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법' 시험 안 봐도 뽑던 경찰 바뀌었다..수사역량 강화 TF도 꾸렸다
서울에 사는 A씨는 지난 1월 자신의 노트북에서 개인정보를 USB에 담아 빼간 지인을 경찰에 고소했다가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고소장을 냈지만, 피고소인 조사는커녕 고소인을 조사하겠다는 통보도 없었다. 이유를 물으니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가 맞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A씨의 변호사는 “정보통신망법 위반이 명백하다”고 설명했지만 6개월이 지나도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5월 한 유명 유튜버는 허위의 악성 댓글을 확산시키던 B씨를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지능범죄수사팀으로 가라”는 안내에 따라 접수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어 확인해보니 사건은 사이버팀으로 넘어가 있었다. B씨의 변호사는 “어떤 사안이 어떤 죄목에 해당하고, 그 죄목이 어떤 부서 담당인지를 분류·배당하는 단계에서 시간이 지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법률 지식의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화두로 떠오른 ‘수사역량 강화’의 핵심은 일선 경찰관들의 실무 관련 법률지식을 제고하는 일이다. 대표적 조치가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시행된 순경공채 시험 개편이다.
2014~2021년 순경 공채에서 경찰 실무에 필수적인 경찰학과 형사법(형법+형사소송법)은 선택 과목이었다. 고졸자의 공직 진출을 늘리겠다며 2012년 공무원임용시험령을 개정해 한국사와 영어만 필수과목으로 두고 이들 과목(경찰학·형법·형사소송법)과 국어·수학·사회·과학 중 3과목을 선택해 치르면 되도록 바꾼 것이다.
경찰 안팎에선 “‘비법(非法)’ 경찰이 늘어나면 현장 법 집행에 지장이 생긴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제도가 8년간 유지되며 경찰 내부엔 소위 ‘국·영·수 세대’가 자리 잡았다. 과목 개편으로 9급 공무원을 준비하던 사람들도 쉽사리 경찰직 전환이 가능해지면서 어쩌다 경찰이 된 이들도 늘어났다. 2017년 감사원은 “고졸 학력자의 공직 진출 확대라는 선택과목 제도의 도입 취지와 달리 고교 교과목을 선택한 대졸 합격자가 늘면서 전문성 하락 등의 문제를 유발했다 ”고 지적했다. 인사 파트를 경험한 한 경찰 간부는 “경찰 내부에서도 수험생활을 통해 직무와 직결되는 법 지식을 함양해야 현장 적응도 빠르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전했다.
올해부터 순경 공채 시험에선 국어·사회 등이 선택과목에서 빠졌다. 대신 경찰학·형사법·헌법 등이 필수과목이 되면서 중심이 됐다. 필수였던 영어와 한국사는 검정시험으로 대체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형사법 내에서도 실무 교육 과정에서 다시 다루게 되는 형사소송법보다는 형법의 비중을 높였고 형사소송법 문항도 ‘공판’이 아닌 ‘수사와 증거’에 집중키로 했다. 실무 관련 지식 중심의 개편이다. 헌법 시험은 인권 의식 고양에 필수적이라는 이유로 포함됐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만난 경찰공무원 준비생들도 “실무와 연관된 공부를 깊이 있게 하게 됐다”며 반기는 분위기였다. 경찰 준비생 김모(24·여)씨는 “경찰과 밀접한 형사법을 공부하는 게 수험 가성비도 좋다”며 “수험에서 경찰학 각론이 중요해지면서 평소 관심 있던 스토킹 처벌법 등을 파고들 수 있어 동기부여도 더 잘된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에 순경에 합격한 민모(22·여)씨는 “2년 정도 공부했는데 수험 시절 배운 내용이 실무에 요긴하다”며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
“경찰 행정학·법학 전공자, 변호사 초급 간부 늘릴 것”
그러나 법률 지식 부족에서 비롯되는 현장의 불편과 혼선을 바로잡는데 시험과목 개편만으론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지난 10일 경찰은 윤희근 경찰청장 취임과 동시에 수사역량 강화를 위해 태스크포스(팀장 최주원 치안감)를 꾸리는 한편 법률 지식을 갖춘 인력을 일선에 배치하기 위해 경력직 경쟁채용에 힘을 주기로 했다. 법학과 경찰 행정학 전공자 채용인원을 각각 20명씩 증원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경찰행정학 전공자는 임용 시 5년간 경제팀에서 의무 복무해야 한다고 공고했다.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한 경쟁채용 인원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TF 활동을 통해 수사 전문성 강화 방안과 더불어 이를 위한 경찰 직급 구조 개편 등에 대한 논의가 포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결혼 앞둔 김연아 "새로운 인생 또 시작되는 느낌" (사진 3장)
- 싸이 흠뻑쇼 또 잡음…"공연 후 인조잔디 폭삭, 원상복구 하라"
- "나 임신했어" 이 말에 쫓겨나 모텔 전전…'고딩엄빠' 생존기 [밀실]
- 하정우는 놓쳤고 이정재는 해낸 '이것'…'헌트' 연출력의 비밀
- "이은해, 윤씨 없으면 조현수와 애정행각...부부인줄 몰랐다"
- "TV 속 현빈·공유 어딨죠?" 서양 여성들, 한국 남자에 충격 왜
- "성폭행 당했다" 고소한 여성, 거짓이었다…모텔 CCTV 반전
- 힙쟁이 성지 된 '미국판 마장동'…뉴요커 홀린 로봇팔 정체
- 산책나온 문 부부 협박한 시위자, 이번엔 비서에 칼 들이댔다
- "나 자녀 있는데…" 모텔서 이 말 듣고 여친 찔러 살해한 4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