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 이슬람 모독 소설? 책 읽었다면 그런 오해 못해"

남수현 2022. 8. 1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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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 번역가 인터뷰
소설 '악마의 시'로 이슬람교를 신성모독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작가 살만 루슈디(75). 사진은 2017년 11월 15일 루슈디가 뉴욕에서 열린 제68회 내셔덜 북 어워드에 참석했을 당시 모습. AP=연합뉴스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아니 적어도 한 번이라도 읽었다면 절대로 오해할 수 없는 내용이에요.”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강연 도중 피습당한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5)의 1988년 장편소설 『악마의 시』에 대한 번역가 김진준씨의 평이다. 루슈디는 이 소설로 30년 넘게 이슬람권의 위협을 받던 처지였다. 소설 출간 직후부터 이슬람교를 모독했다는 비판이 일었고, 출간 이듬해인 1989년 이란 최고지도자였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루슈디를 처형하라는 ‘파트와’(이슬람 칙령)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후 가명을 쓰고 영국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은둔·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신성모독? 제대로 읽었다면 오해할 수 없어”


대체 소설의 어떤 부분이 문제였던 걸까. 『악마의 시』 2001년 한국어 첫 완역본을 작업한 김진준씨는 14일 “소설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은 오해 혹은 오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피습 소식을 듣고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입을 뗀 김씨는 『악마의 시』가 겪는 수난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 논란에 비유했다. “『롤리타』는 소설 제목만 들어도 내용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악마의 시』도 책을 실제 읽은 사람이라면 그 안에 수많은 주제가 있다고 알지만, 정작 책을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신성모독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1988년 살만 루슈디(75)가 쓴 소설 '악마의 시'의 2001년 국내 첫 번역본 표지. 사진 문학세계사


『악마의 시』는 비행기 테러에서 살아남은 두 주인공 지브릴 파리슈타와 살라딘 참차가 각각 천사와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게 큰 줄거리다. 현실과 꿈이 교차하고, 그 현실에서조차 비현실적인 일들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마술적 사실주의 소설로 꼽힌다. 이슬람교에 뿌리를 둔 여러 상징과 은유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를 신성모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이슬람 지식인 91명이 ‘구명 운동’ 펼치기도”


예컨대, 이슬람 신자들이 대표적으로 문제 삼는 소설 속 예언자의 이름을 들었다. 무함마드를 경멸적으로 일컫는 명칭인 ‘마훈드’(Mahound)라고 설정된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마훈드’라는 이름은 중세 시대부터 실제 쓰였던 이름”이라며 “마호메트처럼 오래전부터 쓰이던 이름을 사용했을 뿐인데, 이를 작가의 잘못으로 몰아가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쿠란(이슬람 경전)을 소설 제목인 ‘악마의 시’로 지칭해 신성모독이라는 해석에 대해서도 김씨는 “‘악마의 시’는 쿠란 전체가 아니라, 극히 일부, 더구나 지금의 쿠란에서는 이미 지워진 두 구절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며 “소설이 두 구절을 ‘악마의 시’라고 표현한 것도 이슬람권 학자들마저 존재를 인정하는 민간전설에 기반을 둔 것이지, 루슈디가 지어낸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선지자의 제자들을 모욕적으로 표현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해당 표현을 하는 등장인물은 소설 속에서 권력자의 하수인에 불과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생각이 담긴 표현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즉, 소설을 향한 이슬람권의 비판 대부분이 전체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오독이나 오해의 결과라는 것이다.

김씨는 “1994년에는 아랍과 이슬람권 지식인 91명이 『루슈디를 위하여』라는 책을 출간해 루슈디 구명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며 “실제 책을 읽은 지식인들은 신성모독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셔터쿼 연구소에서 강연 도중 흉기 공격을 당해 중상을 입은 살만 루슈디(75)가 응급 치료를 위해 구조 헬기에 옮겨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렇다면 『악마의 시』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 김씨는 “선과 악, 남과 여, 제국과 식민지, 강자와 약자 등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대립과 갈등을 작가가 ‘욕심껏’ 담아낸 책”이라며 “소설이 담고 있는 수많은 의미 중에서 어디까지 감지하고 이해해 낼 것인지는 독자들 개개인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억압은 정밀하지 않아…표현의 자유 무제한 보장돼야”


『분노』 『한밤의 아이들』 『2년 8개월 28일 밤』 등 루슈디의 주요작 다수를 우리말로 옮겼고, 현재 『무어의 마지막 한숨』 완역본과 『악마의 시』 개정판도 준비 중인 김씨는 이번 피습 사건이 불러일으킨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미국 작가 솔 벨로의 소설 『오기 마치의 모험』 속 구절을 인용했다. “억압은 정밀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무언가를 억누를 때는 그 옆에 있는 것들까지 함께 억누르기 마련이다.” 김씨는 “타인의 표현을 억압할 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들까지 억압하게 된다”며 “과거 여러 사례를 떠올려 봐도, 결국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으로 보장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1991년 일본 번역가 이가라시 히토시가 괴한에게 살해되는 등 『악마의 시』의 번역·출판에 관련된 사람들이 실제로 공격당한 경우도 세계적으로 여러 차례 있었다. 김씨는 “다행히 내가 공격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루슈디의 피습 이후 불안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아는 한 이슬람교도 대부분은 평화를 사랑하고 폭력을 미워한다”며 “더군다나 21세기지 않나. 큰 걱정은 안 된다”고 덧붙였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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