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기림의 날, 영화 '보드랍게'가 던진 숙제를 떠올리다

이창희 입력 2022. 8. 1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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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영화읽기] 다큐멘터리 영화 <보드랍게>

[이창희 기자]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이다. 역사의 증인은 이제 열한 분만이 남아계실 뿐인데,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자세는 점점 더 강경해지고 있다. 지난 2월 위안부 피해자인 김순악 할머님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보드랍게>(Comfort)(2020)가 개봉되었다.

그동안 위안부 할머님들의 이야기는 여러 차례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져왔기에, 이 영화에서 과연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의심으로 상영관을 찾았다. 게다가 영문 제목인 'Comfort'는 일본이 위안부를 'Comfort Women'으로 칭하면서 오염된 단어이므로, 불편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있었다. 물론, 의심이 감동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보드랍게> 관련 사진.
ⓒ 박문칠
 

<보드랍게>의 시도는 과감하다.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에서는 다루기 어려웠던 인물의 인생 전체를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열여섯 살 김순악은 1944년 만주로 끌려갔다. 전쟁은 곧바로 끝났지만, 그녀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광복 직후의 대한민국은 그녀를 가족에게 돌려보내지 못했고,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순악은 미군의 '위안부'로 살아야 했다.

나라 잃은 식민지의 2등 시민에게 가해졌던 폭력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 후에도 여전히 가혹했다. 게다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성폭력 피해자 김순악의 1944년 이후의 삶은 2020년 미투 운동 당사자를 통해 현재로 이어진다. 박문칠 감독은 생전의 김순악 할머니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다양한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데, 특히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의 입을 통해 낭독되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묘한 현실감을 선사한다.

영화의 시대는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상처도 연결되어 있었다. 김순악의 상처도 일본군 '위안부'로 파견되었던 1년여 남짓의 시간에서 멈추지 않았고, 오랫동안 감춰야 했던 아픔을 혼자 견뎌야 했던 세월은, 상처를 이해해 주는 활동가들을 만나고 나서야 치유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리고 모순적이지만, 국가가 보호해 주지 못한 상처의 트라우마는 현대의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었고, 미투 운동 당사자들은 김순악 할머니의 고통을 나눠 가지면서 현재형이 된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들의 연대와 포용이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묘한 안도감마저 주는 장면이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압력이 심상치 않다.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소녀상을 철거해달라는 일본 정부의 정치적인 압력은 노골적인데, 대한민국의 극우주의자들이 여기에 동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괴롭다. 수요 집회에 대한 극우단체의 집요한 방해도 이해되지 않는데, 미국 애틀랜타에 소녀상을 설치하기로 한 결정은 한인사회 내부의 갈등으로 좌초 위기라는 뉴스를 들었다. 역사는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아픔이어야 할 텐데, 우리 안에서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간신히 아물었던 생채기에서 붉은 피가 스민다. 우리는 왜 당연한 사실을 두고 갈라져 싸우는가? 이 장면은 영화 속 김순악 할머니의 걱정을 떠오르게 한다.

"할머니는 뉴스에서 우리끼리 나눠져 싸울 때마다 힘들어하셨어요. 우리가 이렇게 싸우다가 다시 전쟁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김순악 할머니에게 전쟁은 끝내 털어내지 못한 트라우마였다. 전쟁은 그녀에게 성 노예의 굴레를 씌웠고, 다시 전쟁이라도 난다면 이 땅의 아이들이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그대로 현재의 우리에게 이어질 것을 알았다. 역사를 고스란히 몸 안에 간직한 증인들을 통해 확인한 사실은 너무도 명백한데, 우리는 왜 여전히 나눠져서 싸우고 있을까? 비참하다.

박문칠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기억이 그분들에 대한 살풀이에만 그치지 않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시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미투 운동 당사자들에게 할머니의 목소리를 입혔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시대를 타고 여전히 계속된다. 그러니, 소녀 김순악에게 덧씌워진 성폭력 피해자의 아픔은, 미처 해결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신 김순악 혼자의 것이 아니다.

<보드랍게>가 강조하는 현재의 아픔은 2022년 8월의 혼란한 정치적인 상황과 연결되며, 우리 모두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연대의 행동은, 개봉된 <보드랍게>를 함께 보며 김순악의 인생이 현재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동참하는 것이 아닐까?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이고, 바로 다음 날인 8.15는 77주년 광복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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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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