 것 같아요(웃음). 어느 날 마음이 ‘그거 아니다’ 하면 그 말을 들으면 돼요. 이런 책을 쓸 정도로 마음의 근육을 다졌다면, 그 다음은 자기 마음이 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아까 말한 이민가방 두 개는 결국 내 생각의 근육인 거죠. 한순간 이 일이 허상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럴 땐 내 마음을 봐요. 중요한 건 지나온 시간 동안 내가 얻은 온갖 근육들이니까요.

박선아 2015년 파리장식미술관의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전 - 코리안 나우〉 패션전, 문화역서울 284에서 〈신한복 프로젝트〉 등 큐레이션을 진행할 기회를 어떻게 만났나요? 스타일리스트와 비주얼 디렉터에서 전시기획자, 전방위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활발하게 확장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서영희 계속 화보를 찍고 패션을 다루는 동안, 저 너머에 뭔가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내가 더 잘할 ‘두께감’ 있는 뭔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200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버버리가 전시를 했어요. 트렌치코트를 펼치려나 했는데 〈앵글로매니아〉전이더군요. 영국 문화 전체를 다뤘죠. 오래 보고 있기 힘들어 잠시 전시장을 빠져나와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정도로 멋있는 전시였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전시를 해야겠다. 어떤 전시든 나한테 하나 걸려들기만 해봐라(웃음). 그게 계기였어요. 그러다 진태옥 선생님의 제안으로 전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죠. 내가 가장 짜릿하고 행복한 감정을 느낄 때는 예술과 마주한 순간이었죠. 흥미롭고 좋은 설치미술을 보면 10년은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전시 공간에서 오래 머물고, 울면서 안 나오려고 하죠. 색과 형태, 빛, 작가의 에너지 같은 게 훅 다가오면 도무지 발을 움직일 수 없어요.

박선아 저는 아트 디렉터로서 이미지 작업을 해왔고 공간과 영상으로 확장한 프로젝트도 하고 있어요. 사진에 찍히는 면만 아니라 공간에 오브제를 디스플레이해야 했고 3면과 빛, 음악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죠. 그러면서 물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 인터뷰에 이미지를 어떻게 구성하고 만들기 시작하냐는 질문에 ‘물성’이라 답하신 적 있어요. 그때 실린 답변이 너무 짧아 아쉬웠는데 오늘 더 긴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요

서영희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얘가 여기에 있으면 싫어할 것 같은데?’ ‘얘랑 얘랑 안 좋아하는데 왜 같이 놓았어?’ ‘얘랑 얘는 안 친할 것 같아.’ 그 물성이 나한테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곱디 고운 애가 깨진 유리 사이에 있으면 빨리 구출해 주고 싶어요. 어떤 비주얼은 부딪히는 물성으로 인상이나 메시지를 극대화하기도 하죠. 그런 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가방이 싫어할 것 같아서 못하거든요(웃음). 하지만 요즘은 빵이 까맣고, 절대 깨끗이 먹을 수 없도록 크림이 줄줄 흐르고, 빵을 손으로 북 찢어서 거기에 찍어 먹게 만드는 비주얼 역시 많은 감흥을 일으키고 공감을 얻어요. 부딪히는 물성을 아주 잘 쓰는 경우가 많죠. 선아 씨가 해온 작업처럼요. 나는 할 수 없는 작업이에요.

박선아 물성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감각을 갖기까지 크게 영향받은 경험이 있으실지요. 물성이 훌륭한 조화를 이룬 예로 꼽고 싶은 게 있다면

서영희진태옥 선생님 옷을 보면 이 분이 물성을 완벽히 이해하는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지금 시대의 디자이너들은 실크 시폰을 거의 안 다뤄요. 티셔츠만 만들지 누가 시폰으로 블라우스를 만들어요? 진태옥 선생님은 시폰을 시폰스럽게 만들어요. 시폰이 늘어지고 싶어하는 대로 두고, 품위 있게 보이도록 실크 노방을 대죠. 소름 끼치도록 아름답고 우아해요. 나는 진태옥 선생님 그리고 좋은 디자이너의 옷을 보면서 훌륭한 물성의 조화가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또 현대미술. ‘이 작품이 왜 나에게 감동을 주는 거지?’ 생각하면 알게 되는 게 있어요. 모든 사물을 이런 식으로 관찰하면 정말 재미있어요.

서영희가 입은 플리츠 디테일의 셔츠는 Juun. J. 블랙 와이드 팬츠는 Bourie. 박선아가 입은 블랙 점프수트는 Bourie. 귀걸이는 1064 Studio.

박선아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는 둘이에요. 세련된 아름다움과 기묘한(Weird) 아름다움. 그래서 상반된 물성이 부딪히는 비주얼을 만들게 돼요. 하지만 제 취향은 물성을 조화롭게 다뤄 만드는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비주얼 작업과 일이기에 해야 하는 작업 사이에 차이가 있죠. 선생님은 이런 딜레마에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서영희나와 맞지 않다고 느끼는 일을 해보는 게 무척 중요해요. 그건 결국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영역이잖아요. 내 것으로 개발할 수 있는 거죠. 도전해 볼 만해요.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느낀다면 자신을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어야 할 거예요. 물론 내려놓은 다음의 결과는 감내해야죠. 프리랜서들이 “이건 절대 못하겠어요”라고 내려놓으면 그만한 일을 최소 6개월 동안 만나기 힘든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나는 6개월 지난 이후에도 타협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마음속으로 ‘어디다 대고 그런 걸 하래?’ 하면서.

박선아 저는 오만함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나의 것’에 대한 오만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게 멋있다고 느껴요

서영희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나를 믿어주는 일은 아주 중요하죠. 일하며 가장 힘든 때가 바로 파리장식미술관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이었어요. 그때 술을 배웠죠(웃음). 맨 정신으로는 잠이 안 왔어요. 내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는 건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그런데 알량한 오만함이 나를 엄청나게 괴롭히면서도 지탱해 줬어요. ‘너 이거 맞아?’ 자문자답을 끊임없이 했어요.

박선아 조기석, 민현우 같은 1980년대생 사진가를 비롯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스태프들과 작업을 이어가고 계세요? 세대를 초월한 현장은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해요. 젊은이들과 함께할 때 맞닥뜨리는 다양한 케미스트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서영희 누구나 내가 갖지 않은 에너지를 갖고 있게 마련이잖아요. 다름을 받아들이려는 편이고 그런 면에서 열려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물론 다른 에너지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지는 가늠해 봐야죠. 우리는 비주얼을 만드는 사람들이라 결과물을 우선으로 봐요. 사실 결과물과 인성이 같은 결일 때도 많아요. 그 사람의 인성이 사진에 실어주는 힘이 있거든요. 구본창 선생님과 김중만 선생님이 완전 다른 사진 작업을 하는 것처럼요.

박선아 요즘 제 일은 결국 시안 전쟁이 되곤 합니다. 가장 좋은 시안으로 잘 꾸며서 발표하는 일이 중요하고, 그것을 가지고 촬영 스태프와 어떤 그림을 그릴지 이야기하죠. 선생님이 일을 시작한 70~80년대의 비주얼 작업 환경은 완전히 달랐잖아요. 명동에서 아주 오래된 외서를 구해 읽으셨다죠

서영희 레퍼런스가 희소하니 그려서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웃음). 설사 레퍼런스가 있다 해도 그걸 그대로 찍을 게 아니니까요. 여전히 그림을 그려 작업합니다. 요즘은 아이패드가 있어서 그리기가 편해졌어요. 물론 색연필도 갖고 다녀요.

박선아 그림에서 시작하면 소통할 때 많은 디테일을 공들여 협의하게 될 것 같아요. 새로운 아이디어로도 연결되고요

서영희 그림도 그렇지만 책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안 가리고 읽는 편인데, 책 도움도 많이 받아요. 모든 것을 통틀어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바로 〈무녀도〉, 단편소설 〈봄봄〉 등 중학생 때 읽은 책이에요.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이야기의 비주얼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져요. 나에게는 글이 활자가 아니라 비주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이나 활자에 거부감이 없고 계속 읽고 싶어요. 팬데믹을 거치면서 〈돈키호테〉를 읽었어요. 너무 귀엽고, 재미있고, 훌륭한 책이죠. 얼마나 키득키득거리면서 읽었는지 몰라요. 참, 선아 씨 책에 쓰여진 선아 씨의 회사방침이 인상적이었어요. 해보지 않은 비주얼을 만들라는 미션을 준다지요. 그건 오너 입장이 아니라 인생 선배 입장에서 내려오는 디렉션이죠. 각자에게 자생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고요. 보통의 상사는 거기까지 못 가요.

서영희와 박선아가 쓴 토끼와 여우탈은 서영희가 사진가 조기석과 함께 한 비주얼 작업에 사용한 소품.

박선아 좋은 아트 디렉터가 되기 위해 갈고 닦아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서영희글쎄요. 나는 잡지를 좋아해요. 번역된 해외 이슈도 꼼꼼히 보는데 기사 하나 읽는 일에 세 시간이 걸릴 때도 있어요. 모르는 정보가 너무 많은 거예요(웃음). 홈페이지, 작가, 장소…. 조너선 앤더슨 기사를 읽다가 그의 할아버지가 괴상한 도자기 브랜드를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 도자기 브랜드가 마틴 브러더스(Martin Brothers)라면 그럼 마틴 브러더스를 열성적으로 찾아 알고 나서 다음 문장을 읽어요. 뭔가를 계속 궁금해하면서 쌓은 지식도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박선아 선생님이 꿈꾸는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요

서영희 아직 없어요. 자연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은 합니다. 패션도 현대미술도 전시도 좋고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도 좋지만, 요즘 나에겐 조그만 이파리가 주는 행복도 큽니다. 어제 제인 케니언의 시를 읽었어요. ‘건강한 다리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시리얼과 달콤한 우유와/흠 없이 잘 익은 복숭아를 먹었다/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너무 좋았어요. 욕심을 부리기보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요. 이 역시 내가 못 느껴본 삶을 접하고 싶기 때문이겠지요. 이제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은 집’처럼 4평 남짓한 집에서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