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인의 시집이 금서였다는 것을 아시나요? [시를 읽는 아침]

주영헌 입력 2022. 8. 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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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이후에야 읽을 수 있었던 백석과 정지용 시인의 시집

[주영헌 기자]

1988년을 얘기하면, 가장 먼저 '88올림픽'을 기억하게 됩니다. 저는 당시 중학생이었는데요, TV에서 보았던 임순애 선수의 성화 봉송이나 굴렁쇠를 굴리던 소년의 모습은 아직도 아지랑이처럼 기억이 납니다.

그해 2월 25일 대한민국 제13대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했으며, 8월 4일 MBC 뉴스데스크 방송 도중 한 청년이 난입해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다'라고 얘기했던 사건은 노래로도 만들어지고 지금까지도 회자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학사에서도 1988년은 중요한 해입니다. 월북(납북) 문인들의 해금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입니다.

월북 문인 해금 발표는 1988년 7월 19일입니다. 시인이자 국어학자인 정한모 문화공보부 장관은 출판이 금지되어 온 월북작가 120여 명의 작품출판을 허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정지용, 김기림, 오장환, 백석, 이용악, 임화 시인 등이 있습니다.
 
 백석시전집
ⓒ 창작사
   
 정지용시전집
ⓒ 민음사
 
백석·정지용 시인의 시가 한때 금서로 지정되었었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도 그리 많지 않으실 것입니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와 정지용의 시 <향수>를 떠올리면서, 저 작품들이 우리가 읽을 수 없었던 '금지된 시'였다는 사실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지용 시인의 시집도 '금서'였다 

해금 조치에 따라 여러 출판사에서는 해금 시인들의 시집이 발간되었습니다. 월북 이후 수십 년 동안 발간되지 못했던 시인들의 시가 대중들에게 다시 소개된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발간된 시집이 백석 시집입니다.
 
소장중인 월북문인 시집 (발간순으로) 

<白石詩全集>(백석시전집)  1987.11.10. 창작사  3,000원
<鄭芝溶詩全集>(정지용시전집)  1988.1.1. 민음사  3,000원
<金起林 全集>(김기림 전집)  1988.1.30. 심설당 5,500원
<李庸岳詩全集>(이용악시전집) 1988.6.15. 창작과비평사 3,200원
<임화전집(玄海灘)> 1988.12.25. 풀빛 4,000원
<吳章煥全集>(오장환전집) 1989.1.15. 창작과비평사 2,800원

백석 시인의 시집은 '창작사'에서 발간되었습니다. '창작과비평사'가 아니라 '창작사'라는 이름으로 간행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창작과비평사'는 계간 1966년 '창작과비평' 창간을 시작하여 1974년 '창작과비평사'로 출판물 발간 등록을 했습니다. 그런데 1985년쯤 문제가 발생합니다. 1980년 강제 폐간된 계간 '창작과비평'을 당국의 허가없이 간행했다는 이유로 1985년 출판사 등록취소를 당합니다.
같은 이름으로 사용할 수가 없어서 '창작사'라는 이름으로 등록하여 잠시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창작과비평사'는 지금 '창비'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데요, 초창기 시집을 발간할 때는 한글 이름이 아닌 '創作과批評社'으로 표기한 것도 재미있는 특징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창비 시집 중 가장 오래된 시집은 1975년 간행된 <申東曄全集>(신동엽전집) 초판과 같은 해 발행된  신경림 시인의 <農舞>(농무) 증보판입니다. 
 
 정지용시인
ⓒ 민음사
 백석 시인 다음으로 간행된 시집은 정지용 시인의 시집입니다. 민음사에서 발간되었습니다. 이 시집에는 정지용 시인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사진이 흑백으로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는데 '先生鄭芝溶'(선생 정지용)이라는 소개 글이 재미있습니다. 이 사진은 1930년대 초 휘문고보 재직 시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시인의 시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시 <鄕愁>(향수)는 이 시집의 44~45쪽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김기림전집
ⓒ 심설당
 
여섯 권의 시집 중 가장 비싼 시집은 <金起林 全集>(김기림 전집)입니다. 다른 시집이 3000원 내외로 판매된 반명 김기림 시인의 시집은 2배 가격인 5500원에 판매되었습니다. 일단 395페이지로 다른 시집에 비해 두껍습니다.
오장환 시인의 시집이 2800원에 판매되었는데요, 232페이지입니다. 오장환 시인의 시집에 비해 김기림 시인의 시집이 두 배가량 두껍습니다. 그러나 두께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책 가격을 얼마로 정할 것이냐는 출판사 고유의 권한이니까요.
   
 오장환전집
ⓒ 창작과비평사
 이용악시전집
ⓒ 창작과비평사
여섯 명의 시인이 한 출판사가 아니라 여러 출판사에서 발간된 것도 재미있습니다. 저는 특히 '풀빛'에서 간행된 <임화전집(玄海灘)>이 마음에 가는데요, 풀빛에서 발행된 역사적인 여러 시집들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풀빛판화시선5 <노동의새벽>입니다. 풀빛판화시선은 특이하게도 인쇄본 판화가 두 장 수록되어 있습니다.
 
 임화전집(현해탄)
ⓒ 창작과비평사
 
금서는 보통 '정치적인 목적'으로 지정

금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냉전에 따른 대치, 사회·문화·종교적인 규범에 따라 지정되어 왔습니다. 종교혁명 시대 마틴 루터나 존 칼뱅의 저작이 카톨릭에서 금서로 지정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인 에밀졸라는 프랑스 일간지 '로르르'에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나는 고발한다'를 실으며 금서의 목록에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부인 시리즈로 유명한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선정성으로 인해 로마 가톨릭교회가 선정한 금서 목록에,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1960년 공식 출간되었는데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1959년 발효된 음란저작물 금지법에 따라 고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50여 년의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풍기 문란을 일으킨다고 비난받았던 작품들이 권장 도서로 지정되어 널리 읽힌다는 것인데요, 과거의 사회·문화적 경직도가 얼마나 높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鄭芝溶詩全集>(정지용시전집)이나 <보바리 부인>과 같은 작품만 봐도,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당연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이 있었는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의 경직(硬直)이 문화 예술발전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동시에 확인 가능합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은 금서라는 알레고리에서 탈출하기는 했지만,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실제로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기에, 이러한 금서 목록을 읽으며 오늘 우리의 현실도 되돌아보는 것도 큰 교훈 중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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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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