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권정열이 예민해졌다. 한껏 날카로워진 권정열의 내밀한 시간

이마루 2022. 8. 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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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틱 음악이 싫다고 말하면서 가장 청량한 청춘을 노래하는 남자. 10CM, 권정열

Q : 요즘 전국 곳곳을 다니던데요

A : 갑자기 공연이 많아졌어요. 너무 좋죠. 사실 그동안도 무대가 아예 없어진 건 아니었는데 관객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니까 알겠더라 고요. 지난 2년간의 공연들은 확실히 살짝 미완성이었다는 걸.

Q : 지난가을 발표한 ‘Please don’t stop your singing’도 관객들이 노래를 멈추지 말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곡이었죠. 최근 관객과 만난 무대 중에는 5월에 열렸던 ‘엘르 스테이지’ 공연도 있었습니다. 공연 도중 데뷔 이후 첫 인터뷰가 〈엘르〉였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A : 그때 말하면서도 어쩌면 최초 인터뷰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요(웃음). 어쨌든 정말 데뷔 초였던 건 확실합니다. 공연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갈수록 ‘노잼’이 되는 것 같지만요.

셔츠와 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츠는 The Museum Visitor. 안경은 Paul Smith.

Q : 많은 사람이 멜로디를 알거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여러 곡 갖고 있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A : 약간 쩔고요, 약간 이상하죠. 제가 영화 〈트루먼 쇼〉를 정말 진지하게 봤거든요. 의심이 많아요. 이게 각본이나 연출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이 내 앞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증거를 계속 찾죠.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좋아해주고 떼창 하는 걸 보면 너무 좋은데 한편으로는 ‘나한테 이런일이 생길 리 없잖아’ 싶달까요.

Q : 10CM로 활동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그렇군요

A : 또 다른 측면에서 말하면 좀 무섭기도 해요. 저는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에요. 홍대 상상마당에서 공연할 수 있을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제 예상보다 훨씬 성공해 버린 거죠. 혼자 보려고 썼던 일기를 너무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곡을 쓸 때 제약이 생긴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 잘 만들려고 노력하게 되기도 해요.

Q : 오늘은 창작의 고뇌에 빠진, 신경질적인 권정열의 모습을 담으려 했습니다. 실제로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A :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야박한 편인데요. 나에게 가장 환멸을 느껴요.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생겨도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죠. 그러다 보니 타인의 행동에 예민해질 때도 티를 안 내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예요.

Q : 자신에 대한 것 말고 당위성 없이 그냥 싫은 상황도 있지 않나요

A :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강압적으로 굴거나 괴롭히는 것. 그런 건 잘 못 봐요.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면 개입도 하고.

Q : 10CM 노래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가사죠. 일단 소심한 사랑꾼 같은 화자가 존재하고요. 리스너들은 이 가사의 어떤 부분에 이입하는 걸까요. 가사 속 화자는 ‘권정열과 분리된 페르소나’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A : 사실 저랑 동일시해도 상관없어요. 연애나 관계에 접근하는 방법은 저와 완전 같으니까. 다만 가사 속 구체적인 정황을 두고 사람들이 실제 경험이냐고 묻는데 그런 적은 없다는 의미죠. 그런데 처음부터 가사를 쓸 때 그런 생각은 했어요. 연애할 때 멋있고 당당한 사람보다 구질구질하고 나약한, 나 같은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을까.

Q : 가사 속 그런 남자의 행동을 귀여워하는 여자들도 있을 수 있고요

A : 귀엽다고 봐주면 정말 잘 봐주는 거죠(웃음). 사실 저는 남녀 구분을 둔 적 없어요. 가사에 ‘남자’ 여‘ 자’ 같은 단어도 잘 나오지 않고요. 부르는 제가 남성이다 보니 특정한 분위기가 전해질 수는 있겠죠.

Q : 7월 3일 발표한 싱글 ‘그라데이션’은 곡도, 영상도 너무 풋풋합니다. 이런 연애의 간질간질한 감정은 10~20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잖아요. 10CM 노래가 10여 년 전 20대 미니홈피 배경음악을 장악했고, 지금도 20대 팬이 많다는 건 곡의 방향성과도 연관 있다고 생각해요. 꾸준히 어떤 시기의 정서를 재현하는 게 창작자인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나요

A : 그러고 보니 10CM로서 제 나이에 맞는, 성숙한 40대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건 생각 조차 해본 적 없네요. 10CM가 노래하는 특정한 시기와 정서가 있기 때문에 뮤지션으로서도 그 시기의 감성을 되새기거나 끄집어내려 해요. 지금의 제가 느끼는 것들은 곡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이런 작업 과정 때문에 현실의 제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일리가 있네요.

티셔츠는 Defyclubrobbers. 안경은 Nishide Kazuo.

Q : 청춘물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일까도 생각했습니다

A : 좋아해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주요 캐릭터보다 조연이나 단역에 눈길이 가지만요. 보다 보면 좀 짠해지는, 응원해도 딱히 잘될 것 같지 않은 캐릭터들 있잖아요. 말하다 보니 이것도 남들이 다 좋아하면 싫어하는 ‘홍대병’인가 싶긴 합니다. 드라마도 사람들이 한창 이야기하고 잘될 때는 안 보니까.

Q : OST로 참여한 〈그해 우리는〉과 〈우리들의 블루스〉도 안 봤나요

A : 언젠가는 보긴 볼 거예요. 좀 시들해지면 보겠죠(웃음). 그래도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비교적 빨리 봤습니다. 많은 K드라마가 가는 길을 자꾸 비트는 시도가 좋았어요. 고유림(보나)이 결국 귀화한다든지, 두 주인공이 헤어지는 결말 같은 것이요.

Q : 10CM 메가 히트곡 중에서 가사 정서가 조금 비껴가는 곡은 ‘봄이 좋냐??’가 아닐까 싶은데요. ‘몽땅 망하고 너네도 헤어져라’라는 삐딱한 가사가 사랑받는 걸 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일 것 같아요

A : 화이트데이에 직원들과 저녁 먹고 회사에 돌아가는데 이상하게 그날 홍대에 유난히 행복해 보이는 커플이 많더라고요. 솔로인 직원들이 계속 분통을 터뜨리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갖고 있던 멜로디에 그날 발언을 조금 순화해서 붙였죠. 봄에 만연한 연애 분위기가 맘에 안 들어서 혼자 궁시렁거리는 건 제법 10CM 같거든요. 사실 삐딱한 사람은 비호감일 때가 많잖아요? 그래서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걸 보면 공감대가 있었구나 싶어요.

Q : 권정열이 가장 청춘이었다고 느끼는 시기는

A : 아무래도 대학생 시절. 놀기 좋은 시대에 학교를 다녔으니까요. 지금은 일상이 된 음악이 그때의 제게는 환상이었죠. 연습실 대신 피아노가 있는 빈 강의실을 찾아다니고, 오락실 노래방 부스에서 연습하며 음악을 소중하게 좇던 그때를 돌아보면 조금 귀엽기도 해요.

Q : 한편 외로움이나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은 나이와 관계없이 존재 합니다. “이제 다시 아침이 오면 난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Help’의 가사 같은 막막함도요. 그런 순간을 권정열은 어떻게 넘기나요

A : 이제는 새로운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많이 희석됐는데요. ‘Help’는 ‘찐’이죠. 그때는 정서적으로 안 좋았어요. 일상을 똑같이 보내며 그 시기를 버텨냈죠. ‘네가 힘들 게 뭐 있냐, 다른 사람이 더 힘들지’ 하는 마음으로요. 촌스럽지만 제가 그런 게 좀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도움받으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혼자 이겨내려는 고집이. 멘탈이 튼튼한 편이기도 하고요.

재킷은 Studio Guage. 안경은 Manomos classic.

Q : 대학 동기에게 빌렸던 ‘밴드해령’의 앨범을 갖고 있어요. 그때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CD들을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활동하는 뮤지션이 많지 않더군요. 스스로 음악을 오래 하고 있다는 걸 인지한 순간이 있을 텐데

A : 진짜 오래 했더라고요! 소란과 10CM는 2009년에 데뷔한 동기인데요. ‘네가 뭘 알겠냐’며 고영배 씨를 놀릴 때 종종 2004년 활동을 시작한 밴드해령 시절 이야기를 써먹죠(웃음). 확실히 부담되긴 해요. 항상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영향력을 미치되, 규모가 너무 줄어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고요.

Q : 오래 했다는 게 항상 평탄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굴곡과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면

A : 항상 과오를 반복하죠. 잘하던 걸 계속 잘하면 멋있을 텐데 뭔가 자꾸 극복하려 하고, 가지지 못한 걸 갖고 싶어 하면서요. 퇴보나 답습한다는 느낌은 주고 싶지 않아서 장점이라고 평가받은 요소를 빼고 곡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러면 결과는 당연히 좋지 않고요. 그래도 차츰 명확해지는 부분이 생긴 것 같아요. ‘그라데이션’은 멜로디를 우선으로 가장 어울리는 요소를 넣어 탄생한 곡이에요.

Q : 뮤지션으로서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목소리라고 생각하나요

A : 목소리와 창법, 두 가지에 집착해요. 독보적이라고 말하면 거창하지만, 나만 잘하는 걸 갖고 싶거든요. 그냥 음악을 멋있게 하는 건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러지 못할 바에는 특별하게 가자는 게 제 전략이에요. 가사나 멜로디를 듣고 ‘이건 10CM만 하는 거잖아’라는 말을듣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Q : 미노이, 이수현, 츄, 이영지, 빅나티 등과 유튜브 콘텐츠나 음악 작업을 함께 했어요. 나보다 한 세대가 어린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얻는 게 있나요

A : 가장 감화받은 부분은 어떤 면에서 되게 솔직하다는 거예요. 자기 음악을 하는 동시에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에서 매우 당당해요. 그래서 빨리 자기 색을 구축하고 사랑받나 싶어요. 저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빅나티랑은 서로 정확한 나이를 모른 채 만났다가 실제 나이를 알고 서로 놀랐죠. 스무 살 차이가 나더라고요.

Q : 빅나티는 고영배 씨와 함께 진행하는 보이는 라디오 ‘십란한 밤’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어요. 꾸준히 하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A : 2017년부터 했으니 벌써 5년이나 됐죠.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몰랐어요. 팬 미팅이나 사인회를 정기적으로 하지 못하는 제게는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방송이에요. 음악에 대해서도 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도 있고요.

티셔츠는 Defyclubrobbers. 안경은 Marcheyewear. 서스펜더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권정열은 어떤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나요

A : 일단 너무 마초적인 남성은 저와 잘 맞지 않고요. 나보다 어린 사람이 '꼰대'와 상반되는 모습이 있을 때 흥미가 갑니다. 후배가 너무 깍듯하게 대하면 오히려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Q : 새삼스럽지만 이름이 ‘정열’입니다. 권정열이 정열을 바치고 싶은 대상은

A : 음악에 사랑과 정열을 바쳐야겠죠. 때로는 그냥 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웃음). 결국 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하더라고요. 10CM 노래로 만든 플레이리스트나 공연 영상도 유튜브에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비록 제 이름은 ‘바를 정’에 ‘매울 열’ 자를 쓰기 때문에 ‘정열’과는 아무 상관 없긴 하지만요. 이름이 무슨 뜻인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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