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대깨○'과 분노의 정치

천지우 2022. 8. 15.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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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가 최근 내놓은 'I Was Wrong(내가 틀렸다)' 기획은 한국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유명 칼럼니스트들이 특정 주제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고백하는 일종의 반성문인데,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대깨문, 대깨명, 개딸, 대깨윤, 대깨준 등 극렬 팬덤이 정치판을 뒤흔드는 한국의 현실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이라고 생각됐다.

되도록 많은 이들이 포용적 시선을 갖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분노의 정치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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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우 정치부 차장


뉴욕타임스가 최근 내놓은 ‘I Was Wrong(내가 틀렸다)’ 기획은 한국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유명 칼럼니스트들이 특정 주제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고백하는 일종의 반성문인데,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8명의 칼럼니스트 중 브렛 스티븐스 글 ‘I Was Wrong About Trump Voters’(트럼프를 찍은 사람들에 관해서 내가 틀렸다)가 가장 눈에 띄었다. 대깨문, 대깨명, 개딸, 대깨윤, 대깨준 등 극렬 팬덤이 정치판을 뒤흔드는 한국의 현실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이라고 생각됐다. 스티븐스는 트럼프에 대한 판단은 번복하지 않았다. 트럼프를 여전히 미국인의 삶과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했다. 다만 “당신이 지금까지도 트럼프를 끔찍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면, 당신이야말로 끔찍하다”고 썼던 것을 후회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향해 ‘극혐’의 감정을 토해낸 것이 잘못이었다고 반성한 것이다.

어떤 문제적 인간에게 현혹돼 맹목적인 애정을 쏟는 사람들에 대해 답답하고 불편한 감정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그저 멍청하다고만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가득 담아 비난한다고 그들이 마음을 고쳐먹지는 않는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쉽다. 스티븐스도 이 지점에서 잘못을 깨달았다. 그가 휘두른 필봉이 트럼프의 당선을 저지하기는커녕 도와준 꼴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2020년 11월 트럼프 재선 실패 직후에 쓴 글에서도 “7300만 트럼프 지지자들이 언론에서 편협하고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백인들로 그려지는 게 그들을 계속 분노하게 만든다”며 이런 식으로 ‘분노의 정치’를 부채질하는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설파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스티븐스는 “한 방울의 꿀이 한 드럼의 분노보다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을 인용하며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다가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이 세상에 대해 화가 난 이유, 트럼프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헤아려 그들을 보듬으면서 설득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 사회의 각종 ‘대깨○’들을 보면 이름 자체가 ‘대가리가 깨져도’로 시작하는데 이성적인 설득이 가능하겠냐는 깊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뜩이나 저주와 악다구니가 난무하는 판국에 조롱과 혐오의 언사를 더 쏟아내는 것은 사회에 해롭고 쓸데없는 짓이다. 현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런 악순환을 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되도록 많은 이들이 포용적 시선을 갖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분노의 정치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스는 최근 다른 칼럼에선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중요한 사실은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25년 전에는 빌 클린턴, 헬무트 콜, 토니 블레어, 앨런 그린스펀 같은 자신감 넘치는 지도자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 주요국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지리멸렬한 상태다. 특히 조 바이든에 대해선 “유능한 지도자는 (먹기 힘든) 레몬을 (맛있는) 레모네이드로 변모시키는데, 바이든은 레모네이드를 레몬으로 바꾸는 재주를 가진 것 같다”고 혹평했다.

스티븐스 글에서 한국이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출범 100일도 안 돼 헛발질을 거듭하며 휘청거리는 윤석열정부를 사례로 추가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없다는 건 당연히 나라의 불행이다. 다만 우리만 불행한 건 아니라는 사실은 그나마 위안이 된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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