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한국이라고?..'헌트' 숨막히는 총격전 거리의 비밀 [GO로케]

백종현 2022. 8. 15.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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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헌트'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첩보물이다. 한국·미국·일본·태국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사실 모든 장면을 국내에서 촬영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이정재 감독의 ‘헌트’는 스케일이 큰 영화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한국·미국·일본·태국을 넘나들며 첩보전을 벌인다. 안기부 해외팀을 이끄는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가 조직 내 스파이를 색출해 나가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모든 장면을 국내에서 촬영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여파로 해외 촬영이 어려워지면서, 국내 로케이션 헌팅에만 10개월을 쏟았단다. 당시 시대상에 적합한 공간,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는 장소를 찾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을 테다. ‘헌트’는 서울·부산·통영·거제·전주·군산·춘천 등 전국 15개 지역 228개 장소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주요 촬영지 중에선 뜻밖의 장소도 여럿 있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에 없는 워싱턴 호텔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미국 워싱턴 D.C. 호텔 장면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켄싱턴호텔의 내외부를 활용해 촬영했다. 사진 켄싱턴호텔앤리조트
‘헌트’ 첫 장면은 미국에서 시작한다. 1983년 미국 워싱턴 D.C.의 한 호텔에서 대통령 암살 시도가 벌어지면서 일대가 아수라장 되는 대목이다.

‘1980년대 미국 워싱턴 D.C. 한복판에 있었을 법한 호텔’을 국내서 찾는다면? 이정재 감독의 선택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켄싱턴호텔이었다. ‘헌트’의 박민정 프로듀서는 “왕복 8차선대로가 펼쳐져 있어 시위대 장면 촬영에 적합했고, 무엇보다 외관과 인테리어 모두 고풍스러운 멋이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좋았다”고 회상했다.

켄싱턴호텔은 여의도에 들어선 최초의 특급호텔이다. 1978년 개관한 ‘뉴맨하탄호텔’이 전신으로, 2004년 이랜드그룹이 운영을 맡으며 ‘렉싱턴호텔’로 다시 태어났고, 2015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의 ‘켄싱턴호텔’로 거듭났다. 이름이 여러 번 바뀌긴 했으나, 뉴욕풍의 클래식한 분위기는 바꾸지 않았다. ‘렉싱턴’이라는 작명도 뉴욕 맨해튼의 3대 거리 중 하나인 ‘렉싱턴 애비뉴’에서 가져왔다. 로비 층에 있는 뷔페레스토랑 ‘브로드웨이’, 스테이크하우스 ‘뉴욕뉴욕’의 간판도 영화 속에 그대로 등장한다. 또 다른 특급호텔도 등장한다. 김정도와 미국 CIA 요원이 접선한 고급 바는 서울 광화문 사거리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찰스 H’다.


전주 가맥의 추억


전주 가맥의 대명사로 통하는 경원동 '전일갑오'. 영화에서는 운동권 대학생이 드나드는 술집으로 등장했다. 중앙포토
‘헌트’의 주요 인물 가운데 스파이 색출 작전에 휘말리는 일본 출신의 대학생 ‘조유정(고윤정)’이 있다. 그가 운동권 학생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은 전북 전주의 이름난 가맥집에서 촬영했다. 한옥마을 맞은편 경원동에 자리한 ‘전일갑오(전일슈퍼)’다.

‘가맥’은 ‘가게 맥주’의 준말. 슈퍼처럼 잡동사니도 팔고, 술도 파는 가게라는 뜻이다. 1980년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청춘들이 구멍가게에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즐기던 것이 독특한 술 문화로 자리 잡았다. 현재 전주에만 대략 약 300곳의 가맥집이 있다. 허름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분위기, 저렴한 가격이 가맥의 매력이다. 전일갑오를 비롯한 가맥집 대부분이 맥주 한 병에 2500~3000원을 받는다. 황태포나 계란말이 같은 안주를 곁들여도 2~3만원이면 넉넉히 먹고 마실 수 있다.


도쿄가 아니라 부산이었다


영화 '헌트' 속 도쿄 거리의 모습. 실제로는 부산역 인근 초량동 골목에서 촬영했다. 일본 분위기를 내기 위해 1983년 개봉한 '나라야마 부시코'의 포스터를 크게 내걸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헌트’의 액션신 가운데 최고 하이라이트는 도쿄 거리에서 펼쳐지는 카체이싱과 대규모 총격전이다. 아무리 눈썰미가 좋은 사람도 국내에서 촬영했다고 믿기 어려운 장면인데, 부산역 일대의 중앙동 4가, 동광동 2가, 초량동 거리를 통째로 래핑하다시피 하여 촬영에 들어갔다.

모든 간판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우체통, 공중전화부스, 교통 표지판, 자동차 번호판 하나까지 1980년대 일본풍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박일현 미술 감독은 “여름 내내 부산역 옆 골목을 동경 거리로 바꿨다. 한 달 내내 세팅하고 주말마다 찍었다”고 말했다. 영주고가가 지나는 부산역 옆 골목을 주 촬영지로 설정한 것은 고가도로가 많은 일본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촬영 후 모든 세트를 철거해 ‘헌트’ 분위기를 느끼기가 쉽지 않지만, 영화를 재밌게 봤다면 한 번쯤 가 볼 만하다.

‘버마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한 태국의 묘역 장면도 실은 국내서 찍었다. 강원도 고성 화암사 인근 유휴지에 태국풍 건물을 짓고, 야자수를 대거 심어 촬영했다. 태국 묘역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롱샷 장면에서 얼핏 익숙한 봉우리가 보이는데, 바로 고성과 속초에 걸쳐 있는 설악산 울산바위다.

영화 '헌트' 예고편의 한 장면. 태국 묘역을 비추는 롱샷에 설악산 울산바위가 함께 보인다.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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