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제2의 요소수 사태에 대비해야

한장희 2022. 8. 1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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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희 편집국 부국장


이미 물은 엎질러진 걸까. 중국의 ‘사드 3불(不) 1한(限)’ 주장에 ‘한한령(限韓令)’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미국의 줄 세우기에 중국도 군기잡기에 나선 모양새다. 다시 사드 카드를 꺼내든 게 한국을 혼낼 명분 찾기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참 고약한 게 우리 처지다. 한국 반도체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을 옥죄는 데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여전히 반도체 기술과 장비, 소재 분야에서 미국과 일본에 대한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동맹에서 우리가 빠진다면 미국 시장에서 대만에 밀릴 게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인공지능(AI) 분야 등에서 미국과의 협력 기회도 제한될 수 있다. 아예 반도체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한국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1번으로 가입한 것도, 미국 국무부가 제안한 한국 미국 일본 대만의 반도체 동맹인 ‘칩4(Chip4)’ 가입을 적극 고려하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한 여당 의원이 미국의 칩4 참여 요구를 영화 ‘대부’ 속 명대사인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비유했을까.

이제 핵심은 미국 주도의 대중 경제전쟁 참전에 따른 후폭풍을 감내할 수 있을지 여부다. 일각에선 중국이 마땅한 보복 수단이 없고 자국 피해도 우려돼 쉽게 행동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근거로 드는 게 반도체 기술 격차다. 사드 경제 보복 당시에도 대중 반도체 수출에는 전혀 제약이 없었는데, 이는 한국 반도체가 없으면 중국이 수출 주력 가전제품 등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첨단 반도체의 경우 기술력이 한참 뒤처져 있어 자칫 한국산 반도체를 규제할 경우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AI, 로봇, 5G통신 같은 4차 산업도 자멸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최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해 중국과 대만의 갈등이 고조될 때도 중국이 대만산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제재나 수입 금지 조치를 하지 못했던 것도 같은 이유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한국의 대중 수출 품목 가운데 철강·석유화학 같은 반제품 비중이 떨어지고, 반도체·디스플레이 같은 전자부품과 자동차·기계부품 등 부품 비중이 급속히 높아진 점도 경제 보복 우려를 상쇄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산 부품의 대중 수출이 중단되면 중국 기업도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같은 낙관론은 현장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중국은 자국의 핵심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하면 반드시 보복을 감행해온 데다 한국 산업구조의 치명적 약점이 노출된 이상 중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넘쳐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의 대중 수출의 80% 이상이 중간재인데 메모리 반도체 하나를 제외하고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것의 중국 자체 생산·조달이 가능해 수입 제한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요소수 수출 제한으로 국내 산업계가 홍역을 치렀던 사례를 볼 때 중국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보복 카드로 꺼낸다면 우리 산업계는 또다시 벼랑 끝에 몰릴 수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대중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인 품목은 요소 실리콘 리튬 마그네슘을 포함해 1088개, 수입 의존도가 70% 이상인 품목은 653개나 된다. 요소수 사태가 중국이 무기화할 수 있는 자국 수출 품목이 수백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새로 알려주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비록 미국의 요구에 의한 칩4 참여라 할지라도 미국이 중국의 보복을 한국 대신 대응해줄 수는 없다. 동맹 참여에 따른 이익도, 손해도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다. 문제는 대기업과 달리 타깃이 될 중소기업들은 보복 조치에 대응할 카드도, 여력도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칩4와 중국 사이의 줄타기는 물론 후폭풍 대응도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외교부가 중심이 돼 칩4 참여가 중국 배제가 아니란 점을 설득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은 중국 보복 조치에 따른 피해 업종과 기업들을 위한 꼼꼼한 대응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후 현실화하고 있는 자원 무기화 시대에 맞는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 6년 전 사드 사태 때처럼 중국 눈치만 보면서 우왕좌왕한다면 국익은커녕 국가 위신만 추락할 게 뻔하다.

한장희 편집국 부국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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