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결혼적령기는 몰라도 반려동물 적령기는 있다!

이마루 2022. 8. 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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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보호를 통해 알게된 것. '포포야 행복해야 해!'

결혼 적령기 말고 강아지 반려 적령기

독립한 지 10년 만에 우리 집에 장기 투숙 생명체가 들어왔다. 제주도에서 쓰레기장 할아버지가 폐냉장고에 묶어놓은 개가 목줄이 칭칭 감긴 채 아이들을 낳았는데, 그중 하나인 천재 강아지 포포! 추운 겨울 야외에서 태어나 2개월이 됐을 때 우리 집에 온 포포는 예정된 임시보호 기한을 초과하고도 특유의 귀여움으로 눌러앉아 4개월째 내 곁을 지키고 있다. 다행히 입양이 결정돼 8월 중 뉴욕으로 출국을 앞두고 있다.

개와 산다는 건 녹록지 않다. 특히 새벽에 자고 오후에 일어나는 삶에 인간의 도움 없이 콧바람 한 번 쐴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들어오는 바람에 내 삶은 사랑 혹은 죄책감을 동력으로 매우 피곤하게 흘러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시켜주는 건 오히려 쉬운 일이다. 정말 힘든 건 아이의 안정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성격 형성을 위해 아무 때나 부르고, 안고, 뽀뽀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일이었다. 정말 단순한 돌봄이 아닌 육아였다. 간식을 퍼주고 싶은 마음, 더 놀다 재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아이의 영양과 의존성을 돌보며 산다는 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눈뜨면 아침 인사를 하고, 밖에서 큰 소리가 나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함께 귀를 쫑긋 세우고, 더운 날씨에 산책하다 지치면 나란히 가방에 넣어온 각자의 물병에서 목을 축이며 쪼그려 앉아 있기도 하고, 다녀와서는 나란히 누워 샤워 혹은 식사하기 전에 숨을 고른다. 내가 소리 내 아이처럼 엉엉 울었던 어느 날은 포포가 달려와 얼굴을 핥아주었고, 포포가 악몽을 꿨는지 갑자기 일어나 울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어둠속에서 포포를 쓰다듬었다.

누군가 비혼자가 반려견을 키우는 것이 남편을 대체하는 것이라 했고 나 역시 그것에 동의하던 어느 시절이 있었으리라 회상하지만, 막상 함께 지내보니 강아지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포포는 내가 어떤 불안과 배려 없이도 끝없이 육성으로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고, 매끼 식사나 스케줄을 의논하고 결정해야 하는 피로감 없이도 온기와 유대감을 선사해준다. 무엇보다 그 어떤 연애도 해내지 못한 것, 아침저녁으로 나를 이 집에서 끌어내 햇볕을 보고 움직이고 잔잔히 쌓인 우울을 떨쳐내게 해준다. 스스로 어딘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내게 보는 눈이 없고 보상이 없는데도 끝없이 어떤 존재를 신경 쓰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준다. 일이 줄어 자기 효능감이 바닥을 찍을 법했던 시기를 지나가면서도 늘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포포의 까만 두 눈 덕분이었다.

ⓒGetty Images/iStockphoto

외로움,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 집의 정적을 없애고 애정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무조건 결혼으로 연결시키기에 우리 욕망은 얼마나 디테일하고 사사로운가. 누군가를 돌보며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 사랑을 퍼붓고 싶은 마음,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함부로 이름을 붙이기에 너무 소중한 것이어서 그걸 자세히 살펴보는 것만큼 스스로를 세심하게 사랑하는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주말 낮, 청소를 마치고 샤워한 후에 젖은 머리로 에어컨 밑에 앉아서 캔맥주 하나를 따서 생각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어떤 모습의 어떤 존재를 어떤 타이밍에 어떤 식으로 데려다놓을 것인지를. 내 삶에 무엇을 선물해 줄지를 골몰하는 일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산타의 마음과 그걸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기회다.

매일 버려지거나, 길에서 출산하거나, 농장에서 구출된 동물들이 막막하도록 거리에 쏟아져 나온다. 그들 대부분에게 필요한 건 기회다. 실내에서 애지중지 키울 반려견으로 누군가에게 소개될 기회, 당장 안락사당하거나 길에서 죽지 않을 기회. 그 기회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면 아이들도 나에게 기회를 준다. 다른 삶을 상상할 기회, 적어도 한 생명의 운명을 바꾼 슈퍼히어로가 될 기회. 상처 가득한 생명의 마음을 처음으로 여는 영광을 누릴 기회. 당장 내가 누군가와 평생을 보낼지 정하지 못했다면, 누군가의 평생을 임시 동거생활로 구해보는 건 어떨까? 그 여정에서 스스로의 욕망을 더 잘 이해하고, 앞으로 삶을 설계할 소스도 제공받게 될 것이다.

나의 첫 임시보호 강아지 포포는 집에 내가 아닌 존재가 움직이고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생각보다 좋은 일이라는 걸 알려줬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려줬다. 나는 작은 강아지보다 몸집이 큰 강아지 곁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생각보다 아침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정확한 시간에 밥을 먹고 나면 이상하게 뿌듯해진다. 동네에 나와 대화가 통하는 할머니가 많다는 것도, 자주 가던 남산 산책로에 지름길이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2022년의 나는 아직 강아지와 평생 살 준비가 돼 있지 않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평생 살게 될 것이며 생각보다 좋은 양육자라는 것도 선명히 알려줬다. 많은 전학과 이사로 어릴 때부터 헤어짐을 무엇보다 두려워하던 내게 입양이라는 좋은 헤어짐을 향해 매일을 정면으로 달려가는 용기가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이 모든 걸 어떤 인간이 해줄 수 있을까? 완벽한 강아지야, 나에게 들러줘서 고마워. 나를 깨우고 재우고 산책시키고 귀가시켜 줘서 고마워. 너와 관계된 무엇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내가 준 사랑이 잊힐 만큼 큰 행복과 안정감이 너와 함께하기를 매일 숨 쉬듯 자연스럽고 덤덤히 빌게. 사랑해!

곽민지 다양한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걸어서 환장 속으로〉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를 썼다.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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