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 면(面)인구 25%가 귀농인

전정희 2022. 8. 1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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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웰빙팜] 농사꾼 임송의 귀농 일기(2)
지역, 나이 안따지고 더불어 사는 삶..원주민과 귀농자 다툼도 누그러져

지리산 인근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특히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부근은 귀농 1번지라고 불릴 만큼 이주자들이 많다. 몇 년 전에 전체 산내면 인구 중 귀농인 비율이 25%를 넘었다고 들었다. 모르긴 해도 지금은 그 비율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버들이'(왼쪽)와 '김 팀장'. 
IMF 직후인 90년대 후반부터 이주가 시작됐으니 초기에 귀농한 사람들은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주 초기에는 원주민들과 귀농자들 간에 다툼이 많았다고 들었다. 왜 안 그렇겠나.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같이 살자면. 초기에는 서로 기 싸움도 많이 했을 거고.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양 집단 간의 긴장감은 많이 누그러진 것 같다. 하긴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으니까.

‘버들이’는 삼십 대 초반, ‘김 팀장’은 오십 대 초반의 여성이다. 두 사람 모두 웰빙팜에서 일한다. 버들이 짝꿍은 ‘승현이’인데 근처 포도 농장에서 일하며 가끔 일손이 달릴 때는 웰빙팜에 와서도 일한다.

웰빙팜은 새로운 사람이 오면 간단한 인터뷰를 한다. 이름, 연락처 등 간단한 정보와 자신이 불리고 싶은 호칭을 묻는다. ‘버들이’와 ‘승현이’는 자신들을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다. ‘김 팀장’은 스스로 호칭을 정하지 못해 아내가 ‘김 팀장’이 어떠냐고 해서 ‘김 팀장’이 됐다.

‘버들이’ 지인이 만든다는 ‘양파 짱아지’(왼쪽)와 ‘김팀장’이 가지고 온 식이섬유 제품.
‘버들이’와 ‘승현이’는 경기도 평택이 고향이다. 둘이 동갑내기고 어릴 때부터 친구였단다. ‘버들이’는 5년 전에 먼저 지리산에 왔고 ‘승현이’는 그 1년 후에 왔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서로를 지칭할 때 ‘짝꿍’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왜 이곳에 왔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뭔가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고 있다. ‘승현이’는 자신의 본업이 이 근방 초중고 학교의 방과 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강사들을 알선하는 일이라고 했다.

‘김 팀장’은 우리가 거래하는 택배사 사장 부인이 소개한 사람이다. 두 사람은 어릴 적 친구로 인근 함양군 마천면이 고향이다. ‘김 팀장’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다. 최근에 형제가 함께 경기도 여주에 ‘진또바기’라는 고깃집을 냈다. ‘김 팀장’은 아들 형제가 사이가 좋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엄마로서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모양이다. ‘김 팀장’은 웰빙팜에서 일하는 것 외에 따로 면역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일도 한다.

두 사람은 모두 장점이 참 많다. ‘버들이’는 조심성이 많다. 지금은 일이 익숙해져서 묻지 않고도 잘한다. 처음 왔을 때는 자신이 잘 모르는 일은 그냥 하지 않고 항상 물어보고 했다. 그것 때문에 일이 다소 느린 것 같았으나 대신 실수가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속도도 빨라졌다.

그 외에 ‘버들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 우리 물건(자기가 만드는)을 사서 친구나 지인들에게 보내는 일이다. 반대로 가끔 자기 지인들이 만드는 물건을 사무실에 가지고 오기도 한다. 최근에는 친구가 만든다는 양파장아찌를 가지고 왔는데 그 맛이 아주 훌륭하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귀농한 사람들이 모이게 된 데에는 실상사가 많은 역할을 했다. 실상사는 신라 말에 세워진 소위 '9산 선문' 중 최초 가람이다.
‘김 팀장’도 물건을 자주 사 간다. 누군가에게 면역 관련 제품을 소개하러 갈 때 선물로 가지고 가는 것 같다. 역시 반대로 자신이 취급하거나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사무실에 잘 가지고 온다. 얼마 전에는 식이섬유 제품을 가지고 왔기에 서울에 계신 어머니에게 보내드렸다.

평생 드셔본 것 중에 화장실 효과가 제일 좋다고 하신다. 지금은 상비약처럼 항상 곁에 두고 드신다. ‘김 팀장’이 하루는 살구를 한 아름 가지고 왔다. 며칠 전 아내가 마트에서 사 온 살구를 간식으로 내놨더니, 놀라는 표정으로 “살구를 사서 드세요?”라고 하더란다. 그러더니 동네 살구나무에서 살구를 따서 사무실에 가지고 온 것이다.

두 사람이 물건을 자주 사서 다른 사람과 나누거나 다른 사람이 만든 물건을 사무실에 자주 가지고 오는 것은 나누고 구분하는 것보다 합하고 더불어 살기를 좋아하는 성품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좋은 점은 이 외에도 많다. 나는 그중에 두 사람의 표정이 밝고 쾌활한 점이 제일 좋다. 두 사람과 함께 일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주변에 화기가 돈다. ‘버들이’는 외지에서 온 사람이고 ‘김 팀장’은 이 지역 출신이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니버시티 오프 펜실베니아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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