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희천 (11) 존경하던 한상동 목사님 곁에서 목회의 진면목 익혀

강주화 입력 2022. 8. 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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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고려신학교에서 1년에 한 번 정도 한상동 목사님이 단에 오르셨다.

당시 고려신학교 학생 120명의 소원은 신학교 졸업 후 한 목사님 교회에서 목회를 배우는 것이었다.

한상동 목사님은 내게 "동생이 자네를 소개했네. 내 동생과 제수씨 밑에서 4년 넘게 견뎠다니 대단하네. 우리 교회로 오라"고 하셨다.

당시 미혼이었던 나는 56년 6월부터 연말까지 한상동 목사님 댁에서 하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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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신학교 재학 중 설교 듣고 큰 은혜
부교역자로 부름 받아 댁에서 하숙
정직·겸손·용기의 목회 몸소 배워
박희천 목사가 전도사로 사역하던 1956 12월 23일 삼일교회 학생신앙운동(SFC) 성탄축하 음악예배. 박 목사는 담임 한상동 목사로부터 목회 정신을 배웠다.


1950년대 고려신학교에서 1년에 한 번 정도 한상동 목사님이 단에 오르셨다. 56년 2월 ‘참되게 살자’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실 때였다. “하나님은 참되시기에 참된 자를 들어 쓰시니 참되게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한 목사님은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 거부로 6년간 옥고를 치르신 분이었다. 평소 참되고 정직한 목사님의 삶을 아는 학생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 학생들 120명이 다 울었다.

나도 그날 마룻바닥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날 흘린 눈물은 평생 내 가슴에서 마르지 않는다. 같은 해 3월 고려신학교 졸업 후 두 달 뒤 남교회를 사임했다. 다른 교회에서 경험을 쌓고 싶었다. 당시 고려신학교 학생 120명의 소원은 신학교 졸업 후 한 목사님 교회에서 목회를 배우는 것이었다. 뜻밖에도 내게 그런 기회가 왔다. 한상동 삼일교회 목사님이 나를 부교역자로 부르셨다.

나를 추천한 사람은 남교회 한명동 목사님이었다. 한상동 목사님은 내게 “동생이 자네를 소개했네. 내 동생과 제수씨 밑에서 4년 넘게 견뎠다니 대단하네. 우리 교회로 오라”고 하셨다. 당시 미혼이었던 나는 56년 6월부터 연말까지 한상동 목사님 댁에서 하숙을 했다. 하루 세끼를 한 목사님과 겸상했다.

목사님은 함께 일하는 모든 동역자를 인격적으로 대하셨다. 목사님과 난 27세 나이 차가 났으니 그 분은 내게 아버지뻘이었다. 목사님은 고려신학교 설립자이자 고려파 총회 증경총회장이었다. 그런데도 목사님은 늘 나를 존중하셨다. 한 목사님은 작은 일 하나에도 하나님 도우심 없이는 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졌다. 늘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셨다. 그는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48:11)’는 말씀을 자주 인용하셨다.

57년 7월 어느 주일 새벽 한 목사님이 내가 사는 사택으로 찾아오셨다. “아직 오늘 주일 아침 설교 준비가 안 됐는데 전도사님이 저를 대신해 설교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놀랐다. 한 목사님의 그런 정직, 겸손과 용기에…. 목사님은 토요일 온종일 설교 준비를 하시며 밤을 새우셨을 것이다. 그래도 안 되자 주일 새벽에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어떤 당회장이 주일 설교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을 전도사에게 알리고 부탁하겠는가. 하지만 한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설교 준비가 안 된 당회장이 나서 교회에 손해를 끼치는 것보다는 전도사가 전하더라도 교회에 유익을 준다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한 목사님은 교회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생과 모욕도 달게 받을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계셨다. 노회나 총회에서 회의를 할 때 아무리 방해를 받아도 절대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끝까지 침착과 평정을 유지하셨다. 나는 2년 7개월동안 한 목사님에게 목회 정신을 배웠다.

고려신학교 재학 중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영어 실력도 문제였고 돈도 없었다.

정리=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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