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근에 허덕이는 아프간.. "마른 빵조차 없어요"
“마른 빵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3~4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영양실조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아프가니스탄 여성 브레슈나는 AFP통신에 이렇게 토로했다. AFP는 그녀가 15~20살쯤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6개월 된 손자 옆에 앉은 35살의 또 다른 여성은 “탈레반 집권 이후 식용유 구하기도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발아래 짓눌려 있다”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이 병원 간호사 호메리아 노우로지는 “부모들이 병원에 빨리 올 여유가 없어서 중증 (아동) 환자가 많다. 얼마나 많은 사망자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15일(현지시간)이면 탈레반이 정권을 재장악한 지 꼭 1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기간 아프간 주민들은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었다.
14일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보고서에서 “아프간 인구의 90% 이상이 거의 1년 동안 식량 불안정 위기를 겪었다”며 “수백만명의 어린이가 급성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고, 심각한 건강문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간 인구의 절반 이상인 2000만명이 세계식량계획(WFP) 평가 기준 3단계 ‘위기’ 또는 4단계 ‘비상’ 수준의 식량 위기를 겪고 있다. 5세 미만 어린이 100만명 이상은 장기간 급성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WFP는 지난 6월 고르 지역 수만명의 사람이 기근의 전조인 5단계 ‘치명적’ 식량 불안정에 빠졌다고 보고했다.
시스템이 붕괴된 아프간에서는 자연재해도 국가적 재난이 되고 있다. 아프간에는 지난 6월 115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강진이 발생했는데 탈레반은 복구 작업에 실패했다. 식량 위기로 영양 상태가 나쁜 주민들이 오염된 물을 마시면서 콜레라가 창궐했다. 강진 이후 자우잔 지역에서만 1만8000건 이상의 콜레라 감염 사례가 보고됐고, 최소 12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헬만드 무사칼라 지역 병원은 콜레라 환자가 급증해 다른 질환 치료를 중단했다. 검사 장비나 치료제도 부족해 환자들은 정맥 주사를 맞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AFP는 “병실은 기력 없는 환자들로 붐볐고, 이들은 녹슨 들것에 누워 정맥 주사를 맞았다”며 “엉망진창의 병동은 탈레반 집권 이후 황폐해진 국가를 휩쓴 재앙적인 인도주의적 위기의 한 사례”라고 묘사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그리스 재무장관 등 경제학자 71명은 지난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 내 동결된 아프간 중앙은행 보유자금 70억 달러 전액을 아프간 구호를 위해 넘겨줘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우리는 아프간 여성과 소녀의 역량을 강화하고 식량 안보를 개선하며 교육 기회를 늘리기 위해 1억5000만 달러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파트너 국가와 함께 아프간 사람들이 직면한 경제 위기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 상황도 최악이다. 특히 여성 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12세 이상 여성의 중·고등 교육 기회가 박탈됐다. 여성은 남성 보호자 없이는 45마일(72㎞) 이상을 이동할 수 없고, 외출 때 몸과 얼굴을 모두 가려야 한다. 여자 화장실 청소 같은 제한적 직업에만 종사할 수 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탈레반은 여성과 소녀의 권리를 심각하게 제한했고, 언론을 탄압했다. 비평가나 반대자를 자의적으로 구금하거나 고문하고, 즉결 처형도 해왔다”고 비판했다. 아프간의 독립 언론 매체의 40%가 문을 닫았고, 언론인은 60%가 줄었다.
가디언은 “아프간 주민들은 탈레반의 탄압과 대량의 기아를 안고 살아간다”며 “악몽이 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는 전날 40여명의 여성이 위협을 무릅쓰고 시위를 벌였다. 여성들은 ‘8월 15일은 블랙데이’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빵과 일, 자유”라는 구호를 외치며 교육부 건물 앞까지 행진을 시도했다.
탈레반은 즉각 총을 쏘며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AFP는 “시위대 일부는 인근 상점으로 피신했다가 탈레반 전사들에게 현장에서 구타당했다”며 “탈레반이 지난해 8월 15일 재집권에 성공한 후 아프간은 암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철군 1년의 결과는 바이든 행정부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 올 초 미군 중부사령관직에서 물러난 케네스 매켄지 전 해병대 대장은 지난 11일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우리가 성급하게 군대를 철수하면 붕괴가 일어날 것 같다는 편지를 수차례 썼다. 대통령과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 합참의장, 국방장관과도 여러 차례 만났다”며 “주둔 병력을 제로로 하면 아프간 정부가 스스로 지탱할 수 없고 붕괴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철군 결정이 실패했음을 비판한 것이다. 매켄지 전 사령관은 지난해 8월 15일 탈레반과 미군 철군을 협상하기 위해 카불로 향했고, 철군 작전을 직접 지휘했던 인물이다.
매켄지 전 사령관은 또 “우리 정보에 따르면 탈레반은 알카에다가 다시 활동할 여지를 허용할 것이고,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IS)를 제거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며 “나는 둘 다 성장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이 테러 조직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했다는 지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초 알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를 제거한 사실을 공개하며 ‘역사적 업적’으로 내세웠지만, AP통신은 “아프간이 9·11 테러 주범의 피난처가 됐다는 뼈아픈 진실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기밀 해제된 자료를 인용해 “미 정보 당국은 새로운 정보 평가에서 알카에다가 지난해 8월 미군 철수 후 아프간에 다시 주둔하지 않았고, 소수의 오래된 알카에다 조직원만 남아 있다는 결론을 지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일부 대테러 전문가는 새로운 정보 평가가 지나치게 희망적이라고 여겼다”고 언급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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