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의 시시각각] '펠로시 패싱'을 보는 다른 시선

남정호 입력 2022. 8. 16. 01:00 수정 2022. 8. 16.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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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대만행, 바이든 입장 무시
대만해협 전쟁 시 한국 연루 위험
친미·친중 아닌 국익 기준 삼아야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을 안 만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펠로시는 방한 전 중국의 반대 속에 대만으로 날아가 시진핑 정권의 인권 탄압 등을 강하게 성토했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펠로시 패싱'은 '중국 눈치 보기'의 결과로, 미국에 대한 결례이자 한·미 동맹을 훼손하는 실책이라는 게 비판론의 요지다.
일견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피했어야 할 큰 함정에 빠진 느낌이다. 펠로시와 미국을 동일시한 잘못이 바로 그것이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대해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 자신과 그의 외교·안보 참모, 미 군부, 그리고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주류 언론의 많은 논객이 일제히 반대했었다. 우크라이나전을 통해 러시아와 간접 전쟁 중인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해선 안 된다는 게 핵심 논리였다. 중국은 러시아의 최대 우방이면서도 군사 물자는 주지 않았다. 예상보다 우크라이나전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의 무기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이런 판에 중국이 공격용 무기, 특히 러시아가 간청하는 드론을 넘겨주면 전쟁 양상이 바뀐다. 나아가 펠로시 방문으로 대만해협 내 긴장이 고조돼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 3연임을 확정하는 11월 당 대회를 앞둔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미국에 대한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할 처지다. 사소한 충돌에도 중국이 강력히 대응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만약 대만해협에서 미·중이 충돌할 경우 미국은 유럽에선 러시아와, 아시아에선 중국과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러야 한다. 미 군부가 겁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올 82세로 은퇴를 앞둔 펠로시가 대만을 찾는 건 '인권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남기려는 욕심 탓이란 시각이 많다. 그의 방문을 두고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완전히 무모하고, 위험하며,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한 것도 그래서다. 오죽하면 중국을 혐오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마저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잘못된 일"이라고 꼬집었겠는가.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해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 대사,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사령관의 영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이유로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 아시아 주변국들도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었다. 실제로 페니 웡 호주 외무장관은 "모든 관련국이 긴장 완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심해야 하며 우리 모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고 펠로시의 방문 자제를 촉구했었다.
그러니 보라. 펠로시 방문으로 나아진 게 있는지. 우려대로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3일 직후부터 중국은 26년 만에 대만 주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 중국 전투기와 드론이 양국 경계선을 연일 넘나들어 어느 때보다 일촉즉발의 분위기다. 아울러 중국은 대만산 감귤류와 냉동 생선 등에 대해 금수 조처를 내렸고 외국 기업들은 대만을 떠날 궁리만 하고 있다.

지난 4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항의로 대만해협 동부를 향해 포사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욱이 한국에 대만해협의 분쟁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한·미 동맹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지만 때론 버거운 짐이 될 수 있다. 대만해협에서 미·중 간 충돌이 일어나면 미군 2만여 명이 주둔 중인 한국도 휘말릴 위험이 크다. 자기 정치를 위한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한국이 반대해야 할 결정적 이유다. 게다가 대만해협이 위험해지면 한국을 오가는 화물선들은 필리핀해로 우회해야 한다. 물류비와 시간이 더 들 수밖에 없다.
펠로시 입국 시 한국 측 주요 인사가 안 나간 건 실수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면담 회피'라는 소극적 방법으로나마 '아무 실익 없이 지역 안정만 해치는 중국 자극은 삼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비난은커녕 칭찬받을 일이 아닌가. 결과적으로 중국과 같은 입장을 취하게 됐다고 무조건 친중 사대주의라고 싸잡아 공격해선 곤란하다. 친미나 친중, 한·미 동맹이나 한·중 우호 자체가 외교 원칙이 될 수는 없다. 오로지 국익의 기반 위에서 평화와 인권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를 외교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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