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재산 알고보니 1조..英 뒤집은 금수저의 '서민 코스프레' [후후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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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최초의 ‘비(非) 백인 총리’가 될 수 있을지 큰 관심을 모았던 리시 수낵(42) 전 재무장관이 역풍을 맞고 있다. 자신은 이민 3세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고 부각했다가 금수저 중의 금수저 집안이라는 게 드러나면서 점수가 깎이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완료된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거브의 보수당원 대상 설문조사에서 수낵은 31%의 지지를 얻어, 리즈 트러스(47) 외교장관(69%)에 38%포인트 차로 뒤처졌다. 지난달 21일 같은 조사에선 수낵 38%, 트러스 62%였는데 격차가 더 벌어졌다.
경선 초기, 수낵은 부동의 1위였다. 지난달 6~7일 여론조사기관 JL파트너스의 ‘정치인 선호도’ 조사에선, 스타 정치인인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를 앞선 유일한 보수당 후보였다. “영국의 오바마 탄생”이라는 말까지 만들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던 수낵은 최근 ‘변절자’ 프레임과 내로남불 논란에 휘말리며 상승세가 꺾였다.
“금수저의 서민 코스프레” 역풍
영국 언론은 수낵의 인기 하락의 원인을 ‘계층 코스프레’에서 찾았다. 수낵은 자신이 이민자 출신임을 내세워 사회적 약자 혹은 인종차별의 피해자라고 종종 주장했다. 하지만 더타임스 등 영국 언론은 이에 대해 “이중적인 발언”이라고 저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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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은 ‘인도의 빌 게이츠’
아내 악샤타 무르티와는 미국 유학 시절 만났다. 악샤타는 ‘인도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억만장자 나라야나 무르티 인포시스 창업자의 딸이다. 악샤타가 가진 인포시스 지분만 6억9000만 파운드(약 1조930억 원)다. 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수낵 부부의 총 자산은 7억3000만 파운드(약 1조1560억 원)에 달한다. NDTV는 악샤타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보다 부유하다면서, 수낵이 총리가 되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수반이 될 것이라 전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가정에서 엘리트로 자라 억만장자와 결혼한 수낵이 인도인임을 내세워 차별과 불평등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가디언은 ‘부모님이 스키 휴가를 보내주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거나 ‘나에게 아파트를 사주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가슴 아팠다’와 같은 금수저의 어설픈 ‘서민 코스프레’라고 비꼬았다.
수낵이 21살 때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한 내용도 소환됐다. 당시 그는 “저는 귀족이나 상류층 친구들이 많습니다. 글쎄요, 노동계층 친구들은 없네요”라고 답했다. 아이뉴스·이코노미스트 등은 “1파운드(약 1500원)짜리 지폐 한장 주머니에 넣고 파키스탄에서 건너 온 버스기사의 아들인 사지드 자비드 전 보건장관, 이라크 쿠르드족 난민 출신인 나딤 자하위 재무장관이 보여준 브리티시 드림과 전혀 다르다”고 수낵의 꽃길 인생을 평가했다.
“존슨이 키워줬는데, 가장 먼저 배신”
배신자·변절자라는 프레임도 수낵이 넘어야 할 과제다. 수낵은 존슨 총리가 측근인 크리스토퍼 핀처 보수당 하원의원의 성 비위 사실을 알고도 원내부총무에 기용한 뒤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거짓말을 했다는 논란이 일자, 가장 먼저 사표를 던졌다. 이후 내각 핵심 인사들의 줄사퇴로 존슨 총리가 위기에 몰렸고, 결국 사임을 결정했다.
금융인의 길을 걷던 수낵이 ‘차기 총리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중량급 정치인으로 성장한 데는 존슨 총리의 파격 발탁이 결정적이었다. 2015년 정계에 입문한 수낵은 다른 장관 경력 없이 2020년 존슨 총리에 의해 바로 재무장관에 파격 발탁됐다. 영국에서 재무장관은 다른 부처장관과 달리 ‘챈슬러(chancellor)’로 불리는 정권 2인자다.
당시 존슨 총리는 총리실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던 자비드 전 재무장관을 내쫓고 좀더 ‘만만한 상대’를 찾다 39살 청년 수낵을 기용했다는 후문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각종 지원책을 발표하는 수낵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면서 인기가 치솟았다. 엄마가 빗어준 듯한 단정한 헤어 스타일(더타임스)에 맞춤 정장을 차려 입은 세련된 외모의 수낵이, 헝클어진 금발머리에 좌충우돌 이미지의 총리와 대비되면서 국민들에게 점수를 땄다. 존슨 총리는 수낵을 신임해 그가 마음껏 업무를 하도록 관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제 존슨 총리는 오른팔로 여겼던 수낵이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며 “내 후임은 수낵만 아니면 된다”고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보수당 내 친(親)존슨 당원들 역시 수낵을 향해 “존슨 덕에 성장해 가장 먼저 존슨을 버린 배신자” “침몰하는 배에서 재빨리 탈출한 쥐”라고 비난하고 있다.
증세 강조하더니 부인은 탈세 의혹
수낵은 국민 정서를 건드리며 ‘내로남불’ 논란에도 휘말렸다. 스스로를 대처주의자(복지 축소,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라고 강조하면서도 그는 인플레이션 해결법으로 증세 정책을 고수한다. 경쟁자인 트러스가 법인세 포함, 감세를 주장하는 것과 반대다.
앞서 지난 4월, 수낵은 소득세에 해당하는 국민보험 분담금률을 1.25%포인트 올리는 등 세금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는 해외 소득 수백만 파운드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단 사실을 밝혀지며 반감을 샀다. 영국은 장기체류 외국인들에 대해 매년 일정한 금액을 납부할 경우 해외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송금주의 과세제(non-dom)’를 시행 중인데, 인도 국적인 수낵의 아내가 이를 근거로 세금을 크게 줄였다. BBC는 악샤타가 연간 약 3만 파운드(약 4800만원)를 내고 약 210만 파운드(약 33억원)의 세금 납부를 피했다고 추산했다. 수낵은 “모든 건 합법적”이라고 이라고 해명했지만, 국민들은 내로남불로 받아들였다.
과거 수낵이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뒤 18개월 동안 미국 영주권을 보유한채 미국에 세금신고를 했단 사실도 재조명됐다. NDTV는 “영국인들은 수낵을 영국에 장기적 충성도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수세에 몰린 수낵은 “나는 항상 현장에 있고, 현장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여론조사 결과와 전혀 다르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영국 총리는 영국 인구 6700만 명이 아닌, 16만 명의 보수당원이 선발한다. 다음달 5일, 세계가 ‘영국 오바마’ 탄생을 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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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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