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오래된 미래

전성필 입력 2022. 8. 15. 04:06 수정 2022. 8. 1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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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필 산업부 기자


2016년 10월, 기술 발전에 따른 암울한 미래상을 그려내는 넷플릭스 SF 시리즈 블랙미러에 ‘추락’이라는 에피소드가 나왔다. 소셜미디어에서의 ‘평판 점수’가 인생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세상을 그려냈다. 다른 이들이 나를 몇 점으로 평가하는지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기도 하고, 밑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평판 점수와 멀어지고 싶어도, 일상생활을 하는 내내 반강제적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6년 전이었지만 해당 에피소드의 내용은 ‘클리셰’에 가까워 신선하지 않다는 평을 받았었다. 소셜미디어에서의 인지도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라 미래를 상상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2010년대 초 페이스북이 큰 유행을 일으킨 이후 우후죽순처럼 소셜미디어가 등장했고 팔로어가 많은 사람, 구독자가 많은 사람, 공감을 많이 일으킨 사람은 현실에서도 큰 권력을 쥐는 존재가 됐다.

반대로 소셜미디어에서 타인의 관심을 덜 받는 이들은 현실에서 고립된 느낌을 받아야 했다. 소셜미디어에 덜 적극적인 사람일 뿐인데,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피해 대상을 초대한 뒤 한꺼번에 나가는 방식으로 혼자 남겨 고립감을 느끼게 하는 ‘방폭’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소셜미디어 없이는 요즘 유행하는 식당이 오늘 문을 여는지 알 수조차 없는 세상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위해선 소셜미디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그곳에서의 인기도가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주는 세상. 단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쭉 현실이었던 ‘오래된 미래’다.

우리나라에 이 오래된 미래로 나아가는 기업이 있다. 카카오는 올해 연말 카카오톡 프로필 영역에 소셜미디어 기능을 넣겠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처럼 다른 사람의 프로필에 ‘좋아요’를 누르는 기능을 추가하는 식이다. 누군가 프로필에 취업이나 결혼, 생일 등 축하나 응원을 받고 싶은 소식을 표시하면 카톡 친구는 공감을 표시할 수 있다.

카카오로서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변화다. 다른 사람의 프로필을 보는 동안 카톡 이용자들은 앱에 더 오랫동안 머무른다. 체류 시간이 길수록 카톡 내 광고를 더 많이 접하게 돼 카카오의 광고 수익은 늘어난다. 사기업으로서 새로운 수익을 내기 위해 기능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카톡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면 ‘옳은 방향’인지 의문이다. 카톡에서 친구를 맺는 방법은 ‘반강제적’이다. 상대방 번호를 ‘#’ 표시 없이 저장하기만 하면 친구가 맺어진다. 팔로우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다른 소셜미디어와 달리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아는 것만으로 프로필 접근 권한이 주어진다. 또 카톡으로 상대방과 대화하려면 상대방 프로필도 반강제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대화 중 상대방 프로필을 보지 않을 수도 없다. 프로필은 대화하러 가는 길이자 장소 그 자체인 셈이다.

그런데 대화하러 가는 길목마다 상대방이 주변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았는지 전시된다면 어떨까. 상대를 평가하는 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프로필에 공감이 적은 사람은 카톡으로 교류하는 관계의 수도 적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관계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만들어내려고 일부러 공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공감의 수를 늘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꾸며낸 프로필이 카톡 친구창을 가득 메울 수도 있다. 인기도가 드러나는 프로필은 결국 ‘평판의 장’일 수밖에 없다.

카카오는 해당 기능 사용 여부를 이용자가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카카오가 일단 기능을 도입해 모든 이용자를 프로필에 공감을 표시하는 세계로 밀어 넣는다면 이용자의 선택은 진정한 자유일까. 소셜미디어에 피로감을 느껴 타인과 대화만 하고자 카톡을 이용하던 사람들도 프로필이라는 소셜미디어에 강제로 참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카카오가 그리는 미래는 기시감 가득한 ‘오래된 미래’인 것 같아 씁쓸하다.

전성필 산업부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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