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가 쓴 흑인용 곱슬머리 가발, 이게 지금 K팝이 놓친 것"
음악 평론가 인터뷰 시리즈 (6)
음악 평론가 인터뷰 시리즈 여섯 번째로 이규탁(45) 한국 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를 만났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언론정보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미국 조지메이슨대에서 ‘K팝의 세계화에 대한 연구’로 문화연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5년부터 한국 조지메이슨대에서 K팝과 대중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케이팝의 시대』(2016), 『갈등하는 케이, 팝 -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음악』(2020), 『케이팝 내셔널리즘』(2020) 등이 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뜨거운 쟁점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별로 논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주제 중 하나가 ‘문화적 감수성’이다. 이 때문에 K팝 가수들은 다른 나라나 지역의 문화적 요소를 자신의 음악이나 패션에 차용하고 ‘문화 도용’ 혹은 ‘문화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를 했다는 해외 팬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하고 사과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이규탁 교수는 K팝은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화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K팝과 한국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걸 보고 굉장히 기뻐하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배우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 전유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나 존중 없이 그 문화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한국과 타문화 상호 간 ‘기브 앤 테이크’의 부재가 자꾸 비슷한 문화 전유 논란이 반복되는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인천 송도 한국 조지메이슨대 캠퍼스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최근 그를 인터뷰했다.
지난 6월 가수 현아가 프랑스의 흑인용 미용용품점에서 산 곱슬머리 가발을 착용한 사진을 올렸다가 해외 팬들 사이에 논란이 됐다. 약 1년 전, 블랙핑크의 멤버 리사 역시 흑인 헤어스타일인 ‘박스 브레이드’(Box Braid· 두피부터 촘촘히 땋은 헤어스타일)를 하고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가 비판이 일자 사과했다. 왜 유사한 논란이 반복되는가.
A : K팝 아티스트, 기획사, 한국 팬 모두 문화적 감수성 면에서 상당히 무지하다. 예를 들어 K팝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문화적 기원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K팝 아이돌도 흑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음악과 패션을 하면서도 그게 어디서 유래한 건지 모르는 듯하다. 그래서 자꾸 K팝 가수들이 ‘드레드록스’(Dreadlocks·머리카락을 굵게 땋거나 뭉친 스타일) 등의 흑인 전통 스타일을 하거나 다른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고 나왔다가 전 세계 팬들로부터 비난받는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다인종 국가에 사는 흑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고유 패션 스타일과 문화는 그들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는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단일 민족에 가까운 한국인들에게는 그게 잘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해외에서 비난이 일면 ‘그냥 헤어스타일, 옷차림을 따라 한 것뿐인데 이게 왜 모욕적이라는 거야’라고 반응한다. 한편 해외 팬들, 특히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큰 모욕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한국인이 타문화에 전반적으로 무지한 이유는 뭔가.
타문화를 낮게 여기는 국수주의나 자민족 중심주의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냥 다른 나라나 문화에 대해서 배우는 것에 관심이 없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K팝의 세계 진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항상 외국에서 얼마나 인기 있는지, 방탄이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할 것인지 못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뿐이다. K팝에 해외로부터 온 음악적인 요소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하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한국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타국은 딱 세 나라, 미국, 일본, 중국밖에 없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근데 그것마저 표면적인 관심으로, “그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반응을 신경 쓴다고 해서 미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딱히 배우고 싶어하진 않는다. 그러니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를 자주 도용하는 게 왜 문제인지 이해할 만한 배경지식이 부재한 상황이다. 한국인들이 K팝과 K 컬처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건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문화적으로 주고받는 상호작용, 즉 ‘기브 앤 테이크’가 안 되고 있다.
K팝 아티스트 중에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보여준 경우는 있나.
A : 대표적인 사례로는 방탄소년단(BTS)이 있다. BTS는 힙합 그룹으로 시작했다. 데뷔 직후인 2014년 ‘방탄소년단의 아메리칸 허슬라이프’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직접 미국에 가서 쿨리오·워렌 지와 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래퍼들로부터 진짜 힙합을 배운다는 내용이었다. 힙합의 뿌리와 해당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보여준 셈이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백인 경찰관에 의해 살해된 이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 방탄소년단은 BLM 단체에 100만 달러(약 12억원)를 기부했다. 주요 팬층을 생각하면 굉장히 현명한 선택이었다. 한국은 비교적 잠잠했지만 전 세계,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흑인 과잉 진압에 대한 분노가 엄청나던 시기였는데, 바로 이들이 K팝 해외시장의 주 소비층이다. K팝이 흑인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는 해외 팬들의 시각으로 보면 힙합에 기반을 둔 그룹인 BTS가 그렇게 중요한 흑인사회의 이슈에 대해 침묵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한국은 가수들이 정치성을 드러내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방탄의 BLM 기부에 대해 약간의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BTS의 BLM 사례에서처럼 해외 팬들은 K팝 가수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기를 바라지만, 한국 팬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Q : 이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걸까.
A : 애초에 해외 팬들과 국내 팬들이 K팝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난다. 해외, 특히 서구 팬들의 시각으로 보면 K팝은 근본적으로 비주류 감성이 있다. K팝이 아무리 해외에서도 인기 있고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것처럼 주류 사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이 하는, 아시아에서 온 음악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비주류, ‘언더독 감성’에 어필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K팝이 해외에서는 여러 소수집단, 즉 비 백인 소수인종, 성 소수자 커뮤니티, 그리고 사회의 주류가 아닌 Z세대 등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해외 K팝 팬들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나 백인 우월주의에 대항해 결집하는 현상이 많이 보인다, 최근 인상 깊었던 것은 미국인 팬들이 걸그룹 트와이스의 곡 ‘필 스페셜(Feel Special)’을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조 바이든을 지지하는 테마송으로 사용했다. 그 노래 자체는 그 어떠한 정치적 의도가 없으며, 트와이스 멤버 본인들도 정치색을 드러낸 적이 없는데도 ‘필 스페셜’이라는 노래에 해외 팬들이 특정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K팝은 이런 소수자의 정신, 진보의 정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해외 팬들은 K팝 가수들이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해주길 기대한다.
한국 팬들은 K팝 가수로부터 뭘 기대하나.
한국에서 K팝은 완벽한 주류다. 국내에서 보기에 K팝 아이돌은 주류 대중의 취향에 어필하도록 철저히 디자인되어 나온 상품에 더 가깝다. 그래서 K팝은 국내에서는 소수자에 대한 대표성이 전혀 없고, 국내 팬들은 애초에 그러길 바라지도 않는다. 주류에 속한다는 것은 최대한 많은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누구의 기분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국내 팬들이 아이돌들로부터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길 바라는 것도 이해가 된다. 또 한국 팬들은 K팝을 한국적인 무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성을 띠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K팝의 국가적 정체성이 BTS의 병역 문제 관련 논의에서 드러났는데, 한국 사람들은 BTS의 활동을 마치 손흥민 선수가 국가대표 축구팀에서 뛸 때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무언가로 인식한다. 그래서 K팝이 국제적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국가적 자긍심을 느낀다. 반면 외국 팬들은 K팝을 그들이 공유하며 함께 즐기는 글로벌 문화라고 인식한다. 따라서 그들이 K팝에서 바라는 점도 다를 수밖에 없다. 국내외 팬들의 입장이 충돌하니 K팝 가수들이 상반되는 요구에 부응하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 얻을수록 가수와 작품으로부터 요구되는 문화적 감수성의 수준도 점점 높아질 것이다.
Q : K팝이 문화적 감수성을 높이려면
A : 단기적으로는 가수, 팬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기획사가 타문화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배우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기획사들이 연습생들 외국어 공부시키듯 문화적 감수성에 대해 교육도 해야 한다. K팝의 글로벌 인기를 보고 기뻐하는 만큼, 이젠 K팝이 내놓는 콘텐트를 세계 누구나 어디서든 지켜보고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인들이 전반적으로 타문화에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선은 우리가 K팝을 논의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냥 그 나라에서 BTS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만 궁금해할 게 아니라, BTS와 K팝의 어떤 면들이 그 나라 사람들에게 어필했는지, 그들의 문화적 배경도 생각해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된다. 상호주의는 비즈니스적인 면에서도 꼭 필요한 거다. 아시아 국가 간 문화 교류에 대한 학술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미얀마 국립대 교수가 나한테 오더니, “K팝은 미얀마에서 엄청 인기가 있는데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미얀마 음악을 듣기는커녕 미얀마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다른 이들의 문화를 소비할 의향은 전혀 없이 우리 문화만 수출하고 싶어하면 불만이 싹틀 수밖에 없다. 그게 K팝이나 한류 전반에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리가 없다. ‘기브 앤 테이크’는 기본적인 예의이다.
* 이 기사는 코리아중앙데일리 7월 13일자 10면에 보도된 영문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코리아중앙데일리 양현주·윤소연 기자 yang.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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