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과 관습을 이겨낸 영원히 존재하는 '사랑법-기억'

임효준 2022. 8. 1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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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임효준 기자]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후회하지 말고 기억해요." 

꼭 눈에 보이고 옆에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절제된 내면 깊은 감정의 '기억'으로 진정한 존재로 남는 법을 알려주는 사랑도 있다. 

음악과 사랑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밀라노 음악공연장에 홀로 앉은 엘로이즈(아델 아에넬). 

첫사랑 마리안느(노에미 메랑)가 말했던 관현악단의 살아있는 음악, 비발디 '여름' 연주를 들으며 깊은 슬픔에 때론 환희에 젖어 눈물을 흘리며 미소 짖는다. 

마치 그리운 마리안느(노에미 메랑)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벅찬 감동에 말없이 울고 웃는 엘로이즈는 정말로 후회 없이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는 마리안느. 카메라 앵글이 점점 클로즈업 되면서 마리안느의 시각에서 관객의 시각으로 깊어지면서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시대와 관습을 이겨내고 그들의 사랑에 매혹된다.

뭉클한 사랑은 이런 거다. 특히 국한된 퀴어 영화로 소수의 사랑으로 치부될 수 있는 작은 부분을 깊은 존재감으로 인간 전체의 사랑을 감싸는 획기적인 사랑법을 제시했다.

하나의 촛불이 수백 개의 촛불과 같은 밝기로 어둠을 밝히는 엄청난 파괴력를 가진 이 영화에 대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셀린 시아마 감독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기며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은 당신이 받았어야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특히 영화 속 마리안느(노에미 메랑)가 그림 연습생들에게 알려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는 그림과 함께 제시된 영화제목에서 18세기 프랑스 시대의 계급과 성별 등의 차별적 상황에서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랑),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아에넬), 하녀 소피(루아나 바야미) 등 3명의 여인들이 각자의 능동적인 삶에서 신분을 넘어서는 우정과 연대성으로 현재의 시공간에서도 여성의 사랑과 삶을 넘어 인간의 사랑에 대한 커다란 위안을 던진 명작이다.   

음악과 사랑은 연결된다

엘로이즈는 산책을 함께 해주는 마리안느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죽은 언니를 대신해 결혼을 해야 하는 운명을 알기에 거부했던 초상화지만 화가를 숨기고 접근한 마리안느와의 사랑의 감정은 깊어진다.

밀라노 음악공연장에 홀로 앉은 엘로이즈은 비발디 '여름'을 듣는 순간, 결혼하기 전 자신을 기억했을 것이다. 아직 초상화에 대한 진실을 모르고 홀로 나선 자신이 음악을 들으려 성당에 간다고 말했을 때 '죽은 소리'라고 말하는 마리안느가 먼지 쌓인 피아노 건반 위로 제대로 기억되지 않는 '음'이지만 애써 힘 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음악 도시 밀라노와 관현악단의 살아있는 음악을 표현해 위안하려 했던 것들을. 그것을 외면했던 자신의 까칠함도 떠올랐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숨겨야 하는 '초상화'의 진실과 함께 절제된 대화와 서양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에 점점 관객은 스스로가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되는 몰입을 경험한다.

엘로이즈의 가지런한 손과 마리안느의 물감 묻은 손은 대조를 이루며 긴장감은 더해 가는데 엘로이즈의 사랑의 감정들이 손을 숨기려는 마리안느의 양심과 예술의 본질, 그리고 커가는 사랑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특히 실패한 화가가 그려 놓은 얼굴 없는 초상화가 왼쪽 가슴부터 불태워지는 것이 마리안느의 열정을 깨우는 장치로 작동된다.

마리안느는 화가라는 진실을 알리고 완성된 초상화를 보여주면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야하는 운명에 분노하고 있는 엘로이즈의 진실된 모습을 숨기고 '거짓 미소'를 그렸다. 사랑의 감정을 품은 엘로이즈는 초상화는 자신과도 닮지 않고 특히 화가 마리안느를 닮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린다.

생명력과 존재감이 없다는 엘로이즈의 말에 마리안느는 '거짓 미소' 얼굴을 뭉개버린다. 사랑에 대해서도, 화가라는 직분에 대해서도 가식과 위장된 삶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해 마리안느는 혹독한 책임을 느끼는데 이는 18세기 프랑스인과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과 연결되는 고리를 만든다.

'손을 잡는' 평등을 말하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다시 초상화를 그리려는 마리안느를 위해 이제는 기꺼이 포즈를 취해준다며 어머니를 설득하며 바뀐 이유에 대해 "알아도 달라질 게 없다"는 엘로이즈의 순응하면서도 사랑을 키우는 대담함에 관객은 다시 빠져든다.

화가 마리안느는 포즈를 취해주는 아가씨 엘로이즈와 초상화 작업을 하면서 줄곧 자신의 입장에서 그녀를 관찰했다. 하지만 평등한 위치에서 화가 마리안느를 지켜보는 아가씨 엘로이즈를 알게 되고 어느 순간 '남편'의 시각이라는 엘로이즈의 지적에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된다. 모델과 화가가 뒤바뀔 수 있는 서로의 연결 관계에서 마리안느(노에미 메랑)는 생리통에 신음하다 하녀 소피(루아나 바야미)를 찾았는데 임신한 지 3개월 된 소피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도와주기로 한다. 

유독 손이 많이 보이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하녀 소피가 해변가에서 두 여인사이를 쉼 없이 왔다갔다 뛰어가다 넘어져 있는 것을 아가씨 엘로이즈가 손을 내밀어 일으킨다.

여기서 여성의 운명에 대한 직접적인 선택을 통해 신분도 없어지고 우정이 싹튼다. 카드놀이도 하고, 요리를 하는 아가씨와 수를 놓는 하녀, 포도주를 따르는 화가가 모두 일심동체가 된다.

특히 도움을 줄 할머니들을 찾아 나선 바닷가 여인들 사이에서 아카펠라 노래 소리를 배경으로 깊어진 사랑의 감정으로 인해 엘로이즈 치마에 모닥불이 옮겨 붙었는데도 서로 바라보는 것은 정말 압권이다. 이때 쓰러진 엘로이즈를 일으키는 손은 마리안느였다. 모닥불에서 잡아 일으켜 세운 손은 바위틈 사이 산책길로 이어지면서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를 격정의 첫입맞춤으로 이끈다.

영화 전체를 연결하는 3인의 여인은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뒤를 돌아다본 오르페우스가 규칙을 어겨 영원히 아내와 이별한 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눈데 프랑스를 대표하는 셀린 시아마 감독은 영화를 통해 규칙과 관습, 그리고 이념의 차이에서도 현실을 당당히 사는 여성들이 "뒤돌아 봐"를 통한 '각인된 기억'들로 절제된 사랑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들이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대한 해법인 동시에 남녀의 구별과 신분의 지위를 떠나 어떤 시대에서도 통하는 '진실'이 된다.

'코로나' 이후 다시 이상기후로 물 폭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위험 속에 달려가 구하는 시민과 성금을 내서 도우는 사람 등 진심을 다하는 '기억'을 통해 혼자가 아닌 전체의 존재로 확장시켜 나가는 '힘'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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