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반지하 퇴출

최현주 2022. 8. 1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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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 금융팀 기자

지하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부터다. 당시 남북 관계가 일촉즉발로 치닫자 정부는 일반 주택에도 벙커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주택 지하층 설치를 의무화했다. 전쟁에 대비해 만든 지하층은 당시 주택난과 맞물려 저렴한 주거공간으로 활용됐다.

1984년 주택 지하층의 지상 노출 높이가 3분의 1에서 2분의 1로 완화되면서 ‘반’지하가 등장했다. 이전 지하보다 채광·환기가 다소 유리했고 궁한 서민들에게 저렴한 안식처 역할을 했다.

반지하에 대한 인식은 물난리 이후 달라졌다. 1990년대 들어 반지하 침수 피해가 도마 위에 올랐고 정부는 ‘반지하 퇴출’에 나섰다. 1998년 서울시는 상습 침수지역 피해의 80%가 반지하(지하)라며 침수 피해가 잦은 지역의 반지하 신축을 금지했다. 1999년은 주택 지하층 의무 설치 규정을 폐지했다. 2001년, 2010년도 물난리가 나자 피해 지역의 반지하 신축 금지 카드를 빼 들었다. 2020년엔 반지하 거주자의 공공임대주택 이주 지원 대책을 내놨지만, 아직 실태 조사도 마치지 못했다.

115년 만의 폭우로 지난 8일 서울 관악구의 반지하에 살던 장애인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이틀 만에 서울시는 또다시 수해 예방 대책이 아닌 반지하 퇴출 대책을 내놨다. 반지하 신축을 금하고 20년 안에 기존 반지하를 없애며 반지하 거주자의 공공주택 입주·주택 바우처를 지원하겠단다.

구조상 침수에 취약한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취지는 좋다. 문제는 반지하 거주자들의 거취다. 이들도 주거 여건이 열악하다는 것을 알지만,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해 저마다 이유로 반지하를 택했다.

공공주택 입주 지원은 요원하다. 지난해 서울 주거 상향 사업을 통해 공공주택에 입주한 가구(1669가구) 중 반지하 가구는 247가구(14.8%)에 불과하다. 1년간 월 최대 12만원을 지원하는 주택 바우처도 현실성이 없다. 서울의 3.3㎡(약 1평) 쪽방 평균 월세도 30만원이다. 결국 이들은 반지하보다 더 열악한 고시원이나 판잣집으로 가야 할 판이다. 반지하 소유주의 반발도 만만찮다. 임대료를 받기 위해 매입한 개인 재산을 정부가 박탈하는 셈이라서다.

애꿎은 반지하 탓이 아니라 그냥 ‘수해 대비가 미흡했다. 도시 배수 시스템을 정비하겠다’고 담백하게 대응할 수는 없는 걸까.

최현주 금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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