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첨단미술 왜 26년간 파묻혔나

김형순 2022. 8. 15. 19: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 탄생 90주년 '바로크 백남준' 전 열어

[김형순 기자]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전시장' 입구
ⓒ 김형순
 
백남준아트센터(관장 김성은)는 2층 전시실에서 2023년 1월 24일까지 '바로크 백남준'이라는 제목으로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을 연다. 특히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발표된 '시스티나 성당(1993)'과 백남준아트센터가 재구성한 '바로크 레이저(1995)'가 시선을 끈다.

이밖에 자연, 인공, 전자 빛을 활용한 다양한 설치작품도 선보인다. '비디오 샹들리에', '촛불 TV', '촛불 하나' 또한 레이저 작용을 활용해 삼원색(RGB)을 입힌 '삼원소'가 그렇다. 그리고 전자조각인 '슈베르트', '밥 호프', '찰리 채플린' 등도 전시된다.

30년 전 작품, 우리 시대와 맞아
 
 백남준 I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 가변크기, 비디오 프로세서 2대, 프로젝터 34-42대, 비계구조물, 4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993. 울산시립미술관 소장 ⓒ 백남준 에스테이트
ⓒ 김형순
 
그러면 먼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고 1993년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시스티나 성당(시스틴 채플)'을 보자. 이 작품은 2019년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에서 전 세계의 애호가와 미술인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영국 런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미국 샌프란시스코(SF), 싱가포르 순으로 순회전을 열었다.

테이트모던 백남준 전시도록에 SF현대미술관 뉴미디어 수석 큐레이터인 '루돌프 프릴링(R. Frieling)'가 쓴 논평을 보면, "21세기 몰입형인 이 작품은 백남준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을 속도감 있는 전자 미학으로 바꿔 청중을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대중문화와 고차원 예술성이 기묘하게 결합되었다. 지금 우리 시대와 너무 잘 맞는다"고 평했다.

백남준은 1963년 첫 전시도 '음악의 전시'였지만, 1993년 이 작품도 시각예술이 아니라 동서의 춤과 음악이 접목한 '소리 콜라주' 같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머리가 돌 것 같이 소란스러운 괴성이 들려온다. 굿판에서나 경험할 것 같은 그런 신기 어린 무아지경에 빠지게 한다.

이 작품은 또한 '주술과 기술과 예술'의 요소가 잘 혼합되었다. 야생의 늑대 소리가 들릴 때는 주술적 분위기가 나고, 기술적으로 보면 첨단 하이테크이고, 예술적으로 보면 21세기 디지털 방식이다. 매 순간 달라지는 화면이 온종일 변화무쌍하게 전시장을 수놓는다.

'유화물감'에서 '전자아트'로
 
 백남준 I '시스티나 성당' 가변크기, 비디오 프로세서 2대, 프로젝터 34-42대, 비계구조물, 4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993. ⓒ 백남준 에스테이트 뒤로 '보이스'와 '무어맨'이 보인다.
ⓒ 김형순
 
서양미술사를 보면, 르네상스 '다빈치'에서 입체파 '피카소'까지 그 전 칸딘스키의 '추상주의',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등 회화에서 다양한 실험이 있었으나 근본적 변화는 없었다.

급기야 20세기 서양미술은 위기를 맞았고 이를 구한 이가 '뒤샹', 그는 기존처럼 재현(표현)되는 작품이 아니라 그의 대표작 '샘'처럼 '기성품(레디메이드)'을 작가의 아이디어로 전시장에 배치해도 작품이 된다는 '개념미술'을 창안했다. 하지만 이 또한 한계점에 도달했다.

비상구 없는 서양미술에서 백남준이 혜성처럼 나타나 '유화물감'이 아닌 '전자방식'으로 시공에 구애받지 않는 비디오아트를 발명했다. 그는 초기 '실험 TV'에서 '비디오아트·위성아트·레이저아트'로 발전시켰고, 현대미술의 막힌 숨통을 뚫었다. 이는 세계미술계에 예측 불가능한 '빅뱅'을 가져왔다. 이는 지금도 'NFT', '메타버스' 아트로 진화 중이다.

이번에 이 작품은 2번째로 국내에서 소개됐다. 4채널 영상이 무작위 연속화면으로 전시장을 뒤덮었다. 사방팔방, 별자리와 물고기 떼가 물결치듯 출렁인다. 백남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독일 작가 '보이스'와 미국 음악가 '무어맨'도 등장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은 머리 위에 쏟아지는 빛과 영상과 소리에 압도돼 온몸에 찌릿한 전율을 맛보게 된다. 

사운드, 이미지, 모바일 교향곡
 
 백남준 I '시스티나 성당' 가변크기, 비디오 프로세서 2대, 프로젝터 34-42대, 비계구조물, 4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993. ⓒ 백남준 에스테이트
ⓒ 김형순
 
이 작품은 왠지 우리의 고대신화나 고구려 벽화도 연상시킨다. 우리 DNA와 관련 있나? 우리는 '일월성진(日月星辰: 해달별)' 탐구를 좋아하는 '천문' 민족이다. 단군 때부터 써온 우리의 국호 '조선' 중 '조(朝)'를 보면 '별 2개, 해 1개, 달 1개'가 들어 있다.

백남준은 이런 '천문유산'인지 1974년 인터넷 플랫폼인 '전자초고속도로' 프로젝트를 록펠러 재단에 제출해 기금도 탔다. 백남준은 늘 지구를 벗어난 지상보다 넓은 가상개념인 '탈영토' 등에 관심이 높았다.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1977)"는 백남준 발설은 이런 경계 없는 상상력을 발휘한 시스티나 성당 같은 작품을 두고 한 말 같다.

또 이 작품이 독창적인 건, 모든 작가의 고민이기도 하지만 요즘 말로 가성비 좋은, '최저비용으로 최고예술(Low Price, High Art)'를 만드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이 작품에서 4채널 비디오와 40여 대 '빔' 프로젝트와 '비계(아시바)'만을 썼을 뿐이다.

이 첨단작품을 종합해보면 미디어아트의 3요소인 '사운드, 이미지, 모바일'이 잘 결합한 교향곡 같다. 동시에 선사시대 미술 같은 분위기와 첨단과학과 혼종문화까지 보인다. 게다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나 지상이나 천상의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세계를 활짝 펼쳤다.

왜 이 작품이 베니스에서 발표된 후, 26년간 서구에서 묻혀버린 이유가 뭔지 궁금해진다. 혹시 이런 첨단전자아트가 서양미술사를 통째로 흔들 수 있는 파급력이 너무 컸기에? 하여간 이 걸작이 올해 울산시립미술관에 소장된 것은 한국미술계에 큰 경사다.

'바로크 레이저', 포스트 비디오아트
 
 백남준 I '바로크 레이저' 가변크기, 초 1개, 카메라 1대, CRT 프로젝터 2대, 레이저 5대이정성, 최장원, 홍민기, 강신대, 윤제호 복원 2022
ⓒ 김형순
 
이제부터는 다른 작품도 좀 보자. 아트센터는 '바로크 레이저에 대한 경의'라는 제목으로 백남준의 1995년 레이저 작품을 복원했다. 여기엔 백남준 테크니션 '이정성'과 '홍민기 ·강신대' 미디어 작가와 '윤제호' 레어저 작가 그리고 건축가 '최장원' 등이 참가했다.

백남준은 레이저아트를 하면서 '포스트 비디오' 시대라고 칭한다. 그에게 레이저는 가장 빠르게 자료를 전하는 매체였고, 또한 건축, 회화, 음악, 춤 등 예술 간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하는 통로였다. 그래서 그는 늘 이에 관심을 뒀고 실험예술의 대상으로 봤다.

이 작품은 백남준이 1995년 독일의 바로크 건축가 '요한 슐라운' 탄생 300주년을 맞아 그가 건축한 '로레토 순례자교회'의 성격에 맞게 제작됐다. 백남준은 과거 향수를 일으키는 '촛불'과 현장감 주는 '비디오'와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레이저'를 시리즈처럼 묶었다.

초 한 대의 놀라운 위력
 
 백남준, I '촛불 하나' 가변크기, 삼각대 위 촛불, 줌 카메라, 신호변환기, 변압기, 모니터, CRT 프로젝터 1988.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소장 ⓒ 백남준 에스테이트
ⓒ 김형순
 
'촛불 하나'는 백남준이 1998년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에서 처음 소개된 작품이다. 'TV 부처'처럼 구조가 단순하다. 초 하나 밝히고, 그걸 카메라로 찍은 뒤 이걸 다시 1990년대 주로 사용되었던 삼관식 프로젝터를 이용해 전자적 이미지를 벽에 투사하는 방식이다.

이런 이미지는 빛의 스펙트럼처럼 예상하기 힘든 다양한 색으로 보여준다. 영상은 각각 튜브에서 나오는 빛이 겹치는 부분만 삼원색(RGB)으로 분리해 투사하면 노랑, 청록, 보라 등의 색이 나온다. 촛불 하나가 가진 이런 위력은 '나비효과'라는 유행어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은 또한 자연과 인공의 빛을 동 시간대에 같이 공유하게 한다. 촛불의 기원은 물론 고대 이집트 시대로 올라가지만, 백남준은 18세기 향고래에서 추출한 기름인 촛불을 미디어아트에 적용해 비디오아트의 시적 아름다움을 선물한 셈이다.

'원방각', 첨단 레이저아트 되다
 
 백남준 I '삼원소' 틀, 거울, 반투명 플렉시글라스, 광학계, 프리즘, 모터, 연무기 1999.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 백남준 에스테이트
ⓒ 백남준아트센터
 
이제 끝으로 백남준의 대표작 '삼원소(1997~1999)'를 살펴보자. 3년에 걸려 만들어진 이 작품은 2000년 뉴욕 구겐하임 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미국 레이저 아트의 대가 '노먼 밸러드'의 도움도 있었다. 각각 삼재(三才)를 상징하는 '천지인' 같은 원형·사각형·삼각형(원방각)이 구멍을 통해 프리즘에 투사되어 관객에게 역동적 레이저 광선을 감상하게 한다.

백남준은 이 작품이 조형의 근간인 '색·형·면'과 확장된 전자 미디어를 다루기에 더 심혈을 기울인 것 같다. 이에 대해 백남준은 "환상적 레이저 색채를 밀폐된 공간에 가둬놓고 (...) 제한된 공간에서 레이저가 만들어낸 기하학적 무늬가 '원형·사각형·삼각형'에 갇혔을 때 레이저 아트가 그 속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험해 봤다(2000)"라고 밝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백남준아트센터 전화 : 031-201-8500, 홈페이지 : www.njpartcenter.kr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