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마스크 수십억개의 저주..새는 부리를 열지 못했다

강찬수 입력 2022. 8. 13. 16:00 수정 2022. 8. 1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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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관찰된 검은해오라기. 부리가 마스크 끈과 얽혀 있다. [자료: Science of Total Environment, 2022]

지난 2020년 4월 캐나다에서는 미국지빠귀가 마스크 끈에 얽혀 숨진 채 발견됐다. 2020년 말 브라질에서는 마스크를 삼킨 마젤란펭귄이 폐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인 유행으로 일회용 마스크나 장갑 등 개인 위생 용구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이 중 일부가 함부로 버려지면서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세계 곳곳에서는 야생 동물이 버려진 마스크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사례가 속속 보고된다.

다리에 마스크 끈이 얽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갈매기를 영국 왕립 동물학대 방지협회(RSPCA)에서 구조했다. 마스크에 다리가 얽혀버린 갈매기는 자칫 자동차에 치일 수도 있었다. 바다 물고기 농어는 라텍스 장갑의 손가락에 갇혀 죽기도 했다.

지난 1월 3일 이스라엘 지중해 연안 도시 헤르츨리야에서 버려진 마스크를 모아서 걸어놓은 울타리 옆을 여성 경찰관들이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캐나다 달하우지 대학과 영국 하트퍼드셔의 자연사박물관 등에 소속된 연구팀은 최근 '종합 환경 과학(Science of Total Environment)'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버려진 마스크가 야생 동물에 영향을 주고, 때로는 직접적인 위협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2년 간 전 세계에서 114건 수집


코로나19 이후 버려진 마스크들이 새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새들은 마스크를 둥지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다리나 부리와 끈이 얽힐 위험이 있다. [자료: Science of Total Environment, 2022]
연구팀은 2020년 4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검색, 보고서 검토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마스크 등 버려진 개인 위생 용구가 야생 동물에 영향을 미친 사례를 수집했다.
마스크 끈에 얽힌 바다오리(A)와 굴뚝새 둥지에서 발견된 마스크. [자료: Science of Total Environment, 2022]

연구팀은 이를 통해 방역 관련 물품 잔해와 야생 동물이 다양한 형태로 상호 작용하는 것을 학인했다. 주목할만한 목격 사례로 114건(2020년 38건, 2021년 76건)을 선정했다.

114건 가운데 마스크 등이 동물의 몸에 얽힌 경우가 48건(42.1%), 방역 물품 잔해를 둥지 재료로 활용한 경우가 46건(40.4%)으로 나타났다. 마스크 등을 물고 나르는 경우(9건, 8%)도 있었고, 삼켰다가 뱉은 경우도 있었다.
끈이 달린 마스크를 둥지 재료로 사용할 경우 어미 새와 새끼 새가 나중에 끈에 얽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개인 위생 용구는 안면 마스크가 대부분(106개 사례, 93%)을 차지했고, 일회용 장갑이 관련된 것은 7건(6.1%)이었다. 나머지 1건은 마스크와 장갑이 단일 둥지에서 발견된 사례다.

보고된 동물 가운데는 조류가 83.3%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포유류는 10.5%, 무척추동물 3.5%, 물고기 1.8%, 바다거북 0.9% 등이었다. 새들 가운데는 혹고니·재갈매기·호주흰따오기·물닭과 관련된 사례가 많았다. 포유류 중에는 동부회색청설모와 유럽고슴도치, 붉은여우 등도 있었다.


수집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


수리의 둥지에서 발견된 마스크. [자료: Science of Total Environment, 2022]
연구팀은 "전체 관찰 사례 중 9마리(7.9%)는 개인 위생 물품과 직접 접촉해서 폐사한 채로 발견됐다"며 "동물이 스스로 잔해를 제거한 경우는 13건(11.4%), 사람이 개입해 잔해를 제거한 사례가 17건(14.9%)이었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75건(65.8%)은 관찰자가 잔해를 제거하기 위해 포획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후에 동물이 어떻게 됐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사례가 수집된 나라는 모두 23개국이었는데, 미국이 29건, 영국이 20건, 캐나다 13건, 호주 11건, 네덜란드 10건, 독일 5건, 아일랜드·프랑스 각 3건 등이었다. 한국 사례는 없었다.

연구팀은 "일회용 물 티슈와 관련된 사례는 없었는데, 이는 피해를 입은 실제 동물 수를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를 통해 확인된 114건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야생동물 위협할 수도


해양 보호 단체 오션스 아시아(Oceans Asia)의 공동 설립자인 개리 스토크스가 2020년 3월 7일 중국 홍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생 후 소코 제도 해변에 떠밀려온 안면 마스크를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때는 세계적으로 매달 마스크 1290억 개와 650억 장의 일회용 장갑이 사용됐다.

이로 인해 2020년 3월부터 10월까지 버려진 마스크의 양이 80배 이상 증가했고, 세계적으로 쓰레기 가운데 거의 1%를 마스크가 차지했다.
일회용 장갑은 2020년 4월 전 세계 쓰레기의 약 2.4%로 급증했지만, 최근에는 0.4%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폐기된 마스크 가운데 2020년 한 해 세계적으로 15억 6000만 개의 마스크가 바다로 이동했고, 일부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까지 확산했다. 마스크 등에는 플라스틱 성분도 많이 포함돼 있어 분해되는 데는 450년이나 걸릴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코로나19 방역에 사용됐던 장갑, 마스크 등 개인 보호 장구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거리에서 버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연구팀은 "버려진 수십 억 개의 마스크 등은 수백 년은 아니더라도 수십 년 동안 육상과 수중 환경에 남아 야생 동물에게 지속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대유행으로 인한 플라스틱 폐기물이 전 세계 동물군과 환경에 미친 영향을 평가해 향후 새로운 전염병이 왔을 때에는 유사한 누출 사례가 없도록 해야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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