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환자 위한 돌봄 강화가 안락사 허용보다 더 시급"

민태원 2022. 8. 1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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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조력 존엄사법' 논란
최근 의사 조력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자 사회 각계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안락사 허용 보다는 생애말기 돌봄체계 강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민일보DB

의사 조력 입법화 찬성 늘었지만
의사·환자단체·법학자 강한 우려
의료비 경감·호스피스 확대 요구

“회진 때 ‘빨리 죽고 싶다. 빨리 끝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말기 환자를 종종 만나는데, 이런 간청이 안락사에 대한 진짜 의향을 드러낸 것으로 이해돼서는 안됩니다. 사실 그것은 언제나 도움과 애정을 구하는 고뇌에 찬 간원입니다.”

10년 넘게 매년 1000여명의 말기 환자를 진료해 온 서울성모병원 완화의학과 김철민 교수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안락사 허용보다 더 시급한 과제, 생애말기 돌봄 체계화’ 토론회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김 교수는 “그들은 2~3일 지나면 더 이상 안락사에 대한 요청을 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통증 조절과 의료인 봉사자 성직자 사회사업가 등으로부터 총체적 지지를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호스피스 돌봄으로도 증상 조절에 실패하는 환자는 극소수에 해당된다.

말기 환자를 돌보는 임상의사가 국회에 나와 생생한 진료 경험을 나누게 된 데에는 지난 6월 발의된 안락사 허용 법안(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호스피스·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 때문이다. ‘조력 존엄사법’으로 좋게 포장된 이 법안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들이 담당 의사의 조력(약물 처방 등)을 받아 스스로 생명을 끊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다. 법안 발의 배경으로 국민 76%가 의사 조력 자살 입법화에 찬성하고 있으며 그 비율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제시됐다.

김 교수는 “하지만 의사 조력 자살이 합법화돼 죽음이 기본 선택지가 되는 문화, 극단적 선택의 전염, 미묘하게 죽으라는 강요를 당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말기 환자의 희망 상실을 부추기는 문화가 된다면 말기 환자와 가족들은 미끄러운 경사 길에 서 있는 공과 같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신 호스피스 완화의료 확대와 생애말기 돌봄체계 강화로 미끄러운 경사 길을 지키는 버팀목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회에 참석한 의사단체와 환자단체, 법학자들도 의사 조력 자살 허용법은 시기 상조라거나 법제화에 강한 우려 입장을 표명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홍보이사는 “조력 죽음 허용을 위한 법 개정보다는 호스피스 대상질환 확대를 비롯한 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과 우울증 등 정신의학적, 심리사회적 지원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석배 단국대 법대 교수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증진하려는 법안 취지는 공감하지만 방향 자체가 틀렸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자살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말기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액 의료비나 간병 등 힘든 돌봄 부담을 가족에게 주지 않기 위해 의사 조력 자살을 택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으며, 비싼 의료비나 간병 부담을 지는 가족이 말기 환자에게 의사 조력 자살을 하도록 유도할 가능성도 있어서 말기 환자를 둔 가족 간 불화와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토론회에선 의사 조력 자살 허용법 발의의 근거가 된 설문조사와는 크게 차이나는 결과가 공개됐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만 18세 이상 1007명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조사에선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정부와 국회의 정책 우선 순위를 묻는 질문에 ‘간병비 부담을 줄이는 지원체계 마련’(28.6%) ‘의료비 절감 등을 포함한 경제적 지원’(26.7%)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의 확충 및 지원’(25.4%) 등 생애말기 돌봄체계 강화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80.7%로 의사 조력 자살 합법화(13.6%)보다 6배 가량 높았다.

국내 생애말기 돌봄 인프라는 미흡하다. 전체 사망자의 77.1%(2019년 기준)가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있지만 임종기 질 높은 돌봄과 배려를 위한 시스템은 부족하다. 죽음을 앞두고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임종실을 갖춘 곳은 호스피스 병동이 설치된 의료기관 외에는 거의 없다. 또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는 현재 입원형 88곳 1478병상, 가정형 38곳, 자문형 35곳에서 제공되고 있으나 이용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호스피스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고 서비스 제공 기관이 적은 데다 지역별 편차도 크기 때문이다. 입원형의 경우 암과 비암성 말기 질환을 포함해 이용률은 21.3%(2020년 기준)에 그친다. 들어가려면 서울의 경우 3~4주, 인천·경기는 1~2주 기다려야 하고 대기 중 임종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학회 김현숙 회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말기 환자 돌봄 환경은 더욱 악화됐다.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 88곳 가운데 21곳이 코로나전담병원으로 지정돼 휴업했다”며 “일상회복 조치 후에도 호스피스기관 복구는 더디고 고질적인 인력 및 재정 문제로 아예 폐쇄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3년간 폐업이나 운영을 중단한 호스피스 기관은 5곳에 달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5일 “현재 23%대에 머무르는 호스피스 이용률을 30%대로 높이는 동시에 입원형에 치중되는 서비스 유형을 가정형, 자문형, 요양병원형, 소아청소년형 등으로 다양화하는 시범사업과 본사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역사회에서 제공하는 노인 돌봄 및 복지 자원과 생애말기 돌봄 모형을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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