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단순한 쇼팽 음악에 인생의 아름다움"

2022. 8. 1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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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 리사이틀 여는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1980년 동양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
오늘부터 춘천·통영·서울 예술의전당 공연
"고난과 역경은 예술가에게 꼭 필요한 요소"
동양인 최초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당 타이손이 15일부터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1980년 동양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64)이 온다. 16일 춘천, 19일 통영,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하노이 출신 손은 베트남 1세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가 설립한 하노이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베트남 전쟁 피란길, 물소가 끄는 수레에는 피아노가 실려 있었다. 보름달 빛 퍼진 정글에서 야생의 자연은 쇼팽과 공명했다. 이후 러시아 피아니스트 아이작카츠에게 발탁돼 모스크바 음악원에 유학했다. 쇼팽 콩쿠르에 나가기 직전 모스크바 올림픽으로 한 달 동안 기숙사를 비워야 해 피아노를 칠 수 없었다. 무릎 위에 손가락으로 연습했다.

쇼팽 콩쿠르 우승 상금 2000달러를 무대에 그대로 두고 온 해프닝으로도 알려졌다. 베트남 가족 한 달 생활비가 10달러 시절 너무 컸던 액수의 상금을 협회 사무국에 맡기고 이듬해 수상자 콘서트 때 찾아간 것이다.

생애 첫 독주회와 협연 데뷔 무대가 바로 1980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콩쿠르였던 당 타이 손. 지난 20년간 몬트리올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미국 오벌린 음악원에 이어 뉴잉글랜드음악원 교수로 활동 중이다. 지난 8일 폴란드 두슈니키에서 열린 쇼팽 피아노 페스티벌에서 연주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그와 e메일로 만났다.


"정글에서 전쟁 겪으며 인류애·자연 배웠죠"


이번 내한 공연은 프랑스 프로그램과 쇼팽 춤곡들로 구성됐다. 그는 1부의 라벨, 드뷔시, 프랑크 작품들에 대해 “구조와 여러 가지 면들에서 복잡하다. ‘이지 리스닝’한 곡들이 아니고 진지한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나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2부의 쇼팽 음악에 대해 그는 “큰 외면적인 형식도 있지만 결국 그 단순함에 매료된다. 단순함에 숨겨진 지혜는 특별하다. 모든 음표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생을 떠올려보면 어린 시절은 단순하고 중장년은 너무나 복잡하다. 더 나이가 들면 다시 현명하게 단순한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했다. 쇼팽의 음악에 인생의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카츠 교수에 발탁돼 이뤄진 모스크바 음악원 유학은 당 타이 손의 터닝 포인트였다. 기술적인 면을 발전시키고 전문적인 배움을 통해 지식을 쌓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당 타이 손은 "더욱 중요한 감성의 발달은 이전 하노이 시절에 완성돼있었다"고 말했다. “정글에서 전쟁을 겪는 동안 서로를 배려하는 인류애와 거대한 자연 자체를 겪고 배웠다. 예술가가 되기 위한 내면을 베트남에서 채웠고, 모스크바 음악원에서는 19세 성인이었기에 지적으로 더 노련하고 영리하게 음악을 분석하고 만들어가며 배울 수 있었다.”

구소련의 피아노 거장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는 당시 “이번 쇼팽 콩쿠르에서는 베트남 출신이 우승할 것”이라 예견했었다. 러시아 피아노 악파의 본산이었던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손은 “피아노로 노래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거기서 스승 블라디미르 나탄슨은 한 주에 5~6시간 이상 제한 없이 레슨을 했다.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대학원 시절 스승 드미트리 바쉬키로프에게는 지적인 연주를 위한 음악의 철학, 연주자의 합리적인 선택, 감정의 중심을 잡아가는 법을 배웠다. 음악적인 발전에 큰 도움을 준 손의 두 스승이다.


쇼팽 콩쿠르 우승…반공 시인 아버지 결핵 치료


당 타이 손이 우승하던 1980년 쇼팽 콩쿠르에서는 ‘포고렐리치 스캔들’이 있었다. 개성이 강한 유고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가 예선에서 탈락하자 아르헤리치가 항의하며 심사위원직에서 사퇴한 사건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버렸다는 소문과 달리 아르헤리치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결선 첫 연주였던 당 타이 손의 연주를 관람하고 돌아가자마자 사무국에 전보를 보내 그의 우승을 축하하고 격려했다. 그럼에도 아르헤리치가 손의 우승을 인정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말이 계속 돌았다. “2010년과 2015년 쇼팽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함께 참석했을 때 아르헤리치는 나를 크게 반기며 옆자리에 나란히 앉기를 권했다. 매너가 따뜻하고 다정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쇼팽 콩쿠르 우승은 그와 가족, 조국 베트남에도 영향을 끼쳤다. 정부의 탄압을 받던 반공 시인 아버지는 우승 후 결핵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베트남 정부와 국민들이 클래식 음악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점도 그의 공 중 하나다.


"고난과 역경 예술가에게 꼭 필요하죠"


당 타이손은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 학교로 돌아간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하며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2020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그의 제자 브루스 리우도 날마다 공연을 한다. 그러나 손은 우승 직후 학교로 돌아갔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1977년 가을부터 80년 쇼팽 콩쿠르에 참가하기까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보낸 3년도 안 되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더 연마하고 싶은 곡들이 많았다. 학교로 돌아가 커리어를 천천히 발전시켜 나가는 길을 선택했고 지금까지 음악을 이어왔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청했다.

“인생에서 고난과 역경은 예술가에게 꼭 필요하다. 무대에서 연주할 때는 관객과 나눌 감정과 생각이 있어야 한다. 누구나 고난과 역경은 싫고 어렵고 피하고 싶다. 이는 단편적인 생각이다. 예술가에게 어려움은 괴롭고 심각한 음악을 연주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위대한 음악가 중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인생을 살았다’는 사람이 있을까? 슈베르트, 베토벤, 천재였던 모차르트마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인생과 예술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눈물이 감각을 풍성하게, 예술성을 더 깊게 해 준다. 예상치 않았던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그래 뭐 나중에 내 음악에 도움이 되겠지’하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한다(웃음).”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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