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우웩!' 역겨운 배수구, 슈퍼맨이 없었다면..

나경연,서민철,황서량 2022. 8. 1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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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슈퍼맨' 배수구 쓰레기 치워 수심 낮춰
"시민의식 함양과 동시에 인프라 구축해야"
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와 청년활동가들이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청 앞에서 '꽉 막힌 배수구가 홍수를 부릅니다'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최근 115년 만의 기록적 폭우로 침수·인명 피해가 속출한 가운데 일상에 숨어 있던 슈퍼맨이 속속 등장했다. 지난 8일 시간당 100㎜의 매우 강한 비가 내려 강남역 인근 도로가 침수되자 한 남성이 등장해 배수구에 쌓인 쓰레기를 맨손으로 치웠다. 우산도 없이, 우의도 입지 않은 채 남성은 담배꽁초, 종이컵, 비닐봉지 등을 꺼내 한곳에 모았다. 그러자 무릎까지 찼던 빗물이 순식간에 내려갔다. 이 남성의 모습은 ‘실시간 강남역 슈퍼맨’이라는 제목으로 빠르게 SNS에 퍼졌다.

지난 9일 연속적인 폭우로 경기도 의정부 용현동의 한 도로가 침수돼 차량과 사람의 통행이 불가능했다. 이때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남성이 등장해 쭈그리고 앉아 배수구의 쓰레기를 건졌다. 뒤이어 나타난 여성은 남성이 쓰레기를 버릴 수 있도록 종량제 봉투를 들고 왔다. 두 시민의 도움으로 도로의 빗물은 10분도 되지 않아 전부 빠졌고, 정상적인 통행이 가능해졌다. 이는 ‘의정부 슈퍼맨 아저씨’란 이름으로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됐다.

폭우가 내린 지난 8일, 9일 시민들이 배수구에서 쓰레기를 직접 건져내고 있다.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12일 서울 강남구청 앞에서 만난 시민들은 폭우 속 등장한 슈퍼맨의 행동에 감사를 보냈다. 그러면서 배수구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시민은 개개인의 시민의식으로 충분히 배수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아직 사회 전반의 도덕의식이 낮으므로 벌금 강화 등의 시스템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시민은 흡연자들이 휴대용 재떨이를 갖고 다니는 문화가 일상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제각각 다양했지만, 꽉 막힌 배수구를 깨끗하게 유지해 폭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았다.

“흡연자 개인이 휴대용 재떨이 챙겨야”
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와 청년활동가들이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청 앞에서 '꽉 막힌 배수구가 홍수를 부릅니다'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이날 오전 강남구청 앞에는 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와 청년 활동가들이 설치한 배수구 사진이 아스팔트 바닥 이곳저곳에 설치됐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쓰레기로 뒤덮인 배수구를 보고도 전혀 사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이내 사진임을 인지한 이들은 “어머, 가짜였네”라고 중얼거렸다.

설치된 사진은 우리가 흔히 보던 더러운 배수구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유심히 보지 않고는 가짜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채기가 어려웠다. 6살 아이부터 70대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에게 이물질로 가득한 냄새 나는 배수구는 서울의 ‘일상’인 듯했다.

이제석 대표는 이번 ‘물폭탄’ 침수피해가 천재가 아닌 인재라고 주장하며 “폭우가 내렸을 때 배수구에 쌓인 쓰레기를 맨손으로 제거하니 인근 수심이 급격히 낮아진 사례들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막연히 더 많은 예산을 들여 빗물 저장고나 하수구만 크게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배수구를 깨끗이 하려는 시민들의 도덕의식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을 이번 캠페인에서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앞 서초대로 일대에서 전날 내린 폭우에 침수됐던 차량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연합뉴스


캠페인을 지켜본 시민들 역시 시민의식 함양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강남구 주민 이영미(가명·53)씨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버릇처럼 배수구에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버리기 때문에 시민의식이 없다면 아무리 벌금을 강화하고 제재를 한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북초등학교에 다니는 이정훈(가명·11)군은 “이번에 뉴스에서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을 보고 내가 사는 삼성동도 저렇게 물에 잠길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면서 “사회 시간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을 무단투기라고 배웠다. 무단투기는 벌금을 내라고 하는 것보다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때 해결된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은 제도를 만들고 쓰레기통을 확충하는 등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후(가명·41)씨는 “기본적으로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많이 없어서 배수구에 버리는 것 같다. 쓰레기통 확충과 더불어 강력한 벌금 부과 같은 제도가 마련돼야 사람들이 조심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서지예(가명·38)씨는 휴대용 재떨이를 일상화하는 습관을 제안했다. 그는 “외국에서 흡연자 개개인이 휴대용 재떨이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많이 봤다. 우리나라도 흡연자가 휴대용 재떨이를 소지하는 것을 독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의식으로 ‘물폭탄’ 막을 수 있을까?
폭우가 내린 8일 밤 서울 강남구 신사역 일대 도로가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배수관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시민의식 함양이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시민의식과 더불어 쓰레기를 적절한 곳에 버리도록 하는 유도시설과 빗물받이 시설 확충, 배수로 확장 등 인프라 구축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하수구에서 냄새가 난다고 카펫이나 고무관으로 덮어 둔 것이 배수로를 막아 초기 홍수 피해를 방지하지 못했다”며 “특히 전단지는 코팅된 종이라 물에 녹지 않아 큰 문제다. 담배꽁초는 지속해 배수로에 쌓이게 되면 하수도 메탄가스와 화학반응이 일어나 끈적하게 덩어리가 지고, 이게 배수로를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지자체 등에서 청소를 자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환경미화원 인력으로는 무리가 있다. 평소에 내 집 앞에 쓰레기는 내가 치우는 시민의식, 애초에 배수로에 쓰레기를 넣지 않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며 “물이 빠질 구멍을 많이 만드는 오수받이 증설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담배꽁초 등을 적정한 곳에 버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시설이 필요하다”며 “요즘 도시 미관을 위해 쓰레기통을 없애는 추세인데 흡연장이나 쓰레기 버리는 시설을 만들어 그곳에 버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절대적으로 빗물받이 수가 부족한 것도 물난리의 큰 원인인데 강남은 8차선 도로임에도 빗물받이가 충분히 설치되지 않아 도로 자체가 하나의 하천이 돼 버렸다”며 “8차선 도로는 양옆뿐만이 아니라 중앙에 횡단보도처럼 횡단으로 중앙 배수로를 길고 크게 설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꼽히는 하수관로 확충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근본 원인은 배수로가 아니라 저지대의 하수관로 문제”라며 “저지대로 물이 과다하게 모이면 물이 빠져나가도록 관로가 충분하게 넓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생긴 문제다. 배수로를 깨끗이 청소한다고 해도 관로가 넓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기록적 강우, 대책 마련에 집중할 것”
폭우가 내린 8일 밤 서울 강북의 한 도로가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국립재난안전연구원과 강남구청은 이번 피해가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것이므로 인재보다는 천재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강남구청은 기후변화로 내년에도 같은 수준의 폭우가 내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하수관의 통수능력 강화와 빗물 펌프장 확충 등 대책 마련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우정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방재연구실장은 “이번 피해는 하수도 설계 기준을 초과하는 기록적인 강우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재해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수리 시설이 물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인 하수관을 확보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수성이 높은 보도블록을 설치해 강우 시 하수관의 통수 부담을 덜게 하는 보조적인 장치들이 그 예”라고 덧붙였다.

최 실장은 “앞으로 설계될 송수관 등에 대해서는 설계 용량 같은 것이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할 것이고, 기존에 이미 설치된 지역은 우수 저류 시설 등을 이용해 보조적으로 통수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부연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이번 홍수 피해에 대해 “비가 역대급으로 많이 온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며 “하수구는 3월부터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고 있지만 지속해 토사물이나 나뭇잎이 쌓인다. 환경 미화 분들이 그런 곳을 특별히 자주 방문한다고 하시는데 현실적으로 매일 가서 청소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은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고, 상업시설은 담배꽁초로 배수구가 많이 막혀 더 피해가 크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우선 현황 파악에 집중한 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예를 들어서 펌프장을 어디다 추가하면 좋을지 등의 계획을 세운 뒤, 용역을 발주할 것”이라며 “우선 현황 파악이 먼저고 이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업무를 하겠다”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서민철 인턴기자
황서량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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