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가 이슬람 모독 소설? 책 읽었다면 그렇게 오해 못해"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아니 적어도 한 번이라도 읽었다면 절대로 오해할 수 없는 내용이에요.”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강연 도중 피습당한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5)의 1988년 장편 소설 『악마의 시』에 대한 번역가 김진준(사진)씨의 평이다. 루슈디는 이 소설로 30년 넘게 이슬람권의 위협을 받아왔다. 소설 출간 직후부터 이슬람교를 모독했다는 비판이 일었고, 출간 이듬해인 1989년 이란 최고지도자였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루슈디를 처형하라는 ‘파트와’(이슬람 칙령)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후 가명을 쓰고 영국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은둔·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대체 소설의 어떤 부분이 문제였던 걸까. 『악마의 시』 2001년 한국어 첫 완역본을 작업한 김진준씨는 14일 “소설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은 오해 혹은 오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피습 소식을 듣고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입을 뗀 김씨는 『악마의 시』가 겪는 수난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 논란에 비유했다. “『롤리타』는 소설 제목만 들어도 내용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악마의 시』도 책을 실제 읽은 사람이라면 그 안에 수많은 주제가 있다는 걸 알지만, 정작 책을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신성모독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라 봅니다.”
『악마의 시』는 비행기 테러에서 살아남은 두 주인공 지브릴 파리슈타와 살라딘 참차가 각각 천사와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게 큰 줄거리다. 이슬람교에 뿌리를 둔 여러 상징과 은유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를 신성모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예컨대 이슬람 신자들이 대표적으로 문제 삼는 소설 속 예언자의 이름을 들었다. 무함마드를 경멸적으로 일컫는 명칭인 ‘마훈드’(Mahound)라고 설정된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마훈드’라는 이름은 중세 시대부터 쓰였던 이름”이라며 “마호메트처럼 오래전부터 쓰이던 이름을 사용했을 뿐인데, 이를 작가의 잘못으로 몰아가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쿠란(이슬람 경전)을 소설 제목인 ‘악마의 시’로 지칭해 신성모독이라는 해석에 대해서도 “‘악마의 시’는 쿠란 전체가 아니라 극히 일부, 더구나 지금의 쿠란에서는 이미 지워진 두 구절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며 “소설이 두 구절을 ‘악마의 시’라고 표현한 것도 이슬람권 학자들도 존재를 인정하는 민간전설에 기반을 둔 것이지, 루슈디가 지어낸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씨는 “1994년에는 아랍과 이슬람권 지식인 91명이 『루슈디를 위하여』라는 책을 출간해 구명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며 “실제 책을 읽은 지식인들은 신성모독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악마의 시』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 김씨는 “선과 악, 남과 여, 제국과 식민지, 강자와 약자 등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대립과 갈등을 작가가 ‘욕심껏’ 담아낸 책”이라며 “소설이 담고 있는 수많은 의미 중에서 어디까지 감지하고 이해해 낼 것인지는 독자들 개개인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분노』 『한밤의 아이들』 등 루슈디의 주요작 다수를 우리말로 옮겼고, 현재 『무어의 마지막 한숨』 완역본과 『악마의 시』 개정판도 준비 중이다. 하지만 1991년 일본 번역가 이가라시 히토시가 괴한에게 살해되는 등 『악마의 시』의 번역·출판에 관련된 사람들이 실제 공격당한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루슈디의 피습 이후 불안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 씨는 “내가 아는 한 이슬람교도 대부분은 평화를 사랑하고 폭력을 미워한다”며 “큰 걱정은 안 된다”고 덧붙였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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