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간 대신 배트를 쥔 사나이, 롯데 잭 렉스
비행기 조종간 대신 배트를 잡은 사나이. 롯데 자이언츠의 새 외국인 타자 잭 렉스(29·미국)가 한국에서 또 한 번의 도전에 나섰다.
롯데는 지난 달 18일 외야수 DJ 피터스를 웨이버 공시했다. 그리고 이틀 뒤 우투좌타 외야수 렉스와 계약을 발표했다. 다음 날 한국 땅을 밟은 렉스는 겨우 사흘 만에 KBO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두 경기 연속 공수에서 아쉬운 모습을 드러냈다.
적응 과정이었다. 렉스는 7월 27일 두산 베어스전을 시작으로 날카롭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6경기에서 안타 14개를 몰아쳤다. 시즌 타율은 0.314(70타수 22안타·15일 기준), 2홈런 4타점. 지난 13일 KIA 타이거즈전에선 배탈 때문에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지만, 이튿날 돌아와 멀티히트(4타수 2안타 1볼넷)를 기록했다.
최근 만난 렉스는 "롯데 동료와 코칭스태프가 리그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한국에 올 때도 문화에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을 들었다. 완전히 다른 환경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렉스는 "부산 생활은 놀랍다. 팬들이 많이 반겨줘서 고맙다"고 했다.
렉스에게 가장 많은 조언을 해준 사람은 LA 다저스 마이너리그 동료였던 앤디 번즈(32)다. 번즈는 2017년부터 2년간 롯데에서 뛰었다. 번즈는 열정적이면서도 동료들과 함께 세리머니를 하는 등 친화력 넘치는 모습으로 사랑받았다. 렉스는 "번즈가 경기를 즐기고, 문화 차이를 받아들이라고 했다"고 웃었다.
렉스는 빠르게 한국 야구에 녹아들고 있다. 데뷔전에선 환호와 박수로 자신을 반긴 롯데 팬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홈런을 친 뒤 멋지게 배트를 돌려서 던지는 한국식 '빠던'도 선보였다.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건 렉스의 집안 내력이다. 렉스는 "할아버지가 폴란드 출신이고, 할머니는 아일랜드계다. 이름도 좀 더 복잡한 성(姓)이었는데, 아버지 때 렉스(Reks)로 바꿨다. 어머니는 스페인 분이고, 미국에 정착했다. 그래서 스페인어도 잘 한다"고 웃었다.
렉스는 칼 샌드버그 고교 시절 타율 0.609를 기록한 강타자였다. 하지만 그는 야구 명문대로 가는 대신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제트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1년을 다닌 뒤 치른 파일럿 시험에서 불합격했다. 공군사관학교 야구부 소속으로 경기에 나섰지만, 성적도 좋지 않았다.
사관학교를 졸업하면 의무복무(최소 5년)을 해야 한다. 한국계로 해군사관학교 투수로 활약한 노아 송도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됐으나, 군복무 중이다. 렉스는 결국 사관학교를 그만두고 켄터키대에 입학했다.
렉스는 "야구는 조금 했다. 군대라는 조직도 내게 맞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렉스는 야구부 입부를 신청했지만 트라이아웃을 통과하지 못했다. 렉스는 "그때는 키(현재 1m88㎝)가 다 자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야구와 이어져 있었다. 친구의 캐치볼을 돕던 그의 운동 능력을 본 켄터키대 코치 릭 엑스타인이 눈여겨봤다. 전직 메이저리거 데이비드 엑스타인의 동생인 엑스타인 코치는 렉스에게 테스트를 권했고, 이번엔 합격했다. 뒤늦게 야구를 시작했지만 2017년 LA 다저스와 계약했고, 2021년엔 빅리거의 꿈도 이뤘다. 올해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된 렉스는 새로운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행을 결정했다.
올스타 휴식기 전후로 주춤했던 롯데는 최근 반등의 실마리를 찾았다. 지난주 치른 5경기에서 4승 1패를 거둬 5위 KIA 타이거즈를 5경기 차로 쫓았다. 여전히 쉽지 않지만, 가을 야구를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롯데가 렉스를 데려온 것도 그래서다.
이름 때문에 '티렉스(T-Rex·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줄임말)'란 별명을 얻은 렉스는 "너무 좋다. 팬들이 어떤 별명을 붙여주시든 관심을 주는 거라 감사하다"며 "플레이오프까지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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