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 질타, 선비님들 납셨다 [하재근의 이슈분석]

데스크 2022. 8. 1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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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데일리안 DB

최근 잔나비가 집중적인 공격을 당했다. 여러 매체들이 잔나비가 사과를 했는데 그 사과에 진정성이 없어서 오히려 독이 됐다며 질타했다. 왜 잔나비의 설명엔 사과의 진정성이 없었을까?


100% 사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황 설명과 유감 표명 정도의 글이었다. 애초에 사과가 아닌데 언론이 그 설명을 사과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했다. 그러고 나서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며 공격한 것이다. 언론이 황당한 헛발질을 한 셈이다.


최근 '2022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서의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둘째 날 서브 헤드라이너, 즉 끝에서 두 번째 순서로 무대에 오른 잔나비의 최정훈이 "저희가 2014년도 펜타포트 슈퍼루키로 시작할 때는 제일 작은 무대의 제일 첫 번째 순서였다. 야금야금 여기까지 왔다"며 "고지가 멀지 않았다. 한 놈만 제치면 되는 것 아니냐. 다음 팀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전하고 싶다. 펜타포트는 우리가 접수한다. 여러분 이제 집에 가시라. '컴백홈' 들려드리고 저희는 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여기서 일단 “한 놈만 제치면” 이 표현이 문제가 됐다. 예의 없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러자 예의, 태도, 도덕 등에 극히 예민한 ‘선비님’들이 궐기했다. 특히 언론에 그런 선비(?)들이 많다보니 여러 매체에서 잔나비의 무례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펜타포트는 우리가 접수한다”는 식의 겸손하지 않은 말도 문제가 됐고, 특히 “여러분 이제 집에 가시라”는 표현이 많은 이들을 공분하게 했다. 뒤에 공연할 팀에 대한 무례라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 보도와 비난이 들끓자, 잔나비가 ‘진정성 없는 사과’로 언론이 단정한 그 설명을 내놓기에 이른 것이다.


"꿈에 그리던 무대와 멋진 관객 분들 앞에 서 있다 보니 흥분에 못 이겨 가벼운 말로 타 밴드와 팬 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렸습니다. 의도는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보여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실언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는 내용이었다.


의도와 달리 타 밴드에게 불편을 끼친 걸로 보일 수 있는 실언을 했다는 정도의 내용이다. 이걸 가지고 언론이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는 비난을 쏟아낸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선비님’들에게 잔나비의 불경한 말은 크나큰 잘못이었다. 그런 확신이 너무 크다보니 그 후에 나온 잔나비의 설명도 덮어놓고 사과라고 단정하고 그 속에서 사과의 진정성을 찾게 된 모양새다.


하지만 애초에 잔나비에게 사과할 이유가 없었다. 잘못을 했어야 사과를 할 것 아니겠는가? 록음악은 원래 기성사회의 예의 규칙과 어느 정도 충돌하면서 원초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기도 하는 장르다. 그래서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록음악이 발달하기 힘들다.


록페스티벌은 록음악의 열기와 페스티벌의 열기가 겹쳐지는 행사로 가장 강렬한 에너지가 터져 나온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느 정도 호기로운 말들이 나올 수도 있다. 만약 티비 방송이라면 문제가 되지만, 페스티벌의 열기 속 현장에선 그런 말들도 이해를 받는다. 선비님들의 나라 한국에서 밴드가 페스티벌 말고 어디서 그런 호기를 부려보겠는가.


이번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 열린 대면 공연이었다. 잔나비가 공연한 날에 5만여 명이 몰렸다. 가수를 비롯해 모두가 열기에 도취될 분위기였다. 그 속에서 잔나비는 개인적으로도 감격한 것 같다. 무명으로 작은 무대 첫 순서에 섰던 팀이 이제 메인 무대 끝에서 두 번째로 공연하는 대형밴드가 됐으니 말이다. 공연의 흥분과 개인사적인 감격이 겹쳐 ‘한 놈만 제끼면’ 하는 식의 호기로운 농담이 나왔을 것이고, 이 정도면 록페스티벌의 열기 속에서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말이다.


‘우리 공연만 보고 집에 가라’고 하며 관객을 보냈다는 비판이 나왔는데, 록페스티벌 보러 간 사람이 이런 말 듣고 정말 집에 가는 일은 없다. 그런데도 예의도덕을 지엄하게 지키는 선비님이 많다보니 논란이 커졌고, 일단 난리가 났으니 연예인인 잔나비가 상황 설명과 함께 적당한 유감표명 정도 한 것이다. 이걸 가지고 또 질타한 것을 보면 우리 언론의 예의도덕 숭상이 극에 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서구처럼 연예인이 지나치게 일탈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나라에선 연예인에게 요구하는 예의바름이 과도하다는 느낌이다. 여러 언론과 누리꾼들이 연예인의 행실을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한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포착되면 조리돌림이 시작된다. 이것이 우리나라 연예계에 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번에 심지어 록페스티벌에서의 발언 정도에도 극한의 예의바름을 요구하는 언론의 태도에서 우리사회 보수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도덕성이 나쁜 건 아닌데 그래도 어느 정도 여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연예인들을 그렇게 닦달해도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 특별히 올라가는 것 같지도 않다. 언론이 연예인들 표적 삼아 공론 매타작을 하는 사이에 권력자들은 자유분방하게 살지 않나? 진짜 자유분방해야 할 영역은 대중예술계인데 말이다. 대중예술인은 조금 편하게 숨 쉬게 해주고, 권력자들에 대한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겠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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