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기후위기는 실존적 위협인가

2022. 8. 15.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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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전 환경부장관

지난 주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은 500㎜의 물 폭탄을 맞았다. 연평균 강수량(약 1200㎜)의 40%가 한꺼번에 쏟아진 극한강수로 인해 인명피해까지 났고, 배수시설 인프라는 제 구실을 못했다. 한편 제주지역은 80년만의 폭염을 겪었다. 이런 극한기상(extreme weather) 현상은 지구촌 곳곳에서 빈발하고 있다. 8월초 가장 덥고(최고 58도) 건조하다는 미국 데스밸리 국립공원에는 1000년에 한 번 발생할까말까 한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연평균 강수량 50㎜ 중 38㎜가 3시간에 쏟아지면서, NASA의 위성사진에는 건조한 사막협곡의 풍경이 거대한 호수처럼 찍혔다.

가뭄·홍수·폭염·한파·폭설·산불·사이클론 등 극한기상 사태는 지구온난화 시나리오에 들어있는 사건들이다. 기후변화 탓에 에너지·식량·수자원은 안보 차원의 전략적 자원이 됐고 그 확보를 둘러싼 국가간 경쟁이 치열하다. 2009년 영국의 존 베딩턴 수석과학자문관은 2030년경 세계가 식량과 물 부족, 유가 폭등의 ‘퍼펙트 스톰’에 직면하고, 기후변화와 대규모 재난민 이주가 복합되어 대격변을 겪게 되리라 경고했다. 통계상 2000~2019년 세계 자연재난 건수(약 7400건)는 1980~1999년(약 4200건)에 비해 1.8배로 늘어나고, 피해규모는 3조달러였다(UN).

「 지구촌 곳곳 극한기상 현상 빈발
지구온난화가 극단적 재난 원인
기후리스크 관리 역량 강화해야
재난 거버넌스도 점검 보강 필요

2022년 세계경제포럼(WEF)은 경제·환경·지정학·사회·기술 부문의 단기(0~2년), 중기(2~5년), 장기(5~10년) 글로벌 리스크를 평가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와 리더 1000명을 대상으로 37개 리스크에 대해 조사한 결과, 단기 리스크는 1위 극한기상에 이어 생계위기, 기후행동 실패, 사회적 결속력 약화가 꼽혔다. 중기 리스크는 1위 기후행동 실패에 이어 극한기상, 사회적 결속력 약화, 생계위기 순이었다. 장기 리스크는 1위 기후행동 실패에 이어 극한기상, 생물다양성 손실, 천연자원 위기가 꼽혔다. 전 지구적으로 기후행동 실패로 극한기상 사태가 빈발하면서 생계위기에 직면하고 사회적 결속력이 약화된다는 전망이다.

이미 기후 리스크는 공급사슬 붕괴를 비롯해 기간시설 파괴, 원자재 가격 급등, 무역량 감소 등 경제 전반을 위협하고 금융·보험에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극단적 재난 리스크가 경제적 충격을 초래해 금융위기를 유발하는 ‘그린스완’을 경고했고,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경제 전망에 기후위기 리스크를 반영했다.

기후변화는 팬데믹과도 연관된다. 산불·가뭄·수몰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이 목축지와 사람들의 주거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가축과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기 때문이다. 최근 80년간 발생한 전염병은 주로 인수공통 감염병으로 그중 70%가 야생동물에게서 왔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침팬지, 조류독감은 닭·오리 등 조류, 에볼라는 과일박쥐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동토층의 해동(解凍)은 냉동상태의 병원체를 되살려 옛날 감염병을 부활시키고 있다. 2020년 세계은행 보고서는 팬데믹과의 투쟁을 기후변화에 대한 투쟁으로 규정했다.

최근 라스베이거스는 기후변화로 물 기근이 심해지자 네바다주의 새로운 법에 따라 공공부지의 잔디밭을 계속 갈아엎고 있다. 물을 많이 먹는 잔디밭을 없애고 그 자리에 점적관수(drip irrigation) 방식의 식목을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물 부족 지역에서는 한 그루가 하루에 4인 가족용 물을 필요로 하는 아보카도 농장을 폐쇄했다. 그리스의 아테네시는 유럽 최초로 CHO(Chief Heat Officer)라는 공직을 신설했다. 여름 기온이 45도까지 치솟으면서 열 흡수를 위한 도시공원을 조성하고, 고대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수로 이용 계획까지 세웠다. 20㎞의 지하터널에 하수를 처리한 중수(中水)를 흘려보내 도시의 열기를 식히자는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극한기상의 자연재난은 뉴노멀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닉 보스트롬 교수가 정의한 실존적 리스크(existential risks)에 들어있다. 극한기상 사태는 고도 기술문명의 인프라를 붕괴시켜 파국적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2011년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대표적 사례다. 이렇듯 복합적이고 예측 불가한 기후비상사태에 대응하는 재난안전은 ‘설마 또 그럴까’ 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한국의 재난관리 체계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국민안전처를 컨트롤타워로 신설했다가 2017년 지자체와의 협업을 강화한 재난관리 총괄의 행정안전부로 개편됐다. 재난안전 정책은 과학적·선제적 관리를 목표로 재난안전 디지털 플랫폼 구축, 재난 원인 분석과 복구 지원체계 강화, 안전사각지대 정비, 조기경보 체계 강화 등으로 짜여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재난안전 시스템이 유사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가이다. 이번 극한강수 사태를 계기로 재난안전 인프라 점검,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협업, 운영인력의 업무 역량, 필요시 민관군 합동의 즉시 지원을 비롯해 자연재난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경제·사회적 취약 인구 지원 대책과 AI 지능형 재난관리 시스템 보강 등 철저한 평가를 거쳐 개선해 다시 올 극한기상 재난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 한국과총 명예회장, 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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