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고인돌 훼손..어디선가 또 벌어질 수 있는 일

김정연 입력 2022. 8. 16. 00:02 수정 2022. 8. 16. 06: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큰 상석 아래 넓게 깔린 박석이 세계 최대 규모로 추정되던 김해 구산동 지석묘. [연합뉴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인돌로 추정되는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가 정비공사 중에 원형이 훼손됐다. 큰 상석과 주변에 깔려 있던 박석(바닥돌)들이 원래 모습에서 흐트러졌다. 구산동 고인돌은 상석의 크기도 거대하지만(350t) 박석 분포 면적(1615㎡)이 넓어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은 가야의 유적이다. 가야가 세워지기 전 청동기 말기부터 초기 철기시대의 무덤 형태를 보여준다. 경남도 기념물이고, 김해시는 국가 사적 지정 신청을 한 상태였다.

본지 확인 결과, 문제가 된 고인돌 정비 업무에는 학예사가 단 한 명도 투입되지 않았다. 문화재계에선 “의사결정 구조나 사업 추진 과정에 학예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한다.

구산동 지석묘 관련 업무는 김해시 문화관광사업소 산하 가야사복원과가 담당한다. 그러나 책임자인 과장도 학예사가 아니고, 담당자도 지난해 7월 발령받아 문화재 업무를 처음 접했다. 2020년 12월 공사 계약 이후 1년 반동안 공사가 진행됐지만, 매 주 현장에 방문했음에도 아무도 문제의 소지를 걸러내지 못했다.

김해 구산동 지석묘는 최근 김해시의 공사로 아래 깔린 박석이 반듯한 형태로 재배치 됐다. 원형이 훼손된 고인돌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자 김해시는 추진 중이던 사적 지정 신청도 철회했다. [사진 김해시]

가야사복원과 총 21명 직원 중 학예사가 4명 있기는 하다. 그 중 3명은 최근 1~2년 새 김해시가 가야사 복원에 힘을 실으면서 새로 뽑은 고고학 전공자다. 그러나 그들은 구산동 사업에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이런 학예사 공백이 거침 없는 땅파기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장의 시공업체는 별다른 추가 설명이 없다면 도면대로 시공한다. 한 학예사는 “문화재 관련 업력이 길고 시공 경험이 많다면, 현장에서 지석묘 하단이 발굴이 안된 걸 보고 일단 멈추고 다시 한 번 확인했겠지만 모든 업체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경남 지역의 한 학예사는 “문화재 전문가와 시공 업체간의 대화는 수학자와 국문학자의 대화 비슷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돌멩이 하나라도 함부로 들어내는 행위는 말할 필요도 없는 금기지만, 다른 한쪽은 하지 말라는 얘기가 없다면 얼마든지 들어낼 수 있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구산동 고인돌의 경우 경남도 문화재위원들은 “문화재 원형을 보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문화재 전문가(문화재위원)와 시공사 사이에서 연결하고 통역하는 학예사가 없다 보니 문화재를 위한답시고 문화재를 훼손한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일의 반복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장의 학예사들은 “무엇보다 업무 전문성을 무시한 인사 시스템이 문제”라고 짚었다. 일반직공무원의 경우 1~2년 주기로 순환근무하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전문성 부족, 문화재청과 지자체 사이의 불통 구조, 문화재에 대해 안일하게 접근하는 인식 문제 등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란 것이다. 비슷한 일이 앞으로 김해시 아닌 어느 곳에서라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창원대 사학과 남재우 교수는 “문화유산 관련 사업은 학예사의 눈을 한 번이라도 거치는 것이 이상적이고, 팀에 학예사가 있으면 한번 의논을 해보는 게 기본”이라며 “이번 사태는 팀 내 학예사와도 협업이 안된 소통 문제, 인력 부족, 순환하는 직책자의 업무 연속성 부족 등이 한꺼번에 맞물려 나타난 사태”라고 짚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