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맨홀
‘맨홀(manhole)’은 사람이 드나드는 구멍이다. 상·하수도, 도시가스, 전력선, 통신망 등 지하 시설을 점검하고 보수하기 위해 지상과 수직으로 연결한 통로다. 평소에는 묵직한 맨홀 뚜껑으로 막아둬 보행자나 차량이 빠지지 않도록 한다.
맨홀의 역사는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의 토목 기술자들은 벽돌로 지하 하수도를 만들어 오물을 먼 하류로 흘려보냈다. 오수와 접촉할 일이 사라지니 악취와 함께 전염병 위험도 줄어들었다. 당시에도 하수도에 접근해 청소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고, 돌로 맨홀 뚜껑을 만들어 덮었다. 서기 100년경 하수도 기반시설이 완공됐고, 이는 로마가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18세기 중엽 근대적 하수도가 탄생할 때까지는 큰 발전이 없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자 오물과 쓰레기가 하천으로 흘러들어 악취가 진동했다. 영국 빈민구호법 제정 위원회 책임자로 일했던 에드윈 채드윅은 이 같은 오염물에서 발생하는 유독가스가 전염병의 원인이라면서 상하수도 설치, 수세식 화장실 사용, 하수도 및 하수관로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1848년 영국 공중위생법이 제정되고, 근대적 상하수도 시스템이 정착되기 시작한다.
『한국 하수도 발전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근대식 하수도 시설이 본격적으로 축조·개수된 건 1918년부터 7년간 162만원을 투입한 제1기 하수도 개수사업부터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하수관을 지하에 묻고, 지름 1.2~2m짜리 원형 맨홀을 35군데에 설치했다. 당시 개거(위가 열린 수로) 1만3115m, 암거(땅에 묻은 수로) 4691m가 마련됐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오늘날 하수관로 총 길이는 서울 1만184㎞, 전국 16만 3099㎞에 달한다. 하수관로에 설치된 맨홀만 100만개에 육박하며, 그중 4분의 1이 서울에 있다.
맨홀은 평소 시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시설이지만, 이번 폭우 같은 재난에선 공포의 대상이 된다. 맨홀 사고는 드물지만 치명적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각종 관거·맨홀 등에서 작업하다 숨진 이가 15명에 달한다. 보행자와 지하에서 작업하는 노동자 모두 안전한 도시가 돼야 한다.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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