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버릭과 카프카의 잠자 사이에 선 '카터'
[안치용 기자]
넷플릭스 영화 <카터>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게임과 만화의 폭력성과 박진감을 극대화하며 영화로 사이키델릭하게 합체한 B급 대중예술. 그러므로 작품의 이러한 특성상 호오가 엇갈리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 카터 |
ⓒ 넷플릭스 |
카터와 잠자
주인공은 영화 제목과 동일한 '카터'이다. 주원이 분한 이 카터는 싸움기계로 설정된다. 애초에 CIA 요원이었다가 북한에 귀순하고 결혼해 딸까지 낳은 북한의 인민 영웅이다. 카터가 누구인지는 극의 전개상 상당히 이른 시점에 제시된다. 그러나 처음에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로 낯선 방에서 깨어난다.
▲ 카터 |
ⓒ 넷플릭스 |
<카터>에서는 당최 생각이란 게 없다.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태세로 보이는 총구가 자신을 겨누고 있고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인데, 갑자기 귓속에서 누군가가 말을 건네며 살길을 알려준다. 방으로 카터에게 전화가 걸려와 CIA 소속으로 밝혀지는 현장 요원에게 건네주면 전화기가 귀 바로 아래에서 폭발한다. 이어 살상 범위가 확대된다. 그 방 안에서 곧 더 센 폭발이 일어날 것이기에 빨리 방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지시가 긴박하게 전해지고 카터는 영문도 모르고 본능에만 의지해 다음 공간으로 탈출한다.
존재론에 기대자면 <카터>에서 코키토의 존재론은 맥을 못 춘다. 행동함으로, 자신에 대한 아무런 생각 혹은 성찰 없이 바로 행동함으로써 존재라는 게 가능해진다. 이러한 구조는 저 너머의 목소리를 소환하고 그 목소리에 복종함으로 활로를 여는 종교의 전형적인 모습과 닮았다. 외양상 전혀 별개일 것 같은 종교와 <카터>는 이렇게 만난다. 자신을 버린 채 저 너머를 믿고 뚫고 나가는 맹목성. 그리고 그 맹목성을 통해서만 가능한 구원의 길.
▲ 카터 |
ⓒ 넷플릭스 |
카터는, 선택받아 불멸의 존재가 된 할리우드의 전형적 캐릭터이다. 격투의 두 번째 스테이지인 목욕탕에서 낫을 들고 시작한 격투는 오토바이·자동차·스카이다이빙·기차·헬기 등의 무대로 이동하며 화려하게 액션의 꽃을 피운다. 양적으로 차고 넘치는 격투를 한 치의 착오 없이 완벽하게 시전하면서 카터는 몸에 약간의 스크래치가 난 것 말고는 멀쩡하다. 카터가 죽거나 치명상을 입지 않으리라는 것을 관객은 안다. 관객이 안다는 사실을 감독도 안다. 이심전심이 카터 같은 캐릭터를 활개 치게 하는 암묵적 동력이다.
▲ 카터 |
ⓒ 넷플릭스 |
카터와 매버릭
낙하산 없이 폭파된 비행기에서 맨 몸으로 추락하다가 상대의 낙하산을 탈취하고 아이까지 구해내며 지상에 안전하게 착지하는 장면은 어쩐지 눈에 익은 구도이다. 전문 스카이다이버가 카메라를 들고 직접 촬영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는 화면의 완성도와 별개로 이 구도에서 다른 많은 영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카터>의 이 장면엔 주원이 있지만, 다른 영화의 다른 장면에 다른 배우, 예컨대 톰 크루즈 같은 배우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액션의 구도만 비슷할 뿐 주원과 톰 크루즈는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한다.
▲ 탑건 매버릭 |
ⓒ 롯데엔터테인먼트 |
"Naval Aviator Is Not What I Am. It's Who I Am."
내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내가 누구이냐가 더 본질적이라는 뜻이다. 잠자가 그렇다. 다만 잠자는 실존의 좌초에서 비극으로 잦아들고 매버릭은 예정된 성취에서 영광으로 고양된다. 카터는 반대로 내가 누구이냐보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로 자신을 결정짓는다. 카터에게 '누구'는 큰 의미가 없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단지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일 따름이고 대의가 아니라 오직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따라서 카터에겐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파적 요소가 약하게 부여된다. 실사를 고집한 <탑건 매버릭>이 CG를 섞은 <카터>보다 더 신파가 강한 것이 이해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탑건 매버릭>의 제작방침 자체가 모종의 신파에 닿아 있지 않을까.
액션 대표 감독의 야심작
▲ 카터 역의 주원 |
ⓒ 넷플릭스 |
시점에서 1인칭에 가까운, 또 게임 플레이어의 시선 같은 앵글을 종종 보여주었지만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기법이 더 강한 액션을 묘사하는 데 주효했다는 생각이다. 장면 대부분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한 것으로 알려진 주원의 연기가 B급 감성과 잘 어울렸다.
열린 결말이다. 속편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런 의도와 무관하게 할리우드적인 주인공을 당연히 죽이지 않고 그렇다고 해피엔딩을 제시하지 않은 채 생사불명으로 퇴로를 끊어버리는 엔딩이 나쁘지 않았다.
▲ 카터 포스터 |
ⓒ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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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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