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코 잘린 부인, 조선의 간호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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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린 소녀는 조선의 옥분이였다.
그 '작은 병원'에는 마르다라는 조선인 간호사가 있었다.
조선의 여인 대개가 그렇듯 이름이 없던 천한 신분이었다.
부패와 무지의 조선은 망국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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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없는 어느 부인 '마르다'..서양 의사 도움으로 잘린 코, 팔 수술
“열네 살 소녀가 작은 병원에 도착했다. 소녀는 외국인 여성들을 보고 겁이 났지만 그런 걸 신경 쓰기에는 너무 아팠다. 소녀는 외국인들이 ‘침대’라고 부르는 이상한 물건 위에서 눈처럼 흰 시트를 덮고 잤다. 하지만 다음날 깨어나니 안락함, 즉 먹을 것과 따스함, 친절한 말, 심지어 의사와 간호사들의 다정한 미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해피스트 걸 인 코리아’ 미네르바 구타펠, 1911)
옥분이는 ‘작은 병원’에서 8개월간 열병과 고통 속에서 살았다. 소녀가 어느 날 그를 보살피던 간호사 구타펠에게 말했다. 동상으로 잘린 두 팔과 한쪽 다리를 들며 기쁨의 탄성을 지르면서 말이다.
“보세요 간호사님, 의사 선생님께서 내 고통을 모두 잘라 내셨어요!”
그 ‘작은 병원’에는 마르다라는 조선인 간호사가 있었다. 조선의 여인 대개가 그렇듯 이름이 없던 천한 신분이었다. ‘마르다’라는 이름도 병원 사람들이 지어주었다. 마르다가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때 의료진이 경악했다. 이 환자를 접한 병원장 언스버거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 비참한 현실이 먼 얘기가 아니다. 1897~1910년대 지금의 서울 동대문에 있던 구제 의료 기구 ‘볼드윈시약소’ 현장에서 벌어진 실화다. 부패와 무지의 조선은 망국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도성 안마저도 콜레라 등 전염병이 창궐해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흥인지문(동대문) 인근도 그러했다.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 여성은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하인 같은 사람들이 전염병이나 회생 불가능한 병에 걸리면 성 밖으로 추방되어 짚으로 만든 움막 안에서 혼자 살도록 버려지데…성 밖 어느 곳을 가든 이처럼 버려진 환자들을 수백 명씩 발견할 수 있습니다.’(미국 의사 스크랜턴의 선교 편지, 1887)
미 예일대와 뉴욕의과대학을 졸업한 윌리엄 스크랜튼은 조선의 비참한 의료 현실을 보고 1885년 어머니 메리 스크랜튼(이화학당 설립자)과 함께 서울에 들어왔다. 고종 임금은 서양 의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크랜턴에게 ‘시(施)병원’이란 이름을 주고 왕립 양호원으로 삼았다.
그러나 모자는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에게 돌아가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한국 첫 여성 전문병원 ‘보구여관’(1887) 부설 격인 긴급 의료소인 시약소를 1888년 서울 애오개에 세웠다. 조선 정부가 전염병 환자를 수용했던 활인서(活人署) 터였다.
그리고 이듬해 동쪽에도 시약소를 설치했는데 본국의 독지가 ‘볼드윈 부인’의 이름을 따 ‘볼드윈시약소’라고 칭했다. 바로 이 볼드윈시약소가 근현대 여성 의료의 산실 ‘동대문부인병원’으로 지금의 ‘이화여대의료원’이다.
현 동대문 옆 ‘흥인지문공원’은 개화기 가난한 이들에게 인술을 베풀던 서양 의료진이 활동하고 그들로부터 현대 의학을 배우던 ‘여자의학강습소’(1928년 설립)가 있던 터이다. 의료타운이자 선교타운이었다.
그런데 1993년 ‘이대동대문병원’이 서울 목동으로 이전하면서 근대 인술의 현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양 성곽 복원 프로젝트 일환으로 밋밋한 동산을 만들어 놨는데 기독교 유입에 따른 근대 인술 현장은 역사가 아닌지 묻고 싶은 곳이다.
전정희 편집위원 laka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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