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는 놓쳤고 이정재는 해낸 이것..'헌트' 연출력의 비밀

나원정 2022. 8. 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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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감독 데뷔작 첩보액션 '헌트'
개봉 7일째 200만..올여름 흥행 2위
영화 '헌트'로 감독 데뷔한 이정재(가운데)와 주연 배우 정우성(왼쪽), 정만식이 개봉 7일째인 16일 관객 200만명 돌파를 자축하고 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여름 극장가에서 ‘신인 감독’ 이정재(50)가 새 바람을 일으켰다. 그의 연출 데뷔작 ‘헌트’가 개봉 7일째인 16일 누적 관객 200만명을 돌파했다(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장기 흥행중인 ‘탑건: 매버릭’보다 하루 빠른 속도다.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스타가 된 이정재가 그야말로 겹경사를 맞았다.


신인감독 이정재, 최동훈·한재림 제쳤다


영화 '헌트'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첩보물다. 한국, 미국, 일본, 태국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사실 모든 장면을 국내에서 촬영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올여름 한국영화 빅4 중 가장 늦게 개봉한 ‘헌트’가 지난달 27일 개봉해 600만 관객을 넘어선 ‘한산: 용의 출현’(감독 김한민)과 흥행 양강 구도를 굳혀가는 분위기다. ‘외계+인’ 1부의 최동훈, ‘비상선언’의 한재림 등 흥행 감독들이 고전한 여름 시장에서, 신인 감독 이정재가 ‘절친’ 정우성과 주연을 겸한 첩보 액션 ‘헌트’가 복병으로 떠오른 셈이다. 예매앱 관람객 평점도 높다. 멀티플렉스마다 10점 만점 기준 평균 9~9.5점대를 기록중이다. “이정재 ‘감독’ 다시 봤다”(메가박스) “올해 개봉작 중 제일 별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일 낫다”(CGV) 등 기대 이상이란 반응이 많다.
‘헌트’는 유명 배우 출신 감독의 영화는 흥행이 어렵다는 인식도 깼다. 하정우의 ‘롤러코스터’(관객수 27만명) ‘허삼관’(95만명), 정진영의 ‘사라진 시간’(18만명) 등 배우들의 감독 변신은 이어져 왔지만, 연기력에 비해 각본‧연출이 아쉽다는 평을 들었다.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은 작품성은 호평 받았지만, 흥행은 29만명에 그쳤다.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한 김도영 배우의 연출 데뷔작 ‘82년생 김지영’의 367만 관객이 이 방면 최고 기록이다. ‘헌트’가 손익분기점 420만명을 넘게 되면, 이정재는 역대 배우 출신 최고 흥행 감독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된다.

김윤석·하정우 놓쳤고 이정재는 해낸 것


이정재의 연출력은 평단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헌트’는 1980년대 초 군부독재 시기 실제 사건들을 토대로 두 안기부 요원의 첨예한 갈등을 그렸다. 이정재가 원작 시나리오 ‘남산’의 판권을 사들여 4년 가량 직접 뜯어 고치는 집필 과정을 거쳤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배우 출신이면 정치적 언급에 몸을 사릴 것 같은데 ‘헌트’는 아웅산 테러 등 한국 영화에서 다루기 힘들었던 민감한 사안들을 과감하게 내세웠다. 80년대 신군부 집권기 때 고통 받은 사람들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묘사했다”면서 “배우 출신 감독으로 보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어둠 속에 벨이 울린다’(1971)보다도 데뷔작 연출면에선 이정재가 더 잘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정재가 30년차 배우 경력을 연출에 잘 활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문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김윤석‧하정우 등 배우가 연출했을 때 연기자로서 장점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정재는 오히려 배우가 연출한 장점을 잘 살렸다. 결말을 알고서 두 번째 관람하니 플롯이나 이야기의 새로움보다 연기력으로 설득 당한 부분이 보였다”면서 “스스로 연기를 잘 아니까 앞으로도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낼 판을 잘 짜는 감독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성공·실패 두루 경험한 도전정신, '오겜' '헌트' 발판


영화 '헌트'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 이정재와 공동 주연을 맡은 배우 정우성이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 앞서 시구·시타를 마친 뒤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2022.8.5/뉴스1
이정재는 배우로서도 장르 영화에서 관습을 변주하는 연기로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도둑들’ ‘암살’ ‘신과함께’ 1‧2부 등 30여편 영화 출연작 중 1000만 영화가 4편이다.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1994)로 스크린 데뷔부터 주연을 맡고, 드라마 ‘모래시계’(1995)의 과묵한 보디가드 역할로 급부상한 그다. 무명 시절 없이 스타덤에 올랐지만 의외로 흥행 참패도 적지 않았다. 독특하고 실험성 강한 작품에 거듭 뛰어들어서다.
지난 3일 인터뷰에서 그는 “‘모래시계’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주변에선 액션 영화라든가 젊은 에너지가 폭발하는 시나리오를 선택하길 바랐지만, 나는 새로운 걸 해보고픈 욕구가 있었다”면서, 독립영화 ‘순애보’(2000), 최초 한불 합작 사극영화 ‘이재수의 난’(1999), 사기꾼 역할로 정우성과 호흡을 맞춘 ‘태양은 없다’(1999) 등을 들었다. “‘1927 기방난동사건’(2008)도 사람들이 ‘도대체 왜 했냐’고 하는데 여균동 감독이 시나리오를 재밌게 쓰셨어요. 컴퓨터그래픽(CG)이 많이 들어갈 거라고 데모 영상도 보여줘서 참여했는데 후반 과정에서 하고 싶었던 게 잘 안 됐죠. ‘빅매치’(2014)도 성공할 줄 알고 운동을 그렇게 하고 어깨 인대까지 끊어졌는데….”(웃음)
이처럼 배우로서 성공과 실패 사례를 두루 쌓은 경험치가 최근의 전성기에 발판이 됐다. 이정재는 “개인적인 데이터가 쌓이면서 시나리오를 고를 때 참고하게 되고, 해보고 싶은 장르‧캐릭터적 욕구가 채워지면서 관객들이 원하는 쪽으로 많이 돌아섰다”며 “그전까지 겪은 과정이 내게 소중하고 큰 장점인 것 같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 같은 실험 정신 강한 시나리오도 ‘이건 좋은 것 같다.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이정재는 데뷔부터 벼락 스타로 출발해, 침체기를 겪었지만, 배우로서 자기 관리를 잘해왔다. 미술에도 조예가 깊다. 조급해 하지 않고 다양하게 시도해온 것이 나이 50에도 액션을 찍는 배우이자 신인 감독이 된 저력”이라 분석했다. 다만, 김혜선 영화 저널리스트는 ‘헌트’가 노련한 제작사‧스태프들이 뭉친 대작인 점을 짚으며 “차기작은 이정재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더 잘 볼 수 있는 작품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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