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습' 루슈디, 입 열었다..美 검찰 "하루 전 도착, 계획 범죄"

박소영 2022. 8. 1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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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 저자로 이슬람권의 위협을 받았던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5)가 미국 강연 무대에서 흉기에 찔려 입원한 지 하루 만인 13일(현지시간) 의식을 찾고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다. 공격범인 레바논계 미국인 하디 마타르(24)는 2급 살인미수와 폭행 혐의로 이날 기소됐다.

살만 루슈디가 지난 2018년 8월 18일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에서 열린 북페스티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루슈디 깨어났지만, 눈·팔·간 손상


AP 통신·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루슈디의 대변인 앤드루 와일리는 13일 "전날 수술을 받은 직후 인공호흡기를 착용했지만, 하루가 지난 후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언론인이자 동료 작가인 아티쉬 타시르도 이날 저녁 소셜미디어(SNS)에 "루슈디가 인공호흡기를 떼고 농담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루슈디는 한쪽 눈을 잃을 것으로 보이며, 팔 신경이 절단되고 간도 손상된 상태라고 와일리 대변인은 전했다.

앞서 지난 12일 오전 뉴욕주 서부 셔터쿼에서 강연을 위해 무대에 올랐던 루슈디는 갑자기 달려든 마타르에게 흉기로 목·복부·눈·가슴·허벅지 등을 찔려 중상을 입었다. 루슈디는 피습 직후 헬기에 실려 인근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수 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검찰 조사 결과 범인 마타르는 루슈디를 흉기로 약 10회 정도 찌른 것으로 파악됐다.

살만 루시디가 지난 12일 오전 10시 50분께 미국 뉴욕주 셔터쿼에서 강연하려고 무대에 나갔는데, 피습을 당해 쓰러졌다. AP=연합뉴스


현장에서 체포된 마타르는 계획적으로 루슈디의 공격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은 전했다. 검찰 당국에 따르면 마타르는 가짜 신분증을 이용해 하루 전 강연 현장에 도착한 뒤 범행을 준비했다. 미국 뉴욕주 셔터쿼 카운티의 제이슨 슈미트 지방검사장은 13일 "용의자 마타르를 2급 살인미수와 폭행 혐의로 정식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날 예심에서 마타르의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마타르에 대해 보석 없는 구금을 명령했다. 그는 19일 다시 법정에 나올 예정이다.


공격범, 이란군에 심정적 동조


공격범 하디 마타르가 지난 13일 미국 뉴욕주 메이빌의 셔터쿼 카운티 법정에 나왔다. AP=연합뉴스

마타르의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마타르의 부모는 레바논 남부 야룬시에 살다가 미국으로 이주해 캘리포니아주에서 마타르를 낳았다. 알리 테흐페 야룬시 시장은 그의 부모가 야룬 출신임을 밝혔지만, 이들이 레바논에 기반을 둔 이슬람 무장조직 헤즈볼라와 관련 있는지 등은 전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헤즈볼라 측도 이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밝혔다. 이란 혁명수비대와의 연관성도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NBC 뉴욕은 이번 수사 내용에 대해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수사당국이 공격범인 마타르의 SNS 계정들을 분석한 결과 그가 시아파 극단주의와 이란 혁명수비대에 심정적으로 동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이슬람 모독 소설 써 암살 위협

루슈디는 1981년 저서 『한밤의 아이들』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1989년 발표한 소설『악마의 시』 출판 이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아왔다. 이들은 소설 내용 중에 이슬람의 예언자 모하마드를 모독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주장했다. 출판 당시 이란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는 루슈디에 ‘처단 명령’을 내리는 등 유례없는 강경 대응을 했다.

한 남성이 13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살만 루슈디가 피습당했다는 내용이 담긴 이란 신문을 집고 있다. AFP=연합뉴스


실제로 1991년『악마의 시』 일본 번역자가 살해당했으며, 이탈리아 번역자는 흉기 피습을 당한 후 겨우 목숨을 건졌다. 1993년엔 노르웨이 출판인이 총에 맞아 중상을 입는 등 소설과 관련해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루슈디는 경찰의 철통 경호 아래 수시로 이사를 하면서도 다른 가명으로 저술 활동을 이어왔다. 이란 매체와 단체는 루슈디에게 현상금 300만 달러(39억원) 이상을 내건 상태다.

이란 정부와 관영 매체들은 루슈디의 피습 소식에 대해 공격범을 칭찬하고, 이슬람교를 모독한 루슈디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란 테헤란에서 발행하는 신문 카이한은 14일자 1면에 "루슈디가 신의 복수를 받았다"는 기사를 썼다고 NYT가 전했다.


서방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


서방의 지도자들은 루슈디의 피습에 충격을 표하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루슈디에 대한 사악한 공격에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며 "우리는 루슈디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모든 이들과 연대해 미국적 가치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재확인한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앤서니 알바니즈 호주 총리 등도 류슈디의 피습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며 그의 쾌유를 기원했다.

이번 피습 사건 후 현장 경비가 소홀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CNN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주최 측이 기본적인 안전 강화 권고조차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강연 참석자들의 가방 검사나 금속탐지기 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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